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퉁가는 태양이 뜨거운 한 낮에는 그늘을 찾아 잠시 쉬기도 하고 캄캄한 밤에는 무서운 맹수들을 피해 수풀 속에서 잠을 잤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퉁가는 하늘에서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날고 있는 커다란 황새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황새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며 때때로 땅 아래로 곤두박질치듯 내려갔다가 다시 허둥지둥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며 몹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황새의 행동을 이상히 여긴 퉁가는 황새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황새가 날고 있는 곳 바로 아래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황새의 알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고 커다란 노란색 구렁이 한 마리가 그 알들을 삼키려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렁이의 목 아랫부분이 불룩한 것으로 봐서 이미 알 한 개는 구렁이의 뱃속에 있는 듯 했습니다.
구렁이는 두 번째 알을 막 삼키려고 하는 중이었습니다.
"안돼!"
퉁가가 구렁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구렁이는 삼키려던 알에서 입을 떼고 난데없이 뛰어들어 자신의 식사를 방해하고 있는 불청객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악어인 네가 어째서 나를 방해하고 나서는 거냐? 내 식사를 가로챌 생가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아!"
구렁이는 퉁가를 쫓아내기 위해 위협적인 몸짓으로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징그러운 혀를 날름거렸습니다.
이 노란색의 커다란 구렁이는 몸통도 아주 두꺼운데다가 그 길이도 퉁가의 몇 배는 더 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퉁가는 그러한 모습에 기죽지 않고 용감하게 구렁이에게 맞서 있는 힘껏 입을 벌리며 으르렁거려 보았습니다.
구렁이가 겁을 먹고 먼저 도망가 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하지만 구렁이는 도망치기는커녕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퉁가를 괘씸하게 여기고 퉁가를 향해 다가와 몸을 칭칭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구렁이가 몸을 감고 힘으로 조여오자 퉁가는 가슴이 점점 답답해지면서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퉁가의 갑옷처럼 단단한 등가죽이 더 이상 조여지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퉁가는 기회를 노려 구렁이의 꼬리를 있는 힘을 다해 깨물어버렸습니다.
꼬리를 물린 구렁이는 이제 퉁가에게서 달아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퉁가는 구렁이의 꼬리를 꽉 물고서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제발 살려줘! 나를 놓아달란 말이야!"
구렁이는 퉁가에게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퉁가는 구렁이의 꼬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빨로 더욱 꽉 깨물어 버렸습니다. 구렁이는 퉁가에게 물린 꼬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꼬리를 물어 아프게 한 것은 미안하지만 네 뱃속에 있는 황새 알을 뱉어놓지 않으면 나도 너를 놓아줄 수가 없어."
퉁가의 말을 들은 구렁이는 하는 수 없이 뱃속에 들어있던 황새의 알을 토해놓았습니다.
황새 알이 무사히 나온 것을 확인하자 퉁가는 그제야 구렁이의 꼬리를 놓아주었습니다.
아픈 꼬리를 끌고서 구렁이가 수풀 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이 모든 광경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던 황새가 퉁가의 옆에 내려앉았습니다.
퉁가가 황새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난 생 처음이었습니다.
늘씬하고 기다란 다리와 멋진 부리, 눈부시게 하얀 깃털 때문에 황새의 모습은 너무나 황홀해 보였습니다.
자신의 알들을 한 곳으로 조심스럽게 모으고 있는 황새를 바라보며 퉁가는 눈이 녹지 않는 산의 마녀가 소원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자신도 저렇게 멋진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말로 고마워. 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내 알들을 구해주었구나."
황새는 퉁가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면 네 이름이라도 알려주겠니?"
"내 이름은 퉁가야.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눈이 녹지 않는 산의 마녀를 찾아가고 있었어."
"그래, 정말로 고마워, 퉁가. 너라면 꼭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거야."
황새와 헤어지고 나서 퉁가는 다시 서쪽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황새의 알을 구렁이로부터 구해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멋진 황새를 가까이서 보고 얘기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4
또다시 며칠이 지나고 집을 떠나온 지는 벌써 보름이 다되어 가고 있었지만 퉁가의 눈에 마녀가 산다는 눈이 녹지 않는 산은 아직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랜 여행으로 퉁가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퉁가가 너무 뜨거운 태양을 피해서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퉁가가 쉬고 있는 나뭇가지에 작은 종달새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나무 위에서 작은 고개를 까닥이며 퉁가를 유심히 살펴보던 종달새가 퉁가의 머리 바로 위에 있는 나뭇가지로 가까이 내려왔습니다.
"강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을 혼자 헤매고 있는걸 보니 네가 퉁가라는 악어로구나?"
종달새가 퉁가에게 말했습니다.
퉁가는 이 작고 고운 목소리를 가진 종달새가 자신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그래, 내 이름은 퉁가야.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있니?"
퉁가가 종달새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아기 원숭이와 황새의 알을 위험에서 구해주었다는 소문이 숲 전체에 파다한걸. 그래서 모두들 너에 대해서 알고 있어!"
퉁가는 자신에 대한 얘기가 숲 전체에 퍼져있다는 종달새의 말에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종달새는 땅으로 내려와 퉁가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퉁가는 더 이상 종달새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곤경에 처한 사슴을 위해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었어."
종달새가 퉁가에게 말했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슴이라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야. 나를 따라와."
퉁가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퉁가는 어찌해야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종달새를 따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풀밭에 앉아 있는 커다란 수사슴이 한 마리 보였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훌륭하고 멋진 뿔을 가지고 있는 늠름해 보이는 수사슴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사슴이 앉아있는 자세가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수사슴의 한 쪽 다리가 바위틈에 끼어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위틈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다가 생긴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말라붙어 있었고 주위는 벌겋게 부어 올라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사자나 늑대 같은 맹수들이 사냥을 시작하게 되면 이 수사슴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 종달새와 함께 나타난 악어를 보고 몹시 놀라던 이 수사슴은 종달새로부터 이 악어가 바로 퉁가라는 얘기를 듣자 안심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멋지게 생긴 수사슴이 어쩌다가 이런 공경에 처했는지는 몰라도 해가 지기 전에 바위틈에서 다리를 빼내어야만 했습니다.
퉁가는 머리와 몸으로 바위를 밀어보려 했지만 사슴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슴을 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기 위해 바위를 이리저리 살피던 퉁가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방법은 하나야! 내가 꼬리로 바위를 깨보겠어."
"하지만 쉽지 않을텐데."
수사슴이 퉁가를 보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꼬리가 아무리 힘이 세다해도 어떻게 바위를 부술 수 있겠어. 자칫하다간 너까지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몰라"
수사슴은 자기보다도 훨씬 몸집이 작은 퉁가를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는걸."
말을 마치자마자 퉁가는 바위를 향해 꼬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습니다. 꼬리에 조금 통증이 느껴졌지만 참을만했습니다.
처음엔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바위는 퉁가가 계속해서 꼬리로 내리치자 조금씩 금이 가면서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위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것을 본 퉁가는 더욱 더 힘을 내어 꼬리를 내리쳤습니다. 이젠 꼬리에 제법 큰 통증이 느껴졌지만 수사슴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 이것 밖에는 없었으므로 꾹 참아내었습니다.
깨어진 바위 때문에 퉁가의 꼬리에도 상처가 생기고 피가 흘렀지만 퉁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퉁가의 노력 덕분에 마침내 반 이상이나 부서져 버린 바위틈에서 수사슴은 안전하게 다리를 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리가 자유로워진 수사슴은 몇 시간이나 꼼짝도 못하고 있었던 탓에 처음에는 다리를 좀 절뚝거렸지만 곧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이리저리 뛰어보던 수사슴은 퉁가에게 다가와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큰일을 당했을지도 몰라."
"아니야, 당연히 도와야지."
퉁가가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 길이었니?"
"나는 눈이 녹지 않는 산의 마녀를 찾아가고 있었어. 마녀에게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내 모습을 좀 바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야."
퉁가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종달새가 나섰습니다.
"눈이 녹지 않는 산이라고?"
퉁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눈이 녹지 않는 산이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있어. 전에 한 번 지나가다 우연히 본 적이 있거든."
종달새의 말을 들은 퉁가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정말이야? 그렇다면 내게 좀 가르쳐 주지 않을래?"
"하지만 여기서는 좀 먼 곳이야. 네 걸음걸이로는 아마 한 달도 넘게 걸릴걸."
퉁가는 앞으로도 한 달이나 더 고생스런 여행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자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도와줄게."
어깨가 축 늘어진 퉁가를 보며 수사슴이 말했습니다.
"내가 도와줄게. 내 등에 올라타고 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어. 나는 발이 아주 빠르거든."
그래서 퉁가는 멋진 뿔을 가진 수사슴의 등에 올라타고 종달새의 안내를 받으며 눈이 녹지 않는 산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