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엄청 화가 나 있다.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피아노며 발레 학원을 보내서 왜 이 야단이람.
짜증나.
나는 길가의 돌멩이란 돌멩이는 모두 차면서 걸었다.
"콜록, 콜록, 콜록...."
나는 문득, 연이어 들려오는 숨넘어 갈 듯 한 기침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누굴까...?"
살짝, 들창 안으로 나는 고개를 내밀었다.
방구석에서 한 여자아이가 울면서 콜록대고 있었다.
가엾어 보여서 나는 막 입을 열려다 멈칫했다.
이곳은 동네에서 소문난 술주정뱅이 아저씨네 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고함치는 소리와 함께 아이 우는 소리가 귀청이 찢어질 듯
들려왔었다.
아마 아저씨가 저 아이를 떄린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푸릇푸릇한 멍과 바알간 상처가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얘, 얘...."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
"얘!"
".........."
나는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그냥 지나쳤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나 봐. 민지가 잘 자랐잖니. 그냥 너무 사랑해서,
너무너무 사랑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
엄마가 통화하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 멈춰섰다. 통화내용을 엿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민지가 누구지?
"그 착실한 사람이 술주정뱅이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 애 어릴 때 아예 눈을 멀려 놓고, 지금은 밖으로 싸돌아다닌대."
눈을 멀려 놓는다......면 장님이 되게 했다는 소린데.
설마 아까 그 애가 장님?
나는 막 뛰어들어가려다 조금 참고 들어 보기로 했다.
"어릴 때 보니까, 우리 성지랑 민지가 똑 닮았지 않니?
그래서 허겁지겁 얼굴 좀 바꿔 놓고 매무새도 만져 주고 안심했지.
아, 이제 저 더러운 집에 있는 거지새끼랑은 다르겠구나 하구.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애네 엄마가 어디서 웬 아가를 낳아서,
그 술꾼네다 버렸나 봐. 아무래두 무슨 사연이 있었나 부지."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연 나는 가방에 과자며 음료수를
잔뜩 챙겨 술꾼 아저씨네 집으로 달려갔다.
"야! 문열어 봐 ,야!"
엉겁결에 반말이 튀어나왔다.
더듬더듬 더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문이 활짝 열렸다.
아이는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너 나 알어?"
"..........."
"나 아냐니까."
"아니, 니가 누군데?"
아직 겁에 질린 말투였다.
"모르면 말구. 야, 이거 먹어."
"뭘?"
"과자랑 콜라."
"왜?"
"아이씨, 니가 하두 배고프고 추워 보이니까 그렇잖아 이 멍청아."
"아, 그렇구나."
바보인지 바보인 척 하는 건지. 헷갈렸다.
"맛있다........."
"당연하지, 우리 아빠가 덴마크에서 사다 준...........흐읍!"
"........괜찮아 계속해. 그래, 우리 아빤 술꾼이야. 맨날 나 때리고,
뭐 던지고 해서 나 눈까지 멀었어.
그래두 난 우리 아빠 좋다? 술 안 마시고 들어오면 되게 좋아.
나 안아주면 아빠같지 않게 음식 냄새도 나고, 폭신하고.....
그게 꼭 엄마 품 같아."
"너 글쓰기학원 다닌 적 있어?"
"아니."
놀라웠다. 6년 동안 다닌 나보다 표현력이며 문장력이 더 좋은 것 같았다.
"그리구 하늘이 푸르대, 아빠는.
난 까만데. 마치 칠흑 같거든.
어릴 땐 그나마 색깔 구별 좀 했었는데 안 보이고 나선 전혀 못 하잖아."
"근데, 늬네 아빤 왜 니 눈을 안 보이게 했을까?"
나는 말해 놓고 아차 헀다. 그 애가 약간 미간을 찌푸렸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했나 봐.
너무 사랑해서, 아빠 말고 딴 사람 모르게 하려고......
너무 사랑해서......그래서 그랬나 봐.
그래도 난 아빠가 좋아. 아빠 소원대로 아빠 외에 딴 사람 모르고 자랐거든.
근데, 이제 니가 나타났으니........
난 니가 더 좋아졌어. 어떡하지?"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자리를 툭툭 털고 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너무 사랑했나 봐. 너무 사랑해서....그래서 그랬나 봐.'
그래, 엄마도............엄마도 날 너무 사랑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