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의 장관이 끝나고, 이제 아침의 태양은 제 자리를 잡아갔다.
"뭐든, 불확실한 게 아름답기는 하지요?"
불을 피운 자가 말했다. 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듯한 이미 오래된 영웅에게 말이다. 흘끔 쳐다보던 오래된 영웅 재크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군요. 이미 정해진 건 강할 지는 모르지만 아름답기는 어렵겠네요. 마치 저처럼 말입니다. "
라고 대답했다.
<한참 달콤한 아침잠에 빠져 있던 포동이는 잠이 벌떡 깨는 듯했다. 우와. 이게 바로 그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그 육봉달에 버금가는 영웅'이야기인거야? 그래서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재크가 어느 길을 왜 택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
"굳이 길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분 같은데, 왜 다시금 길에 서셨습니까?"
불을 피운 자의 물음에 재크는 숨을 깊이 쉬었다.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삶이란게 있나 봅니다. 인생을 한 칠십으로 잡아본다면 누구나 그 세월 사이에 자신이 해야 할 일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일, 해결해야 할 일 등등이 고루고루 나누어져 있는게 아닐런지요. 그런데 한꺼번에 몰아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 버린 사람은 참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막상 자신은 보여줄 것이 남아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
"그건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맞습니까?"
"어쩌면요. 아닐 수도 있구요. 더 큰 영웅이 되고 싶은 헛된 제 욕망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
재크는 왼쪽에서 두 번째 길로 들어섰다.
"그곳은 당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줄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단지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것만 있는 길이지요."
"괴물을 찾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괴물이 될 곳을 찾고 있을 뿐이지요. "
손을 흔들며 재크는 길을 향해 걸아갔다.
"당신이 괴물이 아니라 전설로 남기를 바랍니다. "
불을 피운 자의 음성이 뒤에서 울려왔다.
<뭐야, 영웅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은 이미 너무 영웅 아니야? 바다 괴물을 해치우고, 설인을 생포하고, 검은 멧돼지떼의 습격을 막아낸 게 저 영웅이잖아. 그런데 스스로 괴물이 되고 싶다니 무슨 말이 저래? 포동이는 영웅의 뒤를 따랐다.>
왼쪽에서 두 번째 길의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 했다. 그저 건장한 장년이라는 생각에 그에게 장작 패기를 부탁하고, 저수지를 만드는 일을 거들어달라고 하고, 벌목에 인부로 고용하기를 원했다. 오래된 영웅 재크는 싫은 기색 없이 그 일을 해 주었고, 그 댓가로 음식과 잠자리와 담요 몇 장을 부탁했을 뿐이다.
<이봐요, 영웅이 그런 일을 왜 해요?>
포동이가 물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없는 괴물을 잡아주는 사람보다 저수지 물을 끌어다 주는 사람이 영웅인거야. 영웅은 그 때 그 때 다른 거지."
<그런건 영웅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요. 당신은 괴물을 잡아서 처치하면 된다구요.>
"없는 괴물을 만들 수는 없잖아. 나는 필요한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을 뿐이야."
<언제까지요? >
"내가 왜 영웅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까지. 난 나보다 더 무서운 괴물을 만나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난 나라는 괴물을 아직 잡지 못했어. 그런데도 나는 영웅이야.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정말 괴물이 되어버릴 거야."
그리고 재크는 잠이 들었다.
다시 해가 뜬 날. 재크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마을에서도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자기 안의 괴물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려 하는 것 같았다. 스승이 없으니 스스로를 스승 삼아서 말이다. 그는 정말은 '영웅'이 되는 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괴물을 잡은 영웅이 아니라 자신을 잡은 영웅이 말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은,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은, 주변인들로부터 추앙 받는 사람은 너무 쉽게 타락의 유혹을 받는다. 거만해지고자하는, 안하무인이 되려하는, 제멋대로여도 괜찮다고하는 그리고 추락한다. 오래된 영웅 재크는 그 유혹의 길을 지나고 지나 이제 진정한 영웅이 되는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의 방법은 더디고, 어눌하고, 초라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먼저 반성하고, 먼저 행동하는 그가 아니면 대체 누가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재크는 괴물이 아닌 스스로가 인정한 영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게 그에게 주어진 몫의 삶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