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제목거리가 마땅치 않네요.
참, 저 손 다 나았어요.
아직 주먹을 쥐지는 못하지만 ^^
열심히 할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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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요~~"
현관문이 벌컥 열리면서 씩씩한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졌습니다.
"어머 얘, 귀청 떨어지겠다."
화장대 앞에 앉아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던 엄마가 핀잔을 주었습니다.
"엄마, 어디 가?"
"으응...오늘 고등학교 동창이랑 헬스장 가기로 했어. 걔 딸은 캐나다에 몇 년 있다 왔대드라. 엄머, 근데 혀 돌아가는 것부터 틀리다니까. 너두 여름 방학 땐 외지루 나가야 돼. 알았지?"
"알았어, 잘 갔다와."
"얘! 너 오늘 학원 쉰다면서?"
"으응...미술, 피아노, 컴퓨터, 속셈은 방학이구 영어학원은 쉬는 날이야."
"너 오늘처럼 좋은 기회 없다. 중간고사 대비해야 되는 거 알지? 너 공부 안하고 딴짓 하기만 해봐. 엄마가 피잣집이랑 치킨집에 다 연락해 놨어. 그러니까 넌 공부나 잘 해. 참, 그리고 피자랑 치킨값 낼 필요 없어. 엄마가 이따 돈 낼 거니까."
"알았어, 내가 뭐 그런 게 아쉬운 줄 알어?"
"엄머머, 얘좀 봐. 하여튼, 엄마 간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오."
문이 쾅 닫히고 또각또각 흥겨운 구두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보민이는 문 밖에 귀를 기울이다가 구두 소리가 딱 멈추자 곧바로
방으로 달려갑니다.
방에는 얼마 전 삼촌이 사 주신 게임보이가 있습니다.
엄마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못 하게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많고 엄마가 없는 날은 게임하기 딱 좋은 날입니다.
TV를 켜자 요즘 유행하는 아역스타 진민하의 선전이 나옵니다.
보민이는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칫, 저깐 애한테 지다니..."
얼마 전 보민이는 방송국 오디션에서 민하와 맞붙었습니다.
결국 민하가 이겼지만 보민이는 방송국에 '빽'이 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민하를 비겁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번에 맞추면 되겠지."
능숙하게 게임보이를 텔레비전에 연결하는 보민이 솜씨는 한 두 번 게임을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받침대 세우고, 아자, 다 됐다."
보민이는 게임패드를 손에 꼭 쥐었습니다.
먼저 낙하 게임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려 낙하산을 펴고 안전하게 땅에 내려와야 하는데 도중에 낙하산이 안 펴지거나 땅에 잘 떨어지지 못하면 게임이 끝납니다.
"스타트!"
보민이는 게임에서 나오는 음성을 따라하며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되던 낙하산이 갑자기 펴지지 않았습니다.
"어, 이거 왜 이래. 아, 진짜."
갑자기 보민이 눈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손에 땀이 났습니다.
"아, 뭐야, 나 그쪽으로 안 가. 이씨, 짜증나. 야! 거기로 안 간다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게임에 몰두한 보민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교 오학년의 모습입니다.
중간고사다 뭐다 하고 매일 바쁘게 뛰어다니던 보민이로서는 연휴도 아닌데 이렇게 맘껏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닙니다.
사실 연휴 동안에도 보강을 해 준다고 해서 학원에 꼬박꼬박 나가야 했지만요.
"우, 게임 끝났잖아."
보민이는 신경질이 나서 게임패드를 확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얼마쯤 날아가던 게임패드는 그만 베란다문에 부딪힌 후 떨어졌습니다.
건전지가 빼져서 달그락거리며 굴러갔습니다.
"아이 씨, 또 왜 이래."
게임패드는 조립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전에 한 번 부숴 놨다가 이상하게 맞추는 바람에 엄마께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도 못하냐고요,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 합니다.
"딩동, 딩동."
"앗!"
보민이는 후닥닥 게임기를 집어넣고 현관으로 달려갔습니다.
"누구세요?"
"치킨 왔습니다!"
휴우.
보민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차례는 아닙니다.
치킨집 아저씨는 보민이가 무엇을 하는지 나중에 엄마한테 꼬박꼬박 일러바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난 번에 몰래 게임을 하다가 들켜서 보민이는 일주일 동안 자유시간 금지라는 가혹한 벌을 받았습니다.
보민이는 책상 위에 떡하니 문제집을 펴놓고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만 칠천 원."
"왜 이렇게 비싸요? 딴 데는 구천 구백 원인데."
"질이 좋으니까 그렇지. 돈 줘라."
"이따 엄마가 주신대요. 아저씨 잘 가요."
보민이는 늘 무뚝뚝한 배달 아저씨가 싫습니다.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 하지만 눈으로는 보민이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내 게임을 막을 순 없을걸."
보민이는 얼른 책상 위에 치킨을 내려놓았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빨간 양념이 묻은 양념치킨입니다.
보민이는 대뜸 닭다리 하나를 집어들고 뜯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빠알간 양념이 다닥다닥 묻었지만 보민이는 상관하지 않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불도 켜지 않고 치킨을 먹으며 게임을 하는 보민이를 보며
우중충한 하늘은 더욱 진한 회색빛으로 변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