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 발을 헛디딘 까망이가 주르륵 미끌어집니다. 납작한 그림자라 데굴데굴 구르지를 못합니다. 오래도록 사람의 발길을 닿지 않은 바위가 이끼에 덮혀 꽤나 미끄럽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요. 까망이도 알고 싶은 게 있거든요. 오늘 못 가면 내일 가고, 내일 못 가면 모레라도 기어이 바위가 있는 곳에 이를 겁니다. 그래도 에쿠, 힘이 들기는 합니다.
드디어. 바위가 보입니다. 참 조그맣습니다.
'좀 더 우락부락 클 줄 알았는데... 저렇게 자그맣다니.'
까망이는 실망입니다. 나름대로 편법도 쓰지 않고 한 발 한 발 올라왔는데, 속시원한 대답도 못 듣고 내려가게 되면 어쩌죠?
까망이가 조심조심 다가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자인데요. 제 물음에도 답을 해 주시나요?"
작은 바위가 흘끔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합니다.
"들어봐서. "
에휴, 대답이 짧기도 합니다.
"그림자는 왜 자기 모양이 없어요? 왜 늘 남의 겉모습만 따라해야 하는 거죠?"
"그게 운명이니까. 그림자는 그렇게 태어났어. 내가 물고기가 될 수 없듯이, 너도 일정한 모양을 갖춘 하나의 생명체는 될 수 없어."
"저는 생각도 하고, 말도 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는데, 왜 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거죠?"
"날 때부터 그렇게 규정되었으니까. 만약 네가 운명을 넘어선 것을 바라고 있다면 네가 생겨나기 전으로 돌아가봐. 내가 알려줄 수 잇는 건 여기까지야. 내 비록 만 년 이상을 이자리에서 살았지만, 내가 생겨나기 전의 나 자신은 알지 못한단다. 그러니 너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여기까지야. 내 앎을 넘어서는 질문을 너는 하고 있구나. "
까망이는 운명을 믿지 않습니다. 그림자의 운명도 바위의 운명도 모든 생명체의 운명도 정해진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다만 용기와 지혜와 추진력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까밍이는 자신이 생겨나기 전으로 가보려 합니다. 지금의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지기 이전의 세계로 말입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할 겁니다.
---------> ^^* 잘 되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