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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버스정류장

무늬는절…     날짜 : 2004년 09월 26일 (일) 2:17:07 오후     조회 : 3210      
모자를 눌러 쓴 아저씨의 손길이 분주하다. 마른 지푸라기를 촘총히 엮어 나무마다 '종종' 동여매고 있다.
'연세는 얼마나 되셨을까?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걸로 봐선, 흠, 40대 중반은 넘으신 것 같은데...'
벌써 겨울 채비를 해야 하다니 세월은 참 무심히도 훌쩍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달풍'이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한결 가벼워진 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사르르륵, 싸아아....'
불어온 바람에 잠시 몸을 맡겼을 뿐인데 달풍이의 가을잎이 금세 한웅큼 더 빠져나가버렸다. 하고 많은 세월, 쌀쌀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겪는 일이건만 무성했던 잎을 떨구고 맨몸으로 서 있어야 한다는 건 항상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달풍이는 올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의연하게 이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다. 아저씨의 분주함이 다른 나무로 옮아갔다. 그냥 다른 나무. 이름이 없는 그냥 다른 나무.
사실 달풍이가 제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달풍이도 불과 3년 전에는 그냥 '나무'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버스정류장 옆에 서 있다는 것이랄까. 그 이외에는 누구에게든 독특하게 기억될 일이 없는 그냥 '어떤 나무'일 뿐이었다.

3년 전 어느 여름의 끝자락. '나무'가 한창 초록과 노랑을 자랑하고 있을 때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맨 학생이 정류장 벤치에 털썩 앉았다. 정류장에 사람이 오고 가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라 '나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곧 어떤 버스를 타고 이 정류장을 떠나 다른 정류장으로 향하리라. 그리고 정류장을 지키던 어설픈 은행나무 따윈 생각조차 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있는지 조차 모르겠지.
그런데 그 '학생'은 버스정류장에 뿌리박힌 듯 앉아 가만히 있었다. 숨은 쉬는 듯했지만 그 이외에는 어떤 동작도 하지 않고 2시간, 3시간, 4시간 .. 그렇게 수십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임시로 나무가 된 사람처럼 그냥 있었다.
나무는 호기심이 조금 생겨나는 듯했다.
'교복을 보면 학생인데, 나이는 15세 정도? 저건 길 건너에 있는 중학교 명찰이군.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한 이름표. 이 학생 뭐하나. 해 다 져가는데 집에는 가지 않고. '
해가 꼴딱 저버린 버스정류장엔 제법 쌀랑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데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임시 나무'가 된 그 학생은 다시 1시간 2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하, 역시 안 오네. 오늘이 내 생일이라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렸나봐. "
변성기를 지나는 듯한 어색한 목소리가 그 학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도 하는군. 그런데 누굴 기다리 거야? 그런데 왜 두리번거리지도 않아?'
그냥 나무가 의아해하는데 그 학생이 넋두리하듯 말을 이었다.
"집 나가서 3년이면 이쯤해서 한 번 와 봐야 하는 것 아냐? 아들래미 어떻게 커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야, 오달풍. 한 번은 와야지. 그 날이 오늘인 줄 알았단 말야. "
바람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싸늘했다. 그 학생이 주먹을 쥐고 옆에 아무 잘못없이 서 있던 '그냥 나무'인 나를 '퍽'하고 때렸다. 조금 아팠다.
"야, 너 이제 '오달풍' 해라. 집 나간 아버지가 오늘 여섯 시간 30분을 내 옆에 묵묵히 서 있었다고 기억할 테니까. 네가 오늘부터 내 오달풍해라."
그러고는 한 대 두 대 세 대 자꾸만 갑작스럽게 달풍이가 된 나를 툭툭 쳐댔다.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맷집이 그새 늘었나 보다. 가방을 챙겨 든 학생은 추운 마음을 감싸는 듯 옷깃을 여미고 눈 앞에 도착한 버스를 탔다.

그 날 이후 임시 오달풍은 그 학생의 화풀이 상대가 되었다. 오며 가며 툭툭 쳐대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고, 주절주절 말을 걸기고 했다. 그러다 정말 자신이 달풍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 학생은 1년 전부터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오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버스를 타고 와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어 달에 한 번은 화풀이를 하러 찾아오곤 했다.
"야, 오달풍. 잘 있었냐?"
하고 말이다. 오늘 쯤해서 올 때가 되었는데 날이 저물어가는데도 오지 않고 있는 오달풍의 아들. 그 학생. 지금쯤 학교 수업은 마쳤을 텐데.
"야, 오달풍. 잘 있었냐?"
하, 씩씩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쩐지 오늘 올 것 같더라니. 그런데 어라? 아까 내 몸을 칭칭 동여매주던 아저씨께서 휙 고개를 돌려 이 쪽을 쳐다본다. 바람이 다시 한 차례 지나가고 달풍이의 나뭇잎이 또 우수수 떨어진다.
'뭐야. 눈매가 닮았잖아. 턱 선도 비슷하네. 저 아저씨가 오달풍이었어?'
그 학생이 진짜 오달풍을 때리러 간 사이에 나무 달풍이는 생각했다.
'이젠 내가 안 맞아줘도 되겠네. 맷집도 늘어서 하나도 안 아팠지만.... 그래도 내 이름은 달풍이야. 처음 가진 이름이니까 양보 안 해.'
달풍 부자가 신파극을 연출하는 버스 정류장. 이제 좀 더 거센 바람이 불고 평온이 찾아오겠지. 그게 자연의 섭리니까. 이번 겨울이 지나고 맞이하게 될 내년 봄은 유달리 화사할 것 같군. 그렇지, 달풍씨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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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
와아- 반전틱하면서도 흥미로운 결말이네요. 3인칭 관찰자 시점, 그것도 순수한 나무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부자의 이야기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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