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자와 변하는 것을 원하는 자가 있었다. 그들은 한 가지 일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대체로 싫증도 잘 내는 편이었지만 한 가지 일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했으나 대개의 경우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에 몰두해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자는 공기가 탁해져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 이 공기가 생명이 숨쉬기에 적합치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물이 오염되고 있다는 소식은 언제나 그를 분개하게끔했다. 대체 어떤 몰상식한 생명체가 스스로의 생명을 옥죄는 것일까 하고 그는 턱을 쓸어보았다. (그의 습관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게 싫었다. 정신이든 육체든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도 '피터팬'이었다. 그는 그저 영원한 '소년'이고 싶었다. 하지만 ...
변하는 것을 원하는 자는 시간의 흐름이 더딘게 싫었다. 끈적한 여름이 3개월 이상 계속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추운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금세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사랑이니 우정이니를 외치는 사람들을 비웃는게 그의 취미였다. 사람의 감정만큼 간사하고 가벼운게 또 있을까 하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그의 습관이다) 그는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는 옛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립 반 윙클'도 좋았지만 그저 옛 이야기가 더 좋았다. 백 년이 더 지났어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단지 변화했을 뿐이기 때문에 옛 이야기가 좋았다.
어느 날 변하는 것을 원하는 자와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자는 무척 심심했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 한참 흔들거리다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중 뭐가 더 나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너는 왜 변하는 것이 좋아?"
"고인 물은 썩는다잖아. 썩은 건 쓸모가 없어. 세상에 해만 끼칠 뿐이야."
"썩어야만 거름이 되는 것도 있어. 썩는다는 것도 변화하는 것이고,네 이론대로라면 이는 필요한 것일 수 있다구."
"...."
변하는 것을 원하는 자는 곰곰 생각하다가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자에게 물었다.
"넌 왜 변화하지 않는 게 좋은 거냐?"
"안정적이잖아. 우리는 신경이 예민해서 바뀌는 것에 일일이 적응하기 어려워. 세상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달라져가니까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죽거나 다치거나 하고 있잖아."
"변화가 없으면 사람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변화없는 삶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할 것 같은데."
"...."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자도 곰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다시 흐르고 .. 다시 또 시간이 흐르고...
변하는 것을 원하는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어쩌면 말이야, 그저 살고 싶은 게 아닐까. 그게 변하든 변하지 않든 말이야."
"어, 앞으로도 오래. 내가 떠난 뒤에도 오래오래 생명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 나는. "
"그 표현법이 다를 뿐이었었군.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저 싫든 좋든을 떠나서 그저 우리가 지금을 살듯, 미래의 누군가도 그 때의 지금을 살았으면 했어."
또 시간이 흐르고 별이 총총했다, 날이 밝고 구름이 끼었다, 비가 내렸다 그치고, 저녁 바람이 불고, 그 날은 달이 뜨지 않고 다시 시간이 흐르고 흐르고.
변하는 것을 원하는 자와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자가 오래 따로 있다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님을 인식하고 그리고도 더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어느 아침. 사람의 집에 문이 열리고 생명을 가진 한 사람이 나와 거리로 나섰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공존하는 거리. 나고 성장하고, 낡아가고, 사라지고 그러면서도 변치 않는 것을 추구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하고 신념을 버리려하지 않는 그 사람들의 거리.
우리는 쓸데없는 생각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 우리가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일텐데. 내가 아닌 거울 속의 나를 보고, 내가 아닌 남의 눈에 비친 나를 보고,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에 괴로워하고, 내것이 아닌 가치에 혼란스러워하고. 그리고 정작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에너지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극단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에너지와 능력과 가치가 유일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은 많은 것이 공존하고 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아우른 생명체인 우리는 거리에 서야 한다. 거울이 되기 위해 혹은 거울을 깨기 위해 혹은 거울로서 깨지기 위해.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살고 난 다음에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평가되거나 아니면 평가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될테니까.
어제는 거리에 서 보았고, 오늘은 거리에 서 있고, 내일은 거리에 서 볼 것이다. 변하고, 변하지 않고 그리고 시간이 가고 오고 멈추고 고장나고 그럴테지만 언제나 중요한 건 우리는 지금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peace and happy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