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무리 진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록마을의 거미 한 마리가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꽁지 끝에서 뽑아 낸 은색 실로 다각의 틀을 짜고 그 위에 자잘한 수를 놓은 후,
거미는 밀려오는 피곤과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날따라 무거운 달무리를 이끄느라 몹시도 지쳐있던 달님은
이 은빛 그물을 침대 삼아 쉬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살금살금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달님이 눕자, 거미줄의 흔들거림이 거미를 깨웠습니다.
거미의 눈에 곤히 잠든 달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둥근 생김은 너무도 탐스러웠고, 금빛 치장은 참으로 황홀했습니다.
거미는 처음 본 순간 달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달님의 얼굴로 다가간 거미가 달님께 살포시 입을 맞추었습니다.
“달님, 일어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거미의 행동을 보고 흥분한 별님들이 소리쳤습니다.
별님들의 소란에 잠이 깬 달님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거미의 흉측한 얼굴에 놀라 슬금슬금 하늘로 도망쳤습니다.
거미는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이 모든 일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소중한 달님을 자기들끼리만 차지하려고 한 별님들이 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겉모습만을 보고 달아난 달님이 야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흉측하게 생긴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고 미웠을 뿐입니다.
그 작은 몸 어디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요?
거미는 밤이 다 가고 새벽이 올 때까지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거미의 눈물은 이슬이 되어 거미의 궁전에 흩어졌습니다.
동이 틀 무렵, 반짝이는 은빛 궁전 한가운데에서, 거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가에 작은 눈물을 머금은 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온화한 아침 바람은 그 안타까운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거미를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날 밤, 별님들은 그들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거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창피한 줄은 아는 모양이야!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보면......”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달님을 넘보다니......”
“아유, 억울해! 그런 녀석은 따끔하게 혼내줘야 하는데......”
별님들은 이런 말들로 거미의 흉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달님은 자신을 바라보던 거미의 슬픈 눈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흉한 모습이긴 했지만, 그 눈빛만은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달님은 그 눈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거미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달님이 거미에 대한 일을 거의 잊었을 무렵, 초록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들은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산을 파헤친 후, 그 자리에 사각 지고 볼품없는 시멘트 덩어리들을 세워놓았습니다.
‘공장’이라고 불리는 그것들은 매일 시커멓고 퀴퀴한 냄새의 연기를 내뿜었고, 그로 인해 하늘도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별들은 숨쉬기조차 힘든 공기를 피해, 까만 밤하늘 속으로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달님은 사라져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울적한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오염된 공기에 지친 달님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변해버린 초록마을엔 달님이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전봇대에 복잡하게 걸린 전선줄에 누워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투박하고 거칠기만 한 전선줄에 눕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달님의 마음속에 예전의 거미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섬세한 직조 솜씨로 잠시나마 달콤한 휴식을 취하게 해주었던 거미.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한 달님을 사랑으로 받아주었던 따뜻한 마음씨의 거미.
달님은 겉모습만을 보고 경솔하게 도망친 자신을 책망하며 후회했지만,
아무리 그리워해도 거미는 달님에게 다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