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아빠가 일찍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가 닭도리탕을 맛있게 했다.
"밥 한 그릇 추가!"
"나도!"
한 명이 소리치면 덩달아 다른 사람도 한 그릇 추가를 목청껏 외친다.
바삐바삐 퍼주다 보니 어느 새 요리가 동이 났다.
"맛있는데. 또 없어?"
"없는데 어쩌지? 내일 또 해 줄게요."
"당신은 밥이니 찌개니 하는 건 못 해도 닭도리탕 하나는 잘 한단 말야."
"자취하면서 배웠죠. 원래 여자는 요리 하나씩은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에요."
그 소리에 나는 뜨끔 했다.
나는 열 세 살이 된 지금까지도 컵라면 하나 제대로 못 끓이니까.
"엄마 슈퍼 갔다올게. 아빠 주무시면 안방에 불 끄고 TV도 끄고. 알았지?"
"아빠 주무셔.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딸칵.
문을 걸어 잠그고 나는 슬며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동생 희원이가 좋아하는 두 시간짜리 크리스마스 특집 장편만화가
재방송 되고 있으니까 끄떡 없을 거다.
슬쩍.
나는 냉장고 위 구름무늬 수건을 들추고 파랑색 공책을 꺼냈다.
거기에는 엄마의 요리비법이 모두 적혀 있다.
"...닭 한 마리에 감자 세 개, 당근 한 개...양파...고추....소금...청주....엑.
술까지 넣어? 취하지 않나? 청주 큰술..."
할 수 없다. 재료가 없으니까 다음에 만들어야겠다.
빨리 베끼기나 해야지.
삐뚤빼뚤 덜덜덜덜.
달랑달랑 수정으로 만든 딸기모양 액세서리가 샤프 끝에서 정신없이 춤을 춘다.
"다했다~!"
나는 재빠르게 수건을 들추고 공책을 던지다시피 원상태로 돌려놨다.
"♬~"
막 장편만화가 끝나고 있었다.
동시에 엄마가 초인종을 눌렀다.
"엄마?"
"응. 문 열어."
"다녀오셨어요."
"그래^^ 우리 착한 희연이. 뭐 했니? 공부 했어?"
엄마가 슬쩍 책상 위를 곁눈질 하신다.
뜨끔.
공책과 샤프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숙제 하고 있었구나. 아유 착해."
"헤에...헤헤."
대충 얼버무리고 나는 도망치듯이 내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숙제는 없다. 선생님이 둘째 아기를 낳으시러 휴가를 내셔서 지금 반 꼴이
말이 아니니까.
옆반 선생님은 툭하면 쓰러지시는 약한 선생님이시고 그 옆반 선생님은 파워가
철철 넘쳐 흘러서 정도를 넘기 일쑤다.
어쨌든 닭도리탕 요리비법을 베껴놓은 공책은 일단 비밀 상자에 넣어 두고 토요일
에 만들어 봐야지.
""
드디어 토요일.
엄마는 멀리 대구에 계시는 큰이모댁에 가셔서 내일 오시고,
아빠는 야근.
희원이는 친구와 극장판 장편 애니메이션 보러 외출.
혼자 있는 게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닭, 감자, 당근, 양파, 풋고추, 붉은 고추, 소금, 후추, 청주, 식용유."
일단 재료 준비는 끝났고.
이제 만들어야겠다.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은 다음, 찬물에 15~20분 정도 담근다. 그리고
당근은 껍질을 벗기고 큼직하게 썰어 모서리를 깍아둔다. 양파는 감자와 비슷
하게 4~6등분 하여 썰어둔다..."
잔뜩 해놓고 아빠랑 희원이 저녁 대접해 주려고 했는데 모양새가 안 난다.
아이 짜증나.
그래도 매콤하게 보이는 빨간 고춧가루가 팍팍 뿌려져 있으니 매운 맛은 나겠지
하고 한 술 떠먹어 봤다.
느끼해!
구역질이 났다.
할 수 없이 기름을 국자로 잽싸게 떠내고 맛을 보니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
데우는 건 시간 문제고 뒷정리를 해야겠다.
에휴. 내가 미쳤지. 이렇게 늘어놓다니.
"언니 나 배고파!"
"빨랑 앉아. 언니가 요리해 놨어."
"에에~거짓말하고 있네. 언니 손재주 없는 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어.
지난 번에 라면 끓였다가 내가 내 친구들한테 얼마나 망신당했는지 알기나 해?
칫. 보나마나 찌갠지 국인지도 모를 걸 만들어 놨겠지."
"그러면서 코는 왜 벌름거리니? 바보같애. 거짓말을 하려면 니 몸부터 속여라."
희원이 얼굴이 빨개졌다. 히히 고소하다.
"먹든지 말든지 해. 찌갠지 국인지도 모르겠다면서? 빨랑 먹어! 식잖아."
"모양은 제법 봐줄만 하네. 맛이 문제지. 맛이."
사실 희원이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미식가다. 오죽하면 애들이 제가 만든 요리를
갖고 희원일 찾아올까?
"맛있네. 근데 청주 엄청 넣었지? 취할 거 같잖아. 바보 같아 정말."
역시 실패작인가.
초전에는 모두 실패하는 법인데 뭐. 기운 내야지.
설거지나 해야겠다.
"근데 이거 되게 맛있다 언니. 언니같지 않은데?"
희원이가 칭찬을 해준 거 같다.
진짜? 와-
"아우~사랑해 양희원! 어쩜 이렇게 귀엽니."
오늘처럼 우리 동생 희원이가 예쁘고 귀엽고 천사같아 보이는 날도 없을 거다.
"됐어, 비켜! 징그러워."
에헤. 양희원 그러면서 젓가락하고 그릇은 왜 들고 가니?
역시♡나도 엄마 닮아 닭도리탕은 잘 한단 말야.
다음 주엔 민희, 주미 내 친구들 다 불러서 시식회를 가져야겠다.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다.
- - - 닭도리탕 - 완결♡ - - -
오옷~ 닭도리탕.
매콤하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신비로운
(드시고 싶으시죠?)
닭도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