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사슴은 퉁가를 등에 태우고 사흘 밤 사흘 낮을 꼬박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저 앞에 보이는 바로 저 산이야."
종달새가 가리키는 곳에는 산꼭대기 부분이 온통 하얀색으로 덮인 거대한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퉁가는 그동안 저렇게 높은 산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높고 가파른지 그동안 퉁가를 등에 태우고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던 수사슴도 산을 오르는데 아주 힘겨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산꼭대기에 다가갈수록 바람이 점점 세 지고 기온도 점점 내려가 온몸이 덜덜 떨려왔습니다.
아주 힘든 상황이었지만 수사슴은 불평을 하거나 힘들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이 오히려 추위에 약한 퉁가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겨우겨우 산꼭대기 가까이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미끄러운 눈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슴의 발이 자꾸만 계속 미끄러져 버렸던 것입니다.
"안되겠어. 눈 때문에 미끄러워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어."
지친 수사슴의 등에서 내린 퉁가는 혼자서라도 올라가 보려 했지만 차갑고 미끄러운 눈 때문에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녀가 사는 동굴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퉁가는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잠시 모습이 보이지 않던 종달새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혼자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달새의 뒤에는 커다란 황새 여러 마리가 뒤따르고 있었고, 그 중 맨 앞에 날고있는 황새의 등에는 작은 원숭이 두 마리가 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퉁가가 도움을 주었던 바로 그 황새와 원숭이 모자였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퉁가 앞으로 어미 원숭이가 다가왔습니다. 아기 원숭이는 퉁가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종달새한테서 네가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어미 원숭이는 숲 속의 원숭이들이 힘을 합쳐서 만든 나무줄기 그물을 퉁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올라타렴."
그렇게 하라는 듯이 황새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퉁가와 수사슴은 원숭이들이 만든 그물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황새들이 그물의 한쪽씩을 입에 물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는 산꼭대기 동굴 앞에 퉁가와 수사슴을 부드럽게 내려주었습니다.
퉁가는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황새와 원숭이와 수사슴과 종달새는 동굴 입구에서 퉁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거기 아무도 안 계세요?"
퉁가의 목소리가 깊은 동굴을 따라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거기 아무도 안 계세요?"
그때 갑자기 밝은 빛이 반짝하며 손에 횃불을 든 마녀가 나타났습니다.
"나를 찾는 게 누구냐?"
갑자기 나타난 마녀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퉁가는 마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마녀를 바라보았습니다.
마녀는 징그럽게 생기거나 무섭게 생기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특별히 아름답게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마녀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할머니로만 보였습니다.
"네가 나를 찾은 게냐?"
할머니처럼 생긴 마녀가 퉁가에게 물었습니다.
"예, 제 이름은 퉁가라고 해요."
"그래, 너도 내게 소원을 말하려고 온 게냐?"
동굴 안에 있는 넓고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으며 마녀가 퉁가에게 물었습니다. 손에는 여전히 횃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예, 할머니. 아니, 마녀님!"
퉁가는 자신이 마녀를 할머니라고 부른 것 때문에 혹시라도 화가 났을까봐 걱정이 되어 마녀의 안색을 살폈지만, 마녀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비로소 안심이 된 퉁가는 마녀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의 이 흉측하고 무서운 모습이 싫어요. 숲 속 동물들은 제 모습에 겁을 먹고 저를 피하기만 하고 저와는 말도 하지 않으려 해요. 저는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등가죽과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한 커다란 입 대신에 수사슴처럼 멋지고 황새처럼 우아하고 종달새처럼 빛나고 아기 원숭이처럼 귀여운 모습을 가지고 싶어요. 그러면 저에게도 친구가 생기게 될 거예요."
마녀는 잠시 말없이 퉁가를 바라보았습니다.
"물론 네 소원은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네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겠지?"
6
처음에 눈이 녹지 않는 산과 마녀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앵무새로부터 이 얘기를 듣기는 했었지만, 퉁가는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만을 생각했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진 가장 소중한 것과 맞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있었습니다.
퉁가는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마녀님, 저는 별로 가진 것이 없으니 마녀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게는 힘센 구렁이도 당하지 못하는 단단한 등가죽과 바위도 부술 수 있는 힘센 꼬리와 입안에 원숭이를 통째로 넣고도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커다랗고 유연한 입이 있습니다."
퉁가는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말한 것들이 마녀의 마음에 들지 않아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마침내 퉁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말한 것들이 물론 모두 훌륭한 것들이기는 하나 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은 아닌 것 같구나. 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만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제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이 뭐죠?"
퉁가는 마녀에게 물었습니다.
"그건 바로 네 마음씨란다."
마녀의 말을 들은 퉁가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건 뒤에서 퉁가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마음씨요?"
"그래, 네 용감하면서도 착한 마음씨란다. 내가 보기엔 그것이 네가 가진 가장 훌륭하면서도 소중한 보물 같구나. 어때 네 마음씨와 소원을 맞바꾸겠느냐?"
그때였습니다.
"안 돼! 퉁가."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수사슴이 갑자기 소리를 친 것이었습니다.
"안 돼! 퉁가. 네가 아무리 멋있고 우아한 모습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네 착한 마음씨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어."
그러자 옆에 있던 황새도 말했습니다.
"그래, 수사슴의 말이 옳아! 네가 우리들을 위험에서 구해준 것도 다 네 착하고 용감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거잖아. 너의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모두 이렇게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그래 맞아. 네가 강에 빠진 우리 아기를 다른 악어들로부터 구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친구가 되지 못했을 거야. 그건 다 네 마음씨 덕분이지 네가 멋있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고."
수사슴과 황새와 원숭이의 말을 들은 퉁가는 어찌해야 할 지를 몰라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종달새도 퉁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모두의 말이 맞아. 네 착한 마음씨 덕에 우리 모두는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라고."
퉁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동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친구라고?"
"그래 물론이야. 그러니까 여기에 모두 함께 있는 거 아니겠어?"
수사슴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네 모습이 무섭거나 흉측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다면 너를 돕기 위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 우리는 너를 그냥 친구로 여기고 있을 뿐이야. 그건 모두 네가 착한 마음씨로 우리를 구해주었기 때문이야. 그러니 네 착한 마음씨를 버린다면 네가 아무리 멋진 모습이 된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수사슴은 진심어린 눈으로 퉁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결정하거라."
마녀가 망설이고 있는 퉁가를 재촉했습니다.
퉁가는 동굴 입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물 친구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오직 소원을 빌기 위해서 지나왔던 그동안의 고된 여행길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퉁가는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마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그냥 이대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소원은 빌지 않겠어요. 제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그냥 갖고 있겠어요."
퉁가의 말에 뒤에 있던 모든 동물 친구들은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그건 마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마녀는 소원을 빌지 않겠다는 퉁가에게 자신을 귀찮게 했다며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며 퉁가를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동굴 안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퉁가는 눈이 녹지 않는 산의 마녀를 찾기는 했지만 소원은 빌지도 않고 그냥 동물 친구들과 함께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사슴의 등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퉁가를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엄마 악어가 반갑게 퉁가를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온 퉁가와 친구들을 위해서 작은 잔치도 열어주었습니다.
소원을 빌지 않았기 때문에 퉁가는 다른 동물들이 보기에 여전히 거칠고 무서운 모습이었지만 여행 중에 사귀게된 친구들과 그리고 새로이 사귄 다른 많은 숲 속 친구들과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