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미쯔 짱, 어디 가?"
분홍 가방을 총총 챙기는 은서에게 고양이가 묻는다. 길러지고 있는 주제에 늘 제가 같이 살아주는 거라고 박박 우기는 녀석. 외출 할 때도 맨날 체크다. '어디 가?'하고 말이다.
"비행하러 간다. 바람이 좋잖냐."
얼마 전부터 바람보다 빨리 달려 하늘을 날고 싶어진 은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뒷산으로 향한다. 바람보다 빨라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 포기할 줄을 모르냐. 바람보다 빨리 달리면 날 수 있다고 누가 그래? 또 요상한 책 읽었지?"
짜식, 모르는 게 없다. 그래, 책에서 봤다. 어쩔래?
"간다. 집 잘 보고. 전화 받지 마라. 또 냐옹거리면 사람들이 너 잡아간대."
가벼운 협박을 끝내고 은서는 집에 있는 것 중 가장 폭이 넓은 보자기를 가방에 폭폭 담았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헝클어졌다. 어째 길이 들지 않는지. 선전에서는 온갖 바람 다 맞고도 멀쩡해지는 머릿결도 있더구만. 뻣뻣하고 모난 머리카락이 나는 데에 방해가 될 듯하다면서 은서는 혼자 투덜거린다.
뒷산 작은 언덕에 경사가 가파른 곳이 있다. 책에서 보았던 대로 다다다다 내달려 바람보다 빨라지는 연습을 하는 히로미쯔, ..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에코코코 ..." 쿵. "아프다." 그럼, 아플 수밖에 없다. 넘어져서 살갗이 까졌는데 제대로일 리야.
폭 넓은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다시 연습 시작.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약간) 둥실... 다다다.. (또 약간) 둥실둥실
"우와, 난다. 봐, 난다니까. 와, 내가 바람보다 빨리 달렸나 봐."
비행. 사람도 새처럼 날 수 있다는 생각에 히로미쯔는 가슴이 벅차다.
경사진 언덕을 다시 기어오르며 연신 싱글벙글인 녀석. 고양이에게 자랑할 생각에 가득차 있다.
"다녀왔어."
"난리났다. 무릎이 어째 성할 날이 없냐."
" 네코 짱. 나 오늘, 바람보다 빨리 달렸어. 믿어져? 연습한 보람이 있다니까. 좀 날기도 했어. 진짜야. "
고양이 녀석, 하나도 기쁜 눈치가 아니다.
"야, 주인님이 날았다니까. "
"주인님, 철 좀 들어요. 잠시 점프 한 것 가지고 날았다니요?"
저 말투, 어설픈 높임말. 주인님 걱정이라는 소리다.
"욘석아, 그래도 너밖에 없구나. 다음에는 너도 데리고 갈게. 주인님 나는 거 구경해라. "
"됐슈. 집 볼래유."
고양이 주제에 걷는 건 새끼 호랑이 같아서 어슬렁 어슬렁 돌아서는 녀석. 외출하는 건 일일이 체크하면서 집에서 은서와 놀아주는 법은 드물다. 애완 동물이 아니라 사감선생인 듯하다. 의심해봐야 한다.
그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든 은서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넓은 보자기를 목에 두르지 않아도, 혼자 힘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꿈. 지금 베란다 문을 열고 한 발 내디디면 요정의 가루가 없이도 날 것 같은 느낌. 꿈 속에서 히로미쯔 짱은 행복하다.
그날 저녁, 거실에 놓인 고양이 집에서 네코짱은 걱정에 싸여 한숨을 쉰다. 에휴, 하늘을 날 수 있는 주인은 필요없는데, 히로미쯔 짱은 좋은 주인이 되고 싶지는 않은 거다. 눈빛이 맑아서 주인 시켜줬더니, 지상에 발이 닿지 않는 꿈을 꾸고 있을 줄이야. 바람을 타고, 히로미쯔 짱이 정말 하늘로 가 버리면 어떡하지? 네코 짱은 걱정이 태산이다. 눈이 하늘을 향해 있는 사람은 지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데, 히로미쯔 짱이 비행을 하면 어떻게 하지?! .. 가 버리면 오래 그리울 텐데...
깜빡깜빡.. 생각하는 고양이.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다,, 잠이 든 고양이. 쌔근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가득하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 바람도 살랑 부는, 오늘도 역시 히로미쯔 짱이 가장 좋아하는 날씨이다.
"네코짱. 학교 갔다 올게. 냉장고에서 우유 꺼내 먹어. 한 잔만 마셔야 해. 네 먹이는 조절해서 덜어 먹고. "
우당탕거리며 히로미쯔 짱이 등교를 하고... 잠이 덜 깬 고양이는 베란다 앞에서 해바라기 중이다.
흠, 오후에도 주인님은 바람보다 빨리 달리는 연습을 하러 갈 게 뻔하다. 이 좋은 날씨를 그냥 넘길리 없다. 어제 '네코짱도 데려갈게."라고 했으니, 오늘은 따라가 봐야겠다. 주인님과 같이 지낸 지 어느새 6개월. 아무래도 그 허황됨에 물들었나 보다.
"에구, 나도 날아봐야겠다."
히로미쯔 짱이 날고 싶다면, 그래서 지상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면, 같이 날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거야. 꿈이 없는 것보다 어렵고, 허황되어 보이지만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가진 히로미쯔 짱이 고양이는 좋았다.
그런데.. '나도 망토 닮은 보자기 챙겨야 하나? 맞는 게 있으려나?"
네코짱은 히로미쯔 짱의 서랍을 뒤적뒤적거리려 방으로 향했다.
뒤적뒤적 주섬주섬... 금세 어지렵혀진 은서의 방. 아무래도 오늘은 벌 서느라고 뒷산에 따라가긴 어려울 듯한데.. 아는 지 모르는 지 망토 비슷한 것을 찾는 녀석. 얌마. 손수건이 있잖아, 손수건이. 그거 찾아. 딱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