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태양의 제국 입구. 이런 곳에도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걸까. 어쩌면 바람 한 줌 불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섰다. 어쩌면 '바스락' 소리가 제일 먼저 일행을 맞이할 거라고 공주는 생각했다.
"헤~ 뭐야, 다른 나라랑 똑같잖아. 난 또 밤이 없다기에 바삭바삭 과자같은 나라일 거라고 생각했어."
5월의 붉은 장미가 제국의 입구를 뒤덮고 있어, 강렬한 향에 아찔하였다.
"마른 하늘에서도 비는 내리는 법이니까. 그래도 다른 곳의 장미와는 달라. 왠지 생기가 없고, 늘 무언가 부족해보이는 게 사실이야."
"초챙, 너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누구야? 또 무슨 반란군 친구니?"
"흠, 그게 말이야. ... 왕 자신이야."
순간 페이퍼는 의아함과 당황함을 함께 느꼈다.
"왕이 밤을 없앴다면 왕이 다시 불러오면 될거잖아."
"그러게. 그렇게 쉽다면,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겠지. 한 번 태양의 왕국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더 이상 왕 자신만의 왕국이 아니게 된 거야. 태양에 경도된 수많은 신하와 백성들이 낮과 밤이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지 않아서 왕도 어쩔 수가 없나봐. "
"태양의 왕국을 왕국답게 지켜내기 위해서는 대다수 백성의 의지를 따라야 하는 거잖아."
"넌 권력의 한 가운데 서 있어서, 권력의 두려움을 오히려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하고 초챙은 왕국으로 성큼 들어섰다. 남 다른 볕. 세상에는 참 다양한 나라가 존재하는 것 같다.
권력이라. 공주는 권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날 때부터 생득적으로 권력을 쥐고 있었고, 무엇이든 뜻한 대로 이루지 않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초챙, 가진 게 많다는 건 말이야. 책임져야 할 것도 많다는 의미일까?"
잠잠히 걷고 있던 공주가 말하자 초챙이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뜬금없이 왜 그런 소릴 하는거야?"
"글쎄. 태양 왕국의 왕 얘기를 들으니 내가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것 같아서 말이야. "
"뭐야, 공주. 드디어 철 드는 거야?"
초챙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철은 무슨... 이봐, 우리 가진 거 너무 많은 거 아냐? 독사 한 마리에 해독제 그리고 밤을 불러올 수 있는 약병. 게다가 마법사와 마법 조금 할 줄 아는 공주. 우리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나봐. 그래서 책임져야 할 일도 많이 생기는 거 아닐까. 뭐 하나라도 버리자."
페이퍼가 말하자 초챙이 째릿 쳐다보며 말했다.
"공주 너 버리면 딱이다."
"ㅠ.ㅠ 누가 뭐래."
그들이 만난 왕은 태양 제국의 왕 답지 않게 초췌해 보였다. 늘 고민하고, 안타까워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는 시종들을 물리고, 공주와 초챙을 가까이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