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강을 건너온 우리들은
이 곳 국경선 기슭에선
떨어지는 은행잎새 소리쳐 날아오르는
연노랑 저고리, 샛노랑나비떼 랍니다
방금 물의 다리를 건너온
인부의 젖은 어깨에 날아가
죽음의 내음을 톡톡 털어주지만
어느 곳에서 다시 태어날까
오래 망설이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날 놀던 꿈터와 비슷하게 생긴
펑퍼짐한 언덕이 있어 그 곳에 기대어
놀기에 더욱 좋습니다
이름이나 얼굴같은 짐 벗어둔
가벼운 몸뚱아리로
하느작 하느작 날아오르는 춤사위
날마다 매일 열심히 배워
춤의 무대 에 오르려고 합니다
이듬해 가을 그 때 쯤이면 온 극장이
몇 번 쯤 되살아난
연노랑 저고리 샛노랑 나비떼
위한 박수소리로 가득 하겠습니다
숨바꼭질에는 찾아가는 숨바꼭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주친 후 비껴나기 돌아서기 달아나기 어긋장지르기 등
숨바꼭질의 형태는 다양하다 앞서 온 그들은
숲 속 놀이터에서 일찌기 많은 것을 요모조모 궁리하였나 보다
한 번 죽음을 겪은 우리들은 유희의 죽음 속에
생매장 당한 채 죽은 척 숨어 살 수만은 없어
어느 햇살 좋은 날 무덤에서 한꺼번에 떼지어 부활하였는 데
가해자들이 살해의 그날을 끔찍한 공포로 기억하도록
부활한 우리들은 몹시 아름답고도 가벼운 몸짓의 연노랑저고리
깜찍한 샛노랑나비들로 변신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에 약올리는 듯한 몸짓에
질투가 난 그들은 자신이 그들에게 가해한 사실도 잊고서
살그머니 다가와 말을 붙인다
"얘들아 나를 기억하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지 몰라 "하면서...
나비들은 한결같이 못 생기고 징그러운 지렁이를 본듯이
어느새 저 쪽 풀밭으로 상큼하니 자리를 옮긴다
"나비야 나비야 그 때는 그러한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어"
평생 갈고 닦은 구슬을 굴리듯이 달콤한 주술의 말을 걸어보지만
이미 온혈동물에서 냉혈동물로 피바꿈을 하고
아침이슬로 체질개선을 한 노랑나비들은 더이상 대꾸도 않고
겉은 뾰족하나 마음이 한결같은 사철나무 나뭇가지로 날아가 앉는다
연노랑 저고리 샛노랑 나비가 죽지도 않고 살아서 돌아와서
시베리아의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곳에서 머무르는 것은
이 곳에서 전생을 닮은 바람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생에 그들이 저지른 일들을 이 나라 금수강산 방방곡곡
이 나라 강과 숲 주위의 녹음방초들에게 알리고 다니려다가
갑자기 자신이 현재 하고자 하는 일이 하찮아지고
자신의 앞으로 툭 튀어나온 입모양이 우스워진 나비는
평생의 소망인 사랑의 위안자가 되고자 하던
자신의 순진하고도 고귀한 꿈을 상기합니다
그 대신, 그리스시대 사랑의 화살을 아무개의 심장에 쏘아
그 화살을 맞은 자는 자신이 맨처음 본 것을 사랑하게 하는 ...
소와 말 같은 것을 사람으로 알고 무조건 사랑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병에 걸리게 하는 재능을 지닌
독화살을 등에 잔뜩 갖고 다니던 큐피트를 닮아가는
연노랑 저고리 샛노랑 나비들은
이제 제 고운 날개에 노오란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다니며
얼음 부처인 척 하는 바람 앞에 한 번 최면에 걸려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미혼약 같은 것을
들과 강과 숲과 산 여기 저기에 뿌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복수를 아는 나비는 더이상 시인이 아닙니다
얼음옷을 벗은 바람이 더이상 시인이 아니듯이
그래도 어리석은 풍류객들은 평생 갖고 놀던 노리용 언어를 못 버리고
숲 속 빈터 신들의 놀이터에서 잘난 척 하고 싶은 것일까
우스꽝스러운 유리 인형 놀이를 처음부터 다시 엮고 싶어서
유리 울타리 너머 이 곳까지 빈번하게 놀러오는 것일까
연노랑 저고리 샛노랑 나비들은
무슨 철천지 한을 풀 것이라도 있다는 듯이
무덤 위를 잊혀진 봄날 풍경처럼 하느작 하느작 날아 다니며
주위의 들꽃과 풀들에게 나무와 개울물에
최면의 노오란 가루를 뿌리고 다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