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은 거친 바람이 검은 하늘을 할퀴듯이 휘어 감는 밤이었습니다.
매서운 추위가 사내의 온 몸을 꽁꽁 얼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밤의 숲을 가르는 광풍이 나무 사이를 누비며 을씨년스러운 소리를 냈습니다. 하늘 저 높이, 구름에 가려 희미해진 초승달만이 칠흑의 어둠을 밀어내는 혹한의 날씨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매서운 바람에 쓰러질 듯 휘청 이면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등에는 작은 배낭이 단단히 메어져 있었는데, 그 배낭 안에는 산양의 젖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아기는 벌써 사흘이나 굶고 있을 터였습니다. 황량하고 쓸쓸한 오두막에서 굶어 죽은 채 앉아 있는 아기와 아내의 모습이 자꾸만 연상되어 아버지는 잠시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2.
통나무로 지어진 그들의 집은 빽빽한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고지의 깊은 숲 속에 있었습니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곳에서 그들이 언제부터 또 무슨 이유로 살게 되었는지는, 그들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신께서는 그들의 오두막을 지상의 사계절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봄이면 다채로운 꽃의 씨앗과 동물들이 터를 잡아 생명을 시작했고, 여름이면 온갖 신비한 풀과 나무가 세상을 뒤덮듯이 넘쳐났으며, 가을에는 색색의 빛과 향기로 가득 찬 나무들이 그 오묘한 잎을 자연에게 뽐냈습니다.
하지만 겨울만은 냉혹하고 차가웠습니다. 겨울이 오면 화려했던 모든 식물들이 얼어서 사라졌고, 짐승들은 제 먹이를 찾아 오두막 멀리로 떠나갔습니다. 오직 한 쌍의 인간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동안에 부부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잣나무껍질을 벗겨서 끓인 죽과 햇빛에 말린 솔방울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도 지금처럼 한 겨울로 접어든 때에는 찾을 수가 없어 스스로 떨어진 솔잎들이 있는지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께 너무 혹독한 계절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드렸지만, 신께서는 인간의 기도에 대응치 않으셨고 겨울의 두려움은 지속되었습니다.
인간의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은 지난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조금씩 불러오던 그녀의 배가 가을의 말미에는 곰의 그것처럼 크게 부풀었습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아기가 태어날 것 같다며 자신의 큰 배를 쓰다듬곤 했습니다. 남자는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무엇보다 겨울의 무서움에 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식량이 될 수 있을 과일과 식물의 뿌리들을 가을이 가기 전 열심히 모아 놨습니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가 만약 자신들처럼 먹지 못한다면 필경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매년, 가을이 끝나는 날에는 장대비가 억수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오두막을 뚫을 듯이 두드리던 그 빗소리는 자정을 알리는 시계 종소리와 함께 뚝 그칩니다. 종소리와 함께 겨울이 시작되었고, 그 때부터는 비가 눈으로 바뀌어 엄청난 폭설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기는 비가 눈으로 바뀌는 그 시간에, 다시 말해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그 순간에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의 험난한 인생을 암시했던 것은 아닌지 훗날 아버지는 떠올리게 됩니다.
인간의 아내가 아이를 낳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출산의 과정에서 몹시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집은 너무 추웠습니다. 통나무로 지어진 집은 밖에서 부는 미친 듯한 바람과 폭설만을 막아줄 뿐 뼈 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막아주진 못했습니다. 남편은 가을에 모아 둔 음식을 죽으로 만들어 아내에게 먹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음식을 잘 넘기지 못했고, 어렵게 먹은 음식도 그대로 토해버렸습니다.
엄마가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기 역시 하루하루 말라갔습니다. 아기는 배고픔과 추위 때문에 계속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 입고 있던 사슴 가죽을 벗어 아기에게 덮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질긴 풀잎을 엮어 만든 얇은 천을 입었습니다. 아기는 배가 고픈지 연신 엄마의 젖을 빨았지만 나오는 젖이 별로 없어 다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기의 엄마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아기를 바라봤습니다. 울 힘도 없는지 아기는 기운 없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단 한 방울의 젖도 아기에게 먹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여보....... 이러다 우리 아기가 죽겠어요......”
아내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더 이상 젖이 나오질 않아요....... 아기가 하루 종일 먹은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보며 엄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말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버렸고, 아기는 창백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젖을 구해와야겠소. 세 개의 산을 넘으면 여기와는 다른 곳이 있다고 하더군. 그 곳에 가서 동물의 젖이라도 얻어 오리다”
아이의 아버지가 결심한 듯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이의 백지 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굶주림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대로 있었습니다.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너무 멀잖아요. 이런 날씨 속에서 거길 다녀오려면 열흘은 걸릴텐데......” 하고 아내는 이내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동안 아기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질긴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 배낭을 챙기면서 남편은 아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앉아 아기를 굶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는 다녀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없는 동안에 아내가 먹을 수 있도록 얼마 남지 않은 으깬 과일을 그릇에 담아 그녀에게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입김을 불어 아껴 쓰고 있는 불씨를 살렸습니다. 토기에 눈을 담아 불 위로 올렸습니다. 그것이 녹으면 따듯한 물이 될 것이었습니다.
떠날 채비를 마친 남편이 문을 열자 광포한 눈발이 사정없이 실내로 몰아쳤습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서둘러 문을 닫고 가야할 언덕 너머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둑해지는 하늘에 눈보라마저 심해 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입은 옷은 추위를 조금도 막아주지 못했고, 살에 떨어진 눈이 녹으면서 오히려 얼음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뼈 속 깊숙한 곳까지 치밀어 오르는 한기를 느꼈습니다. 그 때 그는 아기를 생각 했습니다. 자신이 구해올 젖을 힘차게 빠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어스름한 산등성이를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3.
아이의 아버지는 사흘 밤낮을 걸었습니다. 가져간 말린 나무뿌리가 도중에 다 떨어지자, 그는 배고픔을 달래려 눈을 마음껏 집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온통 얼음뿐인 세상을 가로질러 산양의 젖을 구했습니다.
폭풍우와 폭설과 빙하의 세계가 그를 막아섰지만 그는 다시 며칠 밤낮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아름드리 적송을 보자 그는 정말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 구릉만 지나면 아내와 아기가 기다라는 오두막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추위도 잊은 채 언덕을 향해 달렸습니다. 드디어 그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치우지 않아 오두막 지붕에는 한 척도 넘는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는 힘든 줄도 모르고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오두막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자리 잡았습니다. 집에 아주 가까이 갔을 때, 그는 그의 오두막에서 어떠한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순간 그의 심장이 사정없이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집에 들어섰을 때, 집 안은 밖과 다름없는 추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불씨는 이미 꺼져 있었고, 그릇 속의 음식은 차갑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서 있는 그녀의 두 팔은 힘없이 아래로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황급히 아내에게로 달려가 어깨를 흔들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죽은 것일까.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기는? 아기는 어디에 있지? 그는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기가 없었습니다.
모두를 잃어 버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그는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의 아내가 얕은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급히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괜찮소?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오.”
그의 아내는 정신을 차리려 하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전 괜찮아요. 당신 말대로 잠시 잠을 잤을 뿐이에요.”
라고 말했습니다.
내 말 대로라니, 남편은 어떤 충격 때문에 아내가 이상한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건 그렇고, 가져오신 젖은 아기가 잘 먹었나요?”
하고 그에게 아기의 행방을 묻고 있었습니다.
“여보, 아기는 당신이 보고 있지 않았소. 나는 지금 막 돌아왔단 말이오.”
남편이 걱정스레 아내를 살피며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역시 이상한 말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럴 리가요. 당신이 돌아와서는, 이제 걱정 말고 잠이나 자두라며 아기를 데려갔잖아요.”
그녀는 얼마 전의 일을 왜 모르냐는 듯 남편을 의아하게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 남편은 어떤 한 순간의 장면을 떠올리고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죽음의 신이다! 죽음의 신이 내 아이를 데려갔구나! 집으로 올라오면서, 그는 어떤 검은 그림자가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어깨에는 희미한 보퉁이가 얹혀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죽음의 신이 남편인 것처럼 들어와 아내를 안심시키고는 아이의 영혼을 담아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태초에 인간을 빚으신 하늘의 신께서는 인간의 모든 삶과 죽음을 인간 본연의 마음에 두셨습니다. 하지만 사악한 죽음의 신은 하늘의 뜻을 곧잘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기가 죽어가고 있을 때 언제나 그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어린 생명을 훔쳐갔습니다. 죽음의 신은 오래전부터 아이가 있는 오두막을 서성거렸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너무도 나약하고 힘이 없어서 끊임없이 죽음의 신을 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의 신은 떡갈나무에 숨어 아기를 데려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기를 먹일 젖을 가지고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아기를 데려갔습니다. 그 악마는 해가 뜨면 신의 노여움이 자기에게 미칠 것이 두려워 언제나 동이트기 직전에 아기의 영혼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들의 아기도 그렇게 될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벌써 달이 서쪽 하늘의 중간까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면 영원히 아기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배낭을 메고 그 안에 칼을 넣었습니다.
그가 폭설을 뚫고 한 참을 내려와서야 그는 죽음의 신이 머물던 거대한 떡갈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돌보지도 않은 채 두려움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4.
그가 놓인 새로운 세계는 괴기한 소리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죽은 아기를 끌어안고 우는 모든 부모들의 애통한 비탄이 뒤섞인 것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처음 보는 기괴한 식물들이 스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하나 같이 붉은색 눈을 가지고 그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눈 안에는 이미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원망이 그대로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아기의 이름을 크게 불러 소리쳤습니다.. 그랬더니 가시 잎으로 뒤덮인 덤불속에서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눈동자가 나타났습니다.
“여긴 인간이 올 곳이 아닌데, 어쩐 일이지?”
그 눈빛이 말했습니다.
“저는 제 아기를 찾고 있습니다. 죽음의 신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십시오.”
아기의 아버지가 눈동자를 향해 말했습니다.
그러자 덤불을 헤집고 무언가 걸어 나왔습니다.
두 다리는 곰의 것이었고, 두 팔은 늑대의 것이었으며, 도마뱀의 혀와 올빼미의 부리를 가진 괴수였습니다.
그 괴수는 눈이 비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빈 동공이 암흑처럼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보다시피 나는 눈이 없어. 그러니 네가 갈 길을 알고 있어도 말해줄 수가 없지.”
괴수는 어쩐지 슬픈 목소리로, 그러나 어딘가 야비하게 들리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바짝 다가와 얼굴을 댔습니다.
“그런데 너는 아주 좋은 눈을 가지고 있구나. 매우 크고 밝은 눈이란 게 느껴져. 그 눈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길을 안내할 수도 있을텐데.......”
괴수는 도마뱀의 혀로 자기의 얼굴을 핥으며 말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괴수의 말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제 눈을 가져가십시오. 그 대신 죽음의 신에게 가는 길을 말해주십시오.”
그 말은 들은 괴수는 이상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와, 늑대의 두 팔을 그의 양 어깨 위에 올렸습니다.
괴수는 한 번 크게 웃더니,
“날 원망하지는 말아.” 하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아이의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괴수가 그의 긴 부리를 이용해 그의 두 눈을 파먹어 버린 것입니다.
5.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는 한 손을 더듬거리며 한참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물컹한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것은 사악한 뱀이었습니다.
거대한 뱀은 똬리를 틀며 그의 몸을 감싸 안았습니다.
“이런 곳에서 인간을 만나다니 이상한 일이군. 너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지?”
하고 뱀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뱀은 인간을 살펴보려는 듯 그의 얼굴로 가까이 왔습니다. 뱀의 머리는 세 쪽으로 갈라져 있어 매우 징그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제 아기를 찾아가려고 왔습니다. 제게 죽음의 신에게로 가는 길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죽음의 신에게로 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거기까지 가는 고통을 견딜 수가 없거든.”
긴 혀를 날름거리며 뱀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네가 나를 돕는다면 길을 알려줄 수는 있지.”
뱀은 인간의 반응을 살피려고 더욱 다가왔습니다.
“제 아이를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교활한 뱀은 아이의 아버지를 꼬리로 툭 쳤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잡고 따라와라.”
하고 말했습니다.
뱀이 인도한 곳에선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뱀이 몸을 곧바로 세워 열기가 나오는 곳을 한번 쳐다본 뒤 다시 아이의 아버지를 보며 말했습니다.
“지금 네 앞에는 돌로 된 긴 길이 있다. 그 길의 돌들은 강한 불길로 뜨겁게 달궈져 있지.”
뱀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벌이었다. 하늘의 신께서는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길목마다 저렇게 뜨거운 돌길을 놔두었지.”
그러더니 뱀이 갑자기 아이의 아버지의 몸을 빙그르 타고 올라갔습니다.
“나를 안고 저 불의 돌길을 걸어가라. 그리고 저 길 끝에서 나를 놓아준다면 너에게 한 약속을 지키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뱀을 안고 불의 길 앞에 섰습니다. 말도 못할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머리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헝겊을 덧댄 초라한 그의 신발이 불에 붙어 온 몸을 휘감지 않도록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맨발로 천천히 불의 돌판 위에 올라섰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뼈 속까지 밀려왔습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살점이 늘러 붙었습니다. 그렇지만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속에서도 아이의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한발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기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길을 건너자, 자유로워진 뱀이 꿈틀거리며 빠져나왔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제 죽음의 신에게 가는 길을 알려주십시오.......”
아이의 아버지가 힘겹게 말을 했습니다.
“지독한 사랑의 인간이여....... 너희 인간은 알 수가 없구나.”
하고 말한 후, 뱀의 세 갈래의 머리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지 괴기스럽게 각기 움직였습니다.
“오른쪽 종려나무 숲으로 가라. 그곳 어딘가에 죽음의 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여, 죽음의 신은 언제나 시험을 통해 인간을 괴롭힌다는 것을 명심해라.”
하고 뱀이 말했습니다.
뱀은 신이 자신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늘을 한번 힐끗 거리더니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아이의 아버지는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은 이미 뭉개져 고름과 살점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걷기는커녕 설수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기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야 아빠가 간다..... 이제 곧 아빠를 만날 수 있을거야..... 땅에 엎드린 아버지는 수없이 되뇌이며 팔을 뻗고 땅을 짚어 나갔습니다.
6.
그가 숲에 들어섰을 때, 어떤 목소리가 다가와 그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네가 나를 찾아온 인간인가.”
그 목소리는 남자의 것 같기도 하고, 여자의 것이나, 어떤 들짐승, 또는 새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오묘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소리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목소리일지도 몰랐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신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에게서 제 아기를 돌려받기 위해 왔습니다......”
힘이 소진된 아이의 아버지가 힘겹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아주 특별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구나. 네가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의 신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너는 내가 보내는 곳으로 가라. 그 곳 어딘가에 시들어 가는 꽃이 있다. 그 꽃에게 네가 가진 물을 전부 주어라”
“하지만..... 제가 가진 물은 제 아이가 먹어야할 젖뿐입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애원하듯 말을 이었습니다.
“당신이 데려간 그 아이는 젖을 먹지 못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의 신이 말했습니다.
“이제 곧 동이 틀 것이다. 너에겐 시간이 없다”
7.
죽음의 신이 말을 마치자마자 거대한 한 떼의 구름이 밀려와 뒤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색깔이 다른 수 백 가지의 구름이 뒤엉켜 여러 가지 세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갑자기 숲으로 우거진 정글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더니 금방 황무지의 넓은 벌판이 나타났습니다. 또 순식간에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는 모습이다가 고요한 푸른 초원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듯 구름 속의 세계는 우주의 처음과 끝을 모두 보여주다가 마침내 하나의 세상을 내놓았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뜨거운 모래의 감촉을 배와 팔로 느꼈습니다. 그는 그 곳이 사막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죽음의 신이 말한 꽃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는 뜨거운 사막을 구르고 또 굴렀습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가 아기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렇게 한없이 모래언덕을 구르며 꽃이 만져지기를 바라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는 볼 수 있는 눈도 없었고, 설 수 있는 다리도 없었습니다.
작렬하는 태양 빛이 그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습니다.
수천, 수만의 모래구덩이와 언덕을 구른 그의 몸은 피와 고름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 순간, 문득 무언가 그의 팔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정신없이 그것을 향해 기어갔습니다.
그리고 한 참을 더듬은 후에 시들어가는 꽃의 줄기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아직 살아있는 한 송이의 장미꽃이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지금껏 간직해온 배낭안의 가죽물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 물주머니 안에는 그토록 소중한 젖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젖을 꽃에게 준다면, 그의 아기는 굶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만날 수 있는 길은 그렇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한번 바라봤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물주머니를 꽉 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것을 자를 칼을 찾아 쥐었습니다.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는 꽃의 뿌리 가까이에 물주머니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칼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는 힘껏 칼을 내리 그었습니다.
8.
억겁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멈추어 선 채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사막 가운데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젖으로 가득 찬 물주머니가 고스란히 쥐어 있습니다. 그 젖은 이제 그의 아기가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르륵, 모래를 딛고 서는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죽어가던 장미가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장미꽃은 뜨거운 생명의 물을 먹고 있었습니다.
장미의 뿌리에는......
한 아이의 아버지의 팔목에서 흐르는 검붉은 핏줄기가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그 장미꽃은 어쩐지 그의 아기를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