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이, 나 시험인데 맨날 왜 귀찮게 해, 이러다 등수 안 나오면
중학교도 좋은 데 못 가. 배치고사 잘 봐야 된단 말이야."
"오빠들은 다 준비했잖아, 정석인 내일이 기말고사 마지막 날인데
군말없이 따라오잖니. 빨리 준비해."
"싫다고 했잖아! 이러다 후진 중학교 가면 엄마가 책임 질 꺼야?
책임 질 꺼냐구!"
"얘가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더니 버르장머리가 없어 증말!
얘들아, 가자."
정민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가뜩이나 시험 때문에 신경 거슬리는 판에 아깐 슬비가 롤러블레이드를
타자고 했고, 윤주는 킥보드를 타자고 했다. 더구나 엄만 멀리 대구에 있는
친척집에 간다니...
벌써 새벽 6시다. 엄만 밥도 안 차려놓고 갔나 보다.
정민이는 입맛을 쩍쩍 다셨다.
"아, 짜증나. 엄만 뭐야. 밥도 안 해놓고.
맨날 우리 딸은 고슬고슬하니 이쁜 밥 먹어야 된다면서. 거짓말쟁이."
정민이는 털퍼덕 피아노의자에 주저앉았다.
참, 오늘 피아노 레슨 있는 날이지.
띵.
"도."
띵띵띵.
"도솔파."
띠리링 띠링-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필릴릴리 피릴릴리.
피리 소리마냥 인터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너거 정민이가?"
투박한 말투. 경비 아저씬가 보다.
"예, 정민인데요."
"피아노 떙땡거리지 마라. 402호 폰 왔다 아이가. 끊는다."
덜컥.
"아 뭐야, 자기가 뭔데 나보고 땡떙거리라 마라야. 씨."
분위기까지 깨놓고. 정민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TV를 켜니 몰래카메라 특집방송이 나왔다.
연예인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반응을 살피는 건데
정민이는 그 프로그램을 재밌게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연예인이 어딘가 갔는지 애완견 혼자 끙끙거리며 있었다.
애완견은 짜증이 나는지 소파를 긁어 놓고 신문지를 갈기갈기 찢어놨다.
문득 정민이는 그게 꼭 자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으면 짜증을 내고 괜히 심통을 부리고.
도대체 내가 혼자 있으면 하는 일이 뭔가.
그러고 보니 공부 중이었다.
정민이는 화닥닥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샤프 끝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다 보니 어느 새 이가 시큰거렸다.
거울 앞에 가서 흔들어 보니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팠다.
"엄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정민이는 샤프를 내팽개치고 안방으로 들어가 울었다.
"흑흑.........엄마...으앙........"
그제서야 정민이는 혼자 있기가 얼마나 외로운 건지 깨달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대구까지 가려면 적어도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렸고 13살 여자아이 힘으론 갈 수 없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