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지에 금붕어 한 마리가 흘러들어왔다. 채식주의자인 금붕어는 늪지의 찐득한 물풀을 먹고 살기로 했다.
"입에서 좀 쩍쩍거리지만 그래도 견딜만 하다. 곰곰 씹어보면 달짝한 맛도 나고. 굶는 것보다야 낫지. 암.(끄덕끄덕)"
- 늪지에서 어떻게 금붕어가 사냐고 딴지 걸지 마시라. 우리도 지구에서 숨쉬고 살고 있다. 그리고 이건 동화다. -
어느 달빛이 환한 밤. 한 사내아이가 잠자리 채를 들고 늪으로 왔다. 달빛이 너무 밝아서 늪에 비친 건 달밖에 없는데 잠자리채로 늪을 휘휘 젓는 꼬마녀석.
"얘, 늪에도 많은 생명체가 사는데, 함부로 단잠을 깨우려고 훼방을 놓으면 어떡하니?"
금붕어가 늪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한마디 했다.
"미안. 달빛이 빨리 흐려지기를 바래서 한 번 저어 보았어. "
"달빛을 흐려서 뭐에다 쓰려고?"
"그래야 별빛이 보일 거 아냐?"
사내아이가 하는 말에 금붕어는 후다닥 잠에서 깨어나버렸다.
"뭐야, 고작 별빛 비친 거 보겠다고 늪을 휘젓는단 말이야?"
화가 나서 퉁퉁 말을 하자 꼬마 녀석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너와 늪 친구들의 잠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별빛을 건져다 쓸 데가 있었거든. "
호기심이 생긴 금붕어가 물었다.
"어디에 쓸건데?"
그러자 갑작스레 화안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 녀석이 말했다.
"으응. 별밭을 가꾸는 사람에게 줄거야. 별은 별빛을 먹고 자라거든."
"야, 세상에 별밭이 어딨니?"
금붕어가 믿을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꼬마 녀석이 말했다.
"늪에 사는 금붕어도 있는데, 왜 없겠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 혹은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야. "
"그럼 나도 구경갈 수 있어?"
"그래. 달빛이 흐려지고, 별빛이 나오면 그걸 건져 담아 같이 가보자. "
그래서 늪지에서 잠 깨어 있는 두 생명체, 사내 아이와 금붕어는 밤이 더 깊어 별의 세상으로 다가가기를 기다렸다.
** 총총 ** 총총 **
별님들이 나오고 늪에 별빛이 가득해졌다. 잠자리채로 별빛을 건져올려 비단 자루에 넣은 어린 녀석은 호기심 많은 채식주의자 금붕어를 어깨에 올리고 별을 가꾸는 고운 밭으로 향했다. 늪지를 벗어나, 수풀을 헤치고, 나무숲을 지나 불이 켜진 오두막 한 채를 뒤로 하고 살금살금 다가간 곳에 드넓게 펼쳐진 별밭.
"우와, 정말이잖아. 진짜 별밭이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이지?"
아직은 어린 무수한 별들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이 사방에 펼쳐진 3차원의 별밭. 낮게 혹은 조금 높게 또는 아직 땅에 붙어서 많은 별들이 총총 노닐고 있었다. 날 좋은 저녁마다 별을 뿌리는 여신이 지구에 놀러왔다가 '달팍'하고 별바구니를 엎어버려 쏟아진 것 같은 곳.
어린 녀석은 늪에서 건져올린 별빛을 흩뿌리듯 별밭 가득 던져놓았다. 그리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별밭을 가꾸는 건 우리 할머니가 하시는 일이야. 나는 별빛을 건져올려 양분을 공급하고."
"이걸 가꾸어서 어디다 쓰는데?"
초록과 분홍 그리고 파랑과 빨강 가끔 눈에 띄어 특이한 회색의 별들.
"오랜만에 별밭을 볼 수 있는 친구를 데려왔구나. 녀석. 가끔 쓸만한 친구들을 사귄다니까."
머리카락이 별처럼 빛나는 할머니는 별만큼 고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늪에 사는 채식주의자 금붕어. 딱 보면 알잖아. 얘 눈엔 보일거라 생각했어. "
"하핫, 안녕하세요? 할머니. 별을 키워서 뭐 하세요?"
"우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사람들 마음 속에 꼭꼭 심어주기도 하고, 어두운 밤길에 살짝 띄워 밝혀주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쓰지. "
"세상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별은 우주에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각 행성마다 별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지. "
"그런 일은 누가 맡나요?"
"제일 나이가 많고, 제일 한가하고, 제일 철이 늦게 든 사람이. 여기서는 그게 바로 나야. "
"우와, 멋있어요. 제 마음에도 별을 심어주실 수 있나요?"
"어떤 별을 갖고 싶으냐? 별밭을 볼 수 있는 금붕어에게 별 하나쯤은 줄 수 있단다. "
"저는 제가 있는 곳의 평화를 지키는 별을 갖고 싶어요. 힘과 용기와 지혜를요."
"네가 지금 있는 곳은 충분히 그러하지만, 나중에 네가 어디서 살게 될 지 모르니까, 그 소원을 들어주마. "
할머니는 금붕어에게 파란 별 한 조각을 심어주었다. 드넓은 지구에서 별밭을 알아보고 가꿀 줄 아는 세 생명체. 할머니와 소년과 금붕어는 별빛을 밟고, 별 계단을 올라가 많이 자라서 이제는 꽤나 높이 떠 있는 별들을 청소하며 그날 하루를 지냈다.
지구라는 행성 어느 한 곳에서 별밭을 가꾸고 계신 할머니와 별빛을 모으는 어린 소년과 파란 별조각을 가슴에 담은 채식주의자 금붕어를 위하여. 언젠가 내가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며.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