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막대기가 하나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도로 옆, 즉 갓길이었다.
휴지통을 찾고 싶었는데,
아무리 멀리 내다보아도
끝없이 길만 이어져 있었다.
휴지통은커녕 사람 사는 집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버려진 막대기는 길을 따라 가도 보면 틀림없이
휴지통이나 소각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분해되는 것보다는 재빨리 회수되어 불태워지는 게 낫다고 보았다.
자연분해야 수백 년이 걸리지만
소각이야 어디 그런가. 몇 주 이내에 실행되는 것이다.
'걷는 것보다야 뛰는 게 나아.'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데,
갓길에 핀 민들레가 말을 걸었다.
"어딜 그렇게 쉬지 않고 가는 거야?"
"되살아나는 길을 찾고 있는 거야."
민들레가 말했다.
"나도 데리고 가."
민들레를 둘러메고 달리고 있는데,
금잔화가 불쑥 말을 건넨다.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거야?"
"한 알의 씨앗이 죽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지 않거든. 난 그 씨앗이 되려고 해."
그러자 금잔화가 부탁을 해 왔다.
"나도 함께 가도 되나?"
머리에 금잔화를 꽂고 달려가는 막대기.
한참을 가도 소각장이나 휴지통은 보이지 않았다.
'아차, 난 막대기고 얘네들은 꽃인데, 나에게야 휴지통이나 소각장이 필요한 장소이지만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잖아."
이런 후회를 하며 달려가는 막대기에게 아기 별꽃이 말했다.
"예쁜 꽃을 달고 어디에 가는 거야?"
"나는 나의 길을, 이들은 내 길이 끝나는 곳까지만 동행하는 꽃들이야."
"그럼 나도 너의 '끝'에 동행을 할래."
아기 별꽃을 목에 두르고 성실하게 달리는 막대기. 드디어 나무 밑둥 모양의 휴지통을 발견했다.
"이봐, 이제 나의 여정은 끝이 났어. 너희들은 너희 갈 길을 가."
민들레와 금잔화와 아기 별꽃은 이별을 슬퍼하면서 자신들의 길을 가기로 했다.
이후 꽃을 꽂고 달리던 막대기는 소원대로 불태워졌고, 새로운 에너지로서 지구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다.
민들레는 홀씨를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갔고,
금잔화는 쉬이 짐을 아쉬워하며 저물어 갔다.
아기 별꽃은 식물학자 손에 들려서 화분 한 켠을 장식하게 되었고 말이다.
우리는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만나 한 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막대기처럼, 민들레처럼, 금잔화처럼, 아기 별꽃처럼
혹은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수많은 존재들처럼
소중하고 아쉽고 귀하고 슬프지만
결국은 자신의 자리 어딘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기왕 그럴 것 꽃을 꽂은 막대기가 되는 건 어떨까.
목표가 있고, 다른 것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바르게 모든 것을 정리하는.
peace and happy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