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그린 그림
"엄마, 지금 우리 어디 가?"
"화랑에 가."
"화랑이 뭔데? 놀이터야?"
"그림 전시해 놓은 데야."
엄마가 슬프게 웃었다. 코끝이 찡해졌다.
"엄마 그렇게 웃지 마. 나도 슬프단 말이야."
엄마가 문득문득 그렇게 웃으면 나 울고 싶어. 하려다가 말을 꿀꺽 삼켰다.
엄마는 내가 쪼끔만 뭐라고 하면 막 울려고 한다.
옛날옛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꿈이 화가였다고 했다.
그림도 잘 그리고 상도 많이 받았는데 엄마네 집에 불이 나서 외할아버지는 하늘
나라로 갔다고 한다.
불이 나면 하늘나라에서 버스가 오나 보다. 구해 주려고.
그런데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타는 버스도 안 타고 그냥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바보같이 하늘나라 가면 나도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는데.
나도 유치원 버스 타고 가면 유치원에 있는데.
그래서 엄마는 화가가 못 됐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서.
"저기다, 다 왔어."
"이쁘다."
화랑 건물이 완전히 크레파스처럼 빨강이랑 파랑으로 칠해져 있었다.
"엄마 근데 여기 왜 왔어?"
"엄마 그림 하나가...여기 걸려 있다고 해서..."
엄마 목소리가 서서히 떨리고 있었다.
"딸랑"
문을 미니까 소리가 들렸다. 어딜까 찾아보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다.
은색 방울이랑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려 있었다.
"우와 이쁘다."
엄마는 내손을 끌고 막 뛰어갔다.
화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막 쳐다봤다.
엄마가 뚝 멈춰서 나는 바닥에 쭉 미끄러졌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런 건데 사람들이 쿡쿡 웃었다.
문득 얄미운 소정이가 생각났다.
어제 내가 스케이트 타다 미끄러지니까 소정이가 막 웃으면서 바보라고 놀렸다.
나쁜 소정이.
나쁜 사람들.
엄마가 활짝 웃었다.
쪼끔 슬프게 웃는 거 말고 진짜 꽃같은 웃음.
엄마 눈을 따라 가니까 창문이 있었다.
밖에는 빗소리가 요란한데도 창문 밖에는 파란 구름이 떠 있었다.
"밖에 되게 맑다, 그치?"
무심코 말하자 엄마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 보았다.
"...너...이거...창문...이라고 생각해?"
"창문이잖아. 엄마 바보. 그것도 모르고."
나는 창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손잡이가 없다.
밀어도 안 되고 유리창도 엄마 피부같지 않고 아빠 수염같고.
이상했다.
유리창을 호 부니까 하얀 것도 안 생겼다.
"엄마 이거 그림이야?"
.............................
..............................
"엄마 이거 그림이냐니까!!"
"그래, 그림이야. 그림이지. 엄마가 그린 거. 하늘을 그린 그림...."
그러고 보니 여름부터 엄마가 .세모 가운데에 줄을 그어 놓은 '이젤'이란 거에
종이를 놓고 그림 그리고 있던 게 생각났다.
"엄마, 진짜 잘 그렸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하늘나라 버스를 안 탔나 보다.
이렇게 이쁜 그림을 그리려고 하늘나라로 안 갔나 보다.
문득 엄마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사람은 말야. 늘 다른 데에 가보고 싶어해. 이쁘고, 멋지게 보이는 곳.
근데 거기 가면 엄청 이쁘고 멋졌던 데가 못나 보이는 거야.
그래서 사람은 한 곳에서 살면서 그 곳의 못난 데를 이뻐해 주면서 다른 곳을
영원히 멋지고 이쁘게 기억해야 되는 거야."
엄마는 하늘을 그리려고 하늘 나라로 가지 않았나 보다.
하늘나라에 가면 하늘이 미워 보이니까 거기로 안 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