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두운 건 싫은데... 여긴 너무 깜깜해.'
초록 별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일곱번째 별조각 - 자칭 행운이-는 자신이 굴러떨어진 듯한 낯선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이 어두컴컴함이.
깜빡깜빡...깜빡.. 시간이 흘러가고 행운이의 눈이 조금씩 '어둠'이라는 것에 익숙해졌다. 무언가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것, 무언가 행운이의 곁을 '파닥'스치고 지나가는, 알록한 색채, 보들한 존재들... 여기는 또 다른 우주인걸까?
"야야, 정신 차렸으면 이쪽을 봐. 네가 내 살갗에 상처를 낸 것 보여?"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한들한들거리는 어떤 것이 보였다. 행운이는 아마 이 보들거리는 것에 떨어졌었나 보다.
"으아, 미안해. 정신이 없었어. "
"뭐, 그런 것 같았어. 내 상처는... 뭐,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지만, 정말 마음 쓸 것도 없어. 너그러운 바다가 자연스레 치료해 줄테니까."
"바다가 뭔데? 그건 병을 고쳐주는 의사니?"
처음 듣는 것 같은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행운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푸하하하, 넌 대체 어디서 온 녀석이냐? 네가 있는 이 곳이 바로 바다야. 그 중에서도 심해지. 난 물풀이라고 해. 이 곳에 뿌리내리고 산 지.... 에 또 한 수 천 년은 됐겠다."
"어, 그래, 바다. .. 우주 여행을 나왔던 거북 영감에서 얼핏 들었던 것 같아. 독수리를 타고 왔던 거북 영감. 그 분 고향이 바다랬어."
"우주라고? 넌 그런 괴상한 곳에서 왔냐?"
물풀은 우주에 대해 들은 적이 없나보다.
"무한 우주는 괴상하지 않아. 단지 가늠할 수 없을 뿐이지."
뾰로통하게 말하자 물풀이 되받았다.
"우주라는 곳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이 무한 바닷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곳이니?"
"아냐, 이 바다를 벗어나야만 우주에 가까워질 수 있어."
물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도 안돼. 바다를 벗어난다는 건 생명을 버린다는 말이야. 생명 없이 어떻게 다른 세계를 보니?"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물풀, 단 한 번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는 듯했다. 자신이 살았던 수 천 년 동안 말이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잖아. 네 자리를 떠나보는 것 말이야. 나도 무한 우주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지금 보니... 멀쩡하잖아. 단지 몸집이 작아졌을 뿐..."
"그래도 뿌리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어. 특히 나는 말이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닐 지도 몰라. 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거야."
바다 세계가 궁금해진 행운이, 우주 세계가 궁금해진 물풀은 서로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말도 많은 바다와 우주... 둘은 바다 밑 세상의 흐름이 바뀔 때까지 대화를 계속했다.
..........
그러다 어디선가 의견 대립이 생겼다.
"네가 속했던 곳이 무한 우주라면 내가 있는 이 곳도 무한 바다야."
물풀이 말했다.
"이봐, 우주에서 보면 이 곳은 작은 별에 속한 작은 바다일 뿐이야. 끝이 있다구. 작은 별에는 작은 바다, 큰 별에는 큰 바다가 있지만 그곳들은 모두 한계가 있어."
행운이도 지지 않고 말했다.
"무한하다, 유한하다를 누가 정하는데? 네가 정하는 거야?"
"물론 그렇지는 않아. 단지 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무한한거야."
행운이의 주장에 물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그렇다면 이 곳은 나에게 무한 바다야. 난 내가 속한 바다의 끝을 상상할 수 없거든. 네가 속했던 그 우주라는 공간 말이야. 그곳은 너에게 어쩌면 무한한 곳일 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어떤 존재에게는 그곳이 유한한 장소일 뿐일테지. 마치 네가 나의 바다를 판단하듯이 말이야."
물풀의 차분한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사고가 미치지 않는 어떤 곳에는 우주라는 개념보다 훨씬 크고 넓은 어떤 곳이 있을 지도 모른다. ...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 그걸 종종 잊고 있었는데..
"미안해. 내 주장만 해서. 네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어. 맞아, 크다 작다, 무한하다 유한하다, 넓다 좁다 등등 모든 건 상대적이야. "
행운이가 쭈삣거리며 사과를 하자 물풀이 미소지어주었다.
"괜찮아. 네 덕분에 우주라는 곳에 대해 알게 되어서 기뻐. 어쩌면 내가 속한 바다는 무한하지 않을 지도 몰라. 하지만 평생을 탐구해도 난 내가 속한 바다를 모두 알고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바다는 늘 변화하니까."
"물풀아, 덕분에 좋은 걸 깨달았어. 상대적이라는 개념 말이야. 난 지금까지 무한 우주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퍽 자랑스러웠어. 그래서 작은 공간에 갇혀 아둥바둥 살아가는 존재를 무시한 적이 많았단다. 참 어리석다고 말이야. 그런 좁은 곳에서 무슨 의미를 발견할까 하고 ... 참 교만했던 것 같아.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이 다르고, 나의 가치와 그들의 가치가 다르다는 생각, 해보지 않았는데.. 고마워. "
우주와는 다른 세계... 바다 속에서 행운이는 자신에게 '상대적' 개념을 생각하게 해 준 물풀을 만났고, 그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좁다고 생각했던 이 바닷속에서 자신이 다시 별님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물풀아, 바다는 얼마나 넓을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곳에 바다 별이 하나 뜬다고 해도 별 상관 없겠지?"
"바다 별이라... 초록색 바다별. 고울 것 같다. "
행운이는 물풀의 무한 바다 속에서 자신이 바다 별이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 ㅜ.ㅜ; 두 번째 쓰는 글...
또 에러 나면 '뿌셔' 버려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