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반듯하게 생긴 손수건이나 밋밋한 어떤 것이 아니라 제법 멋을 부린 옷이나 물건을 말이다. 빨래를 하고, 조금 덜 마른 상태에서 주름이 잡히거나 다아트가 들어간 상의 혹은 하의를 다림판 위에 놓고 보면
'뭐, 이까이꺼. 샤샤샥 반듯하게 다릴 수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다림질만큼 쉬운 것은 없는 듯. 자, 이제 실전이다. 적당히 달구어진 다리미를 준비해두고...에 ... 또... 어디부터 어떻게 다려야 하더라. 앞면을 반듯하게 펴 놓고 다리미를 대 보면 뒷 면에 큰 주름이 잡혀 있다. 헉, 이건 아니다. 다시 뒷면을 정리하려 하면 앞 면이 문제가 된다. 아, 차라리 넓게 펴보자. 에 ..그런데.. 다아트 들어간 부분은 어떻게 하지? 여긴 자꾸 우는데.. 걱정이군. 이 우는 부분은 어떻게 다시 다리지. 아주 진하게 다리미가 한 번 지나간 자리는 처음상태로 되돌리기도 어렵다. 이미 너무 많은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세상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는 건 다림질을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만큼 쉬운 게 없어보이지만 그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다림질을 하려고 결심하는 것도 문제이고, 옷의 종류에 따라 다리는 법도 다 달라야 한다. 온도도 조절해야 하고, 옷감에 따른 분류도 필수적이다. 게다가 한 번 다려 놓았다고 그게 끝이냐 하면 아니다. 몇 번 입다보면 다시 빨래를 해야 하고 다시 다림판을 놓고 앉거나 서야 한다.
인간 관계가 손쉬워 보이는 사람이 있다. 주변이 사람들로 넘쳐나고, 대개의 경우 그는 즐겁거나 행복해보인다. 하지만 그는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기보다는 '다림질'에 있어서 부지런한 사람일 뿐이다. 옷을 잘 다리는 게 아니라 옷을 열심히 다리는 사람이다, 그는. 그 역시 다림판 앞에 서면 난감해진다. 또 어떻게 다려야하지? 하면서 말이다. 해도, 그는 쉽게 포기하거나 지쳐버리지 않는다. 옷이란 건 언젠가는 다시 몇 번이고 다려야함을 알고 있으며,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다림질을 포기하는 순간 쓸모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림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끼는 것 중에 실크 스카프가 하나 있다. 몇 번을 욕심내다가 큰 맘 먹고 구입한 물건이다. 해서 필요할 경우 세탁소의 힘을 벌리곤 했는데 어느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직접 세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역시 다림판 앞에 섰다. 헌데 온도조절에 서툴렀던 나는 스카프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가 주굴주굴 울고, 색깔도 변했다. '아, 이런.' 이제 더 이상 스카프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그 스카프. 틀림 없이 내 잘못이지만 돌이킬 수가 없다. 한동안 아까워하며 옷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그게 버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끼는 사람일수록 빨래나 다림질에는 신중해야 한다. 사람은 '입을 수록 가치를 더하는 옷' 같은 것이다. 물론 더 이상 입지 않을 것이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옷장을 복잡하게 만들어놓으면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옷이 설 자리가 없다. 여기저기 치이게 될 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내가 버린 옷과는 달리 나와 인연이 끊어진 사람은 스스로 다림질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의 정리에 있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신중하고, 예의있는 태도가 필요할 뿐이다.
아, 다림질이 끝났다. 오늘은 빨랫감이 많아서 시간이 꽤 걸렸다. 썩 마음에 들게 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굳이 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다려놓으니 더 반질거려서 좋다. 옷장에 착착 걸러놓으며 생각을 한다. 내일은 좀 더 자기 다운 모습의 옷이 되어있을 거라고 말이다. 다리미의 열이 남아 있어 덜 펴지거나 구겨진 부분을 조절해 줄 것이다.
사람들의 세상에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나는 다림질을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빨랫감이 되기도 하고, 다림판 위에 놓여지기도 하고, 옷장에 걸려 있기도 한다. 때로 세탁소로 보내지기도 하고, 세탁소를 찾아가거나 수선집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영영 쓸모없어지거나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기도 하지만 또 중요한 것이 되거나 유쾌한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다림판이 있다. 그리고 다리미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옷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다. 약간의 부지런함이 더해지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원한다면 오늘 혹은 그 전이라도 구겨졌던 옷을 다려보자. 물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미뤄두어도 좋다. 섣불리 덤볐다가 옷을 망쳐버리는 것보다는 잠시 미루어두는게 백 배는 더 낫다. 오늘은 그냥 두고 싶다고? 좋다. 여유가 필요한가보다. 그럼 다림판도 오늘은 쉬겠다. 덩달아 다리미도.
peace and happy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