"야, 오늘 또 누구 상 받아?"
"몰랐냐? 일규 걔 도에서 하는 정보검색 대회 나가서 최우수상 받았잖아."
"그게 뭔데? 게임보다 재밌냐?"
"너 바보 아냐? 정보를 제일 먼저 찾아내는 사람이 우승하는 거야. 그런 것도 모르면서 컴터 운운 하기는....서필훈, 너도 컴퓨터 좀 배워봐."
필훈이는 찬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짝꿍인 일규는 매일 상을 받는데 필훈이는 아직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필훈이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아빠는 별다를 것 없는 회사원이시고 엄마는 전업주부이십니다.
필훈이는 학원을 두 개 다니는데, 속셈학원과 피아노학원입니다.
필훈이는 학원에 갔다 오자마자 컴퓨터 전원 스위치부터 켜고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씻습니다.
엄마는 가끔 그런 필훈이의 태도가 걱정이 되시는 듯 한 눈치였지만 필훈이가 자라면서 씩씩해지고 보통 아이들처럼 자라자 별 걱정 없이 무심코 넘겨 버리셨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필훈이는 스위치를 꾹 누르고 힘차게 소리칩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시던 엄마께서 이마를 약간 찌푸리셨지만 필훈이는 개의치 않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금세 방문 틈새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다닥다닥 요란하게 들려오고 스피커에서는 게임 효과음이 필훈이의 목소리와 어울려 더욱 시끄럽게 들립니다.
사실 필훈이는 컴맹이지만 게임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잘합니다.
게임을 세 시간 정도 한 필훈이는 머리도 식힐 겸 게임 친구들과 채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채팅 상대는 게임을 하면 백전백승인 게임고수 프린스짱짱이라는 아이였습니다.
물론 프린스짱짱한테는 부끄러워서 필훈이가 컴맹이란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필훈왕자>야, 너네 어디 초등학교 다니냐?
프린스짱짱>나? 나 유석초등학교.
필훈왕자>진짜? 나도 거기 다니는데. 몇 반인데?
프린스짱짱>3반.
필훈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게임고수가 우리 반에 있다니!
필훈이는 자기도 그 반이라고 말하려다가 손을 멈추고 글자를 지웠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필훈왕자>너 이름이 뭐야?
프린스짱짱>나, 박일규.
뭐라고? 그 컴퓨터 잘 하기로 소문난 박일규가 게임을?
필훈왕자>너 컴퓨터 잘 하지?
프린스짱짱>애들이 그러더라. 나 잘 한다고. 근데 그거 다 노력이야. 내가 첨부터 잘했던 건 아니거든. 근데 왜 물어보는데?
필훈왕자>아니 그냥...
프린스짱짱>야, 근데 난 진짜 한심스러운 애들이 누군지 알아?
필훈왕자>몰라. 누군데?
프린스짱짱>우리 반에 김찬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는 맨날 내 짝꿍 필훈이란 애하고 게임만 한다? 필훈이 걔도 게임 어지간히 좋아하는가 보더라. 아침에 학교에서 보면 눈이 빨간데 밤샜다고 자랑하는 거 있지?
필훈이는 이를 빠드득 갈았습니다.
아무리 제가 컴퓨터짱이라고 해도 자기를 모욕하다니. 참을수 없었습니다.
필훈왕자>야, 그러는 너는 뭐 컴퓨터 그렇게 잘 하는 줄 알아? 재수없어. 나 그만 갈게.
뒤이어 프린스짱짱이 뭐라고 말하는 듯 했지만 필훈이는 그냥 채팅방을 나와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쪽지가 왔다는 창이 떴지만 필훈이는 Esc키를 누르고 게임을 계속했습니다.
바깥이 어둑어둑해지자 필훈이는 게임 접속을 종료하고 마지막으로 쪽지를 확인헀습니다.
프린스짱짱이 보낸 쪽지가 게시판의 반을 꽉 메우고 있었는데 필훈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쪽지를 하나하나 열어보았습니다.
[프린스짱짱]님이 보내신 쪽지입니다.
야, 너 왜 그래. 내 말에 화났냐?
니가 필훈이 걔도 아니잖아.
하긴, 걔랑 이름이 같으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지 대충 알겠다.
즐겜 해. 나 간다.
[프린스짱짱]님이 보내신 쪽지입니다.
나 접속 다시 했어.
야, 너 왜 답 안보내. 삐졌냐? 계집애 같이.
그 필훈이란 앤 너하고 달리 컴맹에다가 게임중독증이야.
내가 언제 한번 컴퓨터 가르쳐줘야지. ㅋㅋ
"뭐? 내가 계집애 같다고? 컴맹? 게임중독?"
필훈이는 쪽지를 더 열어 보지도 않고 바로 공격성 쪽지를 날렸습니다.
프린스짱짱은 마침 게임 중이었습니다.
[필훈왕자]님이 쪽지를 입력하고 계십니다.
내용 :
야, 내가 계집애 같다고? 그러는 넌 뭐냐?
살이 허여멀건해가지고, 우유 탔냐?
멍청아, 네가 컴퓨터 고수라고 착각하지 마.
어유, 왕자병 못말려.
[필훈왕자]님!쪽지를 성공적으로 배달했습니다.
필훈이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컴퓨터를 신경질적으로 팍!꺼버렸습니다.
다음 날 필훈이는 학교에 갔습니다.
토요일이라서 4교시밖에 안 했지만 필훈이한테는 프린스짱짱, 아니 박일규와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습니다.
일규 역시 필훈이와 눈이 마주칠까봐 슬금슬금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집에 와서 필훈이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 아빠 서재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컴퓨터 책.
그 동안 게임에 빠져 손도 한 번 못 대본 새것입니다.
필훈이는 한장 한장 넘기며 꼼꼼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포토샵? 포토샵이 뭐지? 그림가겐가?"
필훈이는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포토샵? 글쎄..."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빠는 지금 해외출장 중이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필훈이는 메일주소록을 뒤져 친구에게 메일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모두 모른다는 말뿐이었습니다.
한참 메일을 날리던 필훈이는 문득 며칠 전 포스트잇에 써 붙여 놓은 일규의 메일주소를 발견했습니다.
그 때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메일을 보내려고 메일 주소를 알아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필훈이는 퉁명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제목 : 프린스짱짱, 아니 일규에게....
지난 번에 내가 미안했어.
물어볼 게 있어서 메일 날렸는데.
"포토샵"이 뭐니?
정말 미안해. 그럼.
필훈이는 되도록 짧게 줄인 메일을 보낸 후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 메일 검색 중이었는지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제목 : 필훈왕자에게..
포토샵은 그림을 가지고 여러가지 일을 하는 거야.
자세한 설명은 만나서 하자. 서버 36으로 와. 채팅방 만들어 놓고 있을게.
방제목은
일규와 필훈의 스터디그룹♡
빨리 와. 너 없으니까 게임도 안 되고 오만 가지 일이 다 안 된다.
그 땐 내가 미안했어. 나도 미안......
우리 이제 좋은 친구가 되자.
필훈이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습니다.
필훈이는 곧 게임 서버로 접속하기 시작했습니다.
빨간 로딩중 표시를 보면서 필훈이는 곧 자기가 일규와 나누게 될 우정어린 대화를 상상하며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