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아무도 저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네가 알고 싶은 사실이란 어떤 것이지?"
어린 녀석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토끼 눈이 빨간 이유 같은 거요."
다시 내가 물어보았다.
"너의 그 '아무도'는 뭐라고 말해주는데?"
어린 녀석이 즉각 되받았다.
"고춧가루가 눈에 들어갔대요. 그게 말이 되나요? 토끼마다 찾아다니면서 고추가루 뿌리고 있는건 아니지 않아요! 게다가 만약 그런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눈이 평생을 빨갈 수가 있어요?"
내가 어린 녀석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너에게 그 '아무도'가 있어서 동화 같고 환상 같은 대답을 해 줄 때가 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그리운 날이 될 거야."
어린 녀석이 영리한 듯 말했다.
"전 혈관이 비치는 이야기를 알고 있단 말이에요."
대체 '사실'이란 어떤 것일까. 달나라에 떡방아를 찧는 토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바닷물이 파란 이유는 하느님이 물감을 풀어놓아서가 아니라 하늘빛 때문이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구나 태어나 자라고 나이를 먹고 죽어간다는 사실일까. 혹은 동화를 꿈꿀 나이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는 것일까.
어린 녀석이 말했다.
"누구든 나에게 진실만을 말해주었으면 해요."
내가 다시 물어보았다.
"네가 알고 싶은 진실은 뭐지?"
어린 녀석이 주저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하는 의문들이요."
내가 눈을 들어 어린 녀석의 눈을 보며 다시 물었다.
"너의 그 '누구도'는 뭐라고 말해주는데?"
어린 녀석이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생명의 길을 따라와서 생명의 길을 따라 간대요. 난 아무리 눈을 비벼보아도 생명의 길 따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 길을 따라 와서 그 길을 따라 사라져버린다는 거지요?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내가 어린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너에게 그 '누구든'이 있어 생명의 길을 이야기해줄 때가 네 삶에 있어 가장 영혼이 풍요로운 날이었음을 기억하게 될 때가 올 거야."
어린 녀석이 눈빛을 초롱거리며 말했다.
"전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어요. 생물 시간에 벌써 배운걸요."
대체 '진실'이란 어떤 것일까. 1에 1을 더하면 2가 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당분간은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맑고 청명한 날 자살률이 높다는 것일까. 혹은 수단 다르푸르 대학살의 근본 원인은 지구 온난화에 있다는 것일까.
어린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어떤 것도 저에게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요."
내가 다시 물었다.
"네가 알고 싶은 앞으로의 삶이 어떤 것인데?"
어린 녀석이 허리를 똑바로 펴더니 말했다.
"어떻게 사는게 정답인지 하는 거요."
내가 숨을 들이쉬고 말을 계속했다.
"너의 그 '어떤 것'은 뭐라고 하든?"
눈 앞의 어린 녀석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대요. 자신이 걸어가는 그 길이 정답이래요. 그게 말이 돼요? 국어에도 영어에도 수학에도 모두 정답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의 삶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다는 거예요? 내가 내 멋대로 내 식대로 산다고 해도 사람들은 아마 어떤 식으로든 티를 붙여 '틀렸어'하고 트집을 잡을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판단에 의해 모자란 점을 찍어내어 점수를 깎겠지요.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나는 어린 녀석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린 녀석은 진지했으나 그 진지함이 삶의 진실성을 배가시키지는 않는다.
"네가 앞으로 올 누군가에게 그와 똑같은 말을 하게 될 때가 다가오는 것을 경계해. 그 시점이 바로 네가 동화를 잊어버리게 되는 때일 테니까. 그건 생각 이상으로 쓸쓸해지는 일이 될거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혹은 원래부터 의미 따위는 없었던 것일까.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의미 따위도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생명이 붙어 있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초라해보이니까 이것 저것을 갖다붙여 채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미 그리운 것을 그리워 하고 있고, 가장 영혼이 풍요로웠던 때를 되새기고 있으며, 기억하기 어려운 어느 날 동화를 잊어버렸나요?"
내가 어린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내가 어떠했으면 좋겠니?"
어린 녀석이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이미 너무 커버렸군요. "
그런 말을 남기고 나의 어린 녀석이 다시 과거 먼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건 참으로 쓸쓸한 일이었다.
나의 어린 녀석이 먼 시간의 길을 따라 걸어오다가 다시 지금의 내 자리에 서서 먼 기억으로부터의 어린 녀석을 만나게 된다면 나와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은 달리진 인생의 길을 걷다가 조금은 달라져 있을 이미 커버린 미래의 자신을 접하게 되는 것일까. 어린 녀석이 불쑥 다가가 나에게 질문하는 그 날은 내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그런 날일까. 나는 다시 더 자라버릴 다음의 내가 궁금하다.
peace and happy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