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향이 좋다는 생각을 가질 뿐, 굳이 깨끗이 물에 씻어서 혹은 닦아서 혹은 칼로 반듯하게 깎아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냉장고 안의 사과는 늘 3개월 이상을 외면 받다가 어느날 버려진다. 금단의 열매라서가 아니라 그저 관심이 없을 뿐.
깔끔하게 깎여서 접시에 곱게 담긴 몇 조각의 사과가 있다. 포크까지 꼽혀 있으니 먹어야 한다는 압력이다. 하는 수 없이 먹어본다. 맛이 없지는 않다. 접시에 담긴 사과를 다 먹고 맛있었다는 말을 한다. 그건 사실이다. 맛은 있다. 특히 풋풋한 것은. 하지만 그뿐. 다시 먹고 싶다거나 이제부터는 먹어보아야하겠다거나 그런 마음은 들지 않는다. 사과는 그저 내 관심 밖의 어떤 것이다.
여기 사과를 좋아하는 아이가 하나 있다. 똘망하게 생긴 계집아이이다. 밥을 먹고 후식은 늘 사과라고 한다. 아침 먹고 사과 반 조각 점심 먹고 사과 반조각 저녁 먹고 사과 반 조각. 남은 반 조각은 야식이라나. 왜냐고 물어보았다. 하고 많은 과일 중에 왜 하필 사과냐고.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가장 평범한 과일이니까." 아하, 그러하냐.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의외로 많은 지도 모른다. 왜 드라마 같은 데서도 그렇지 않은가. 상냥한 사람보다는 좀 까칠한 사람이 인기가 많다. 더 멋져보이게 그려지기도 하고. 하여 학생시절에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듯한 사람에게 눈길이 가고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그저 범생이일 뿐인 사람에게보다는.
나 역시 그러하여 수학 여행에서도 다른 사람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서를 하는 학생에게 눈길이 갔고, 그 녀석이 읽는 책은 나 역시 찾아 읽어 보았다. 별 재미는 없었지만 그저 호기심에. 명절에 독서실에 가서 나 이외에 나온 아이는 유심히 관찰하곤 했었다.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일까 하고. 보수적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녀석이 기준 이상으로 춤을 잘 추는 것도 멋져 보였다. 공부를 코피 터지게 했음에도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에게도 눈길을 주게 되었다. 뭐 누구에게나 이내 시들해졌지만 말이다.
사과를 좋아하는 계집아이는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좋아했다. 세 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서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왔다가 정해진 시간에 학원으로 향했다. 학교든 학원이든 주어진 과제물은 최선을 다해 수행했으며, 가끔 꾀병을 부리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성실한 자신의 하루하루를 즐겼다.
'헤~...'
라는게 내 반응이다. 뭐야, 저런 아이도 있어. 세상에 아직 저런 아이도 있어. 그저 평범한 저런 아이도 있어.
언제부터인가 평범함이 평범하지 않게 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개성이니 자유니 인권이니를 외치게 된 이후 우리에게 평범함이 남아있으리라고 상상치 못했는데, 그 사과를 좋아하는 계집아이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삭한 사과를 먹고 있는 계집아이를 보면서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언제부터 사과에 관심이 없었을까." 아주 어린 시절에는 사과 하나를 더 먹겠다고 동생과 싸웠던 기억이 났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이지? 아하, 생각났다. 사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언제든지 사서, 그게 어떤 사과이든, 내 맘대로 먹을 수 있게 된 이후 사과는 더 이상 매력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이후 사과의 영양가가 떨어졌다거나 맛이 없어졌다거나 등의 이유가 아니라 사과가 단순히 평범해졌기 때문에 나는 사과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런 내 앞에 지금 사과를 평범해서 좋아하는 한 계집아이가 있다. 저 아이는 알고 있는 것일까. 그래,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것의 가치를. 대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계집아이는 평범한 것을 잃고 상심에 빠진 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있을 줄 알았던 것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경험이 말이다.
특별한 것은 혹은 독특한 것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려도 그 빈 자리에 대한 상실감이 크지 않다. 왜냐 하면 말 그대로 독특하거나 특별한 것이었으니까. 체념해버리거나 이내 다른 특별함이나 독특함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평범한 것은 그게 잘 안 된다. 밥처럼, 엄마처럼 혹은 책장에 꽂힌 책처럼. 손을 뻗었을 때 그 자리에 없으면 당황하게 되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다. 그러게, 그래야 하는데,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보려하고, 평화시에 언제나 전쟁을 논의하는 바로 그 우리가 말이다.
사과를 먹는 계집아이가 있다. 사과가 있다. 아삭한 느낌. 여전히 나에겐 관심 밖의 대상이지만. 평범하기 때문에 사과를 좋아하는 계집아이 곁에 있다보면 어쩌면 나 역시 평범하기 때문에 사과를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평범하기 때문에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쓸쓸하면 치대기도 하고 졸리면 자려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단지 사과에 관심이 없지만 말이다.
......... peace and happy ........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