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 속 한 가운데에 커다란 강이 하나 있었습니다. 퉁가는 그곳에서 엄마 악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악어 퉁가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숲 속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습니다.
퉁가는 강가에 물을 마시러 오는 아기 사슴이나 아기 종달새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퉁가가 다가가면 그들은 언제나 화들짝 놀라며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기 사슴이나 고운 목소리를 가진 종달새에게 악어인 퉁가는 단지 무시무시한 존재로만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퉁가는 자신의 두껍고 꺼칠한 가죽과 날카로운 이빨들을 감추기 위해서 물 속에 몸을 깊이 담그고 눈만 겨우 물 밖으로 내민 채 숲 속 다른 동물들이 물을 마시며 노는 것을 구경만 하였습니다.
예전에 한 번은 빨간 엉덩이를 가진 아기 원숭이가 노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 아기 원숭이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엄마 원숭이가 재빠르게 달려와 아기 원숭이를 앉고 높은 나무위로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퉁가를 가리키며 아기 원숭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야! 저기 악어보이지 울퉁불퉁한 가죽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단다. 게다가 입도 아주 커서 작은 동물들을 통째로 삼켜버린단다. 그러니 저렇게 생긴 악어 곁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라. 아주 음흉한 동물이니 조심해야해!"
엄마 원숭이의 말을 들은 퉁가는 너무도 부끄럽고 상심한 나머지 다시 물 속 깊이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퉁가의 겉모습이 거칠고 무섭게 생기기는 했지만 누구보다도 고운 마음씨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숲 속 동물들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날마다 물고기만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숲 속의 동물들은 퉁가가 무서운 악어라는 이유만으로 퉁가를 멀리하며 경계했습니다.
엄마 악어는 이러한 퉁가가 너무도 걱정스러웠습니다.
날마다 상심한 얼굴로 강속에 몸을 숨기고 물을 마시러 오는 숲 속 동물들을 몰래몰래 훔쳐보는 퉁가가 너무도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엄마 악어가 퉁가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악어로 태어난 이상 다른 동물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퉁가는 슬픈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엄마, 저는 예쁜 눈망울을 가진 아기 동물들과 고운 목소리를 가진 예쁜 새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걸요."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우리 악어의 모습만 봐도 아주 무서워서 벌벌 떠는걸. 그러니 어떻게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겠니?"
"엄마! 정말로 방법이 없을까요? 전 친구를 갖고 싶어요!"
그때 높은 나무 위에서 잠시 쉬고 있던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우연히도 퉁가와 엄마 악어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흠흠!"
난데없이 들려온 앵무새의 헛기침 소리에 퉁가는 깜짝 놀랐습니다.
퉁가는 자신의 머리위로 드리워진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붉은 색과 녹색의 화려한 깃털을 가진 앵무새를 바라보았습니다.
"흠흠! 미안하구나. 내가 본의 아니게 너희들의 말을 엿듣고 말았구나."
앵무새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퉁가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어 보였습니다.
"너는 생긴 것과는 달리 아주 맑고 순해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구나."
앵무새의 말에 퉁가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저를 도울 수 있다고요?"
앵무새는 반짝반짝 빛나는 퉁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들은 얘긴데, 해가 지는 서쪽을 따라서 계속 가다보면 일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산이 있다는 구나. 그 산꼭대기 동굴에 사는 마녀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소원을 한가지씩 들어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조건이 있지.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한 가지 내놓아야 한다는 구나."
"가장 소중한 것이요?"
"그래. 그러니 신중히 생각해 보고 결정하도록 하거라."
말을 마친 앵무새는 하늘로 날아올라 퉁가가 있는 강 위를 한바퀴 빙 돌고서 다시 어딘가를 향해 멀리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앵무새를 만나고 난 이후에 퉁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눈이 녹지 않는다는 산의 마녀를 찾을 수만 있다면 지금의 무섭고 흉한 모습에서 벗어나, 숲 속 동물들이 좋아할 만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강에서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퉁가는 쉽게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게다가 더운 열대지방에서 태어난 퉁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눈이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차가운 눈이 일년 내내 녹지 않는 산이 있다는 말이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녀를 찾아가 모습을 바꾸어 달라는 소원을 빌 수만 있다면, 그래서 숲 속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만 된다면.....
결국 퉁가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눈이 녹지 않는 산에 산다는 마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정든 강을 떠나서 퉁가는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퉁가의 엄마는 걱정스런 눈으로 퉁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항상 물 속에서만 지내던 퉁가가 흙과 나무뿐인 숲 속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고생쯤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목이 마른 것과 다리가 아픈 것도 꾹 참아가며 퉁가는 서쪽을 향해서 열심히 걸어갔습니다.
숲 속에 사는 동물들과 새들은 모두 퉁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악어는 당연히 늪이나 강처럼 물이 많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알고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메마른 땅을 밟으며 홀로 숲을 지나고 있는 퉁가가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되었겠지요.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요? 퉁가는 점점 배가 고파왔습니다. 하지만 숲 속에서 퉁가가 먹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퉁가는 배가 고픈 것을 꾹 참으며 계속해서 서쪽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때 퉁가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꺼이! 꺼이!"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서 가보니 뜻밖에도 작은 강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강 한가운데에 아기 원숭이 한 마리가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반대쪽 강가에 있는 나무 위에서는 그 아기 원숭이의 어미로 보이는 또 다른 원숭이가 강에 빠진 아기 원숭이를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퉁가가 들은 그 이상한 소리는 바로 그 어미 원숭이가 지르는 소리였습니다.
나무 위에서 펄쩍펄쩍 뛰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미 원숭이는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아기 원숭이가 수영을 전혀 못하는 대다가 아기 원숭이를 보고 몰려드는 다른 악어 떼들 때문이었습니다.
퉁가는 첨벙하고 급히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아기 원숭이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악어들보다도 먼저 아기 원숭이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다른 악어 떼들을 제치는데 성공한 퉁가는 아기 원숭이를 한 입에 꿀꺽하고 삼켜버렸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악어에게 자신들이 노리던 먹이를 통째로 빼앗겨버린 다른 악어 떼들은 몹시 화가 났지만 퉁가가 이미 삼켜버린 먹이를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악어들이 씩씩대며 돌아가자 퉁가는 불룩해진 입으로 어미 원숭이가 있는 강가 쪽으로 헤엄쳐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강가에 도착한 퉁가가 커다랗게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 아기 원숭이가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퉁가는 아기 원숭이를 삼켜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악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입 속에 잠시 넣어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악어에게 잡아먹힌 줄로 알았던 아기 원숭이가 무사히 살아있는 것을 본 어미 원숭이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아기 원숭이를 끌어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맙다! 너는 무서운 다른 악어들과는 다르구나. 우리 아기를 구해줘서 정말로 고마워!"
어미 원숭이는 진심으로 퉁가에게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착한 악어야, 괜찮다면 네 이름이라도 알려주겠니?"
어미 원숭이가 퉁가에게 물었습니다.
"내 이름은 퉁가야.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눈이 녹지 않는 산의 마녀를 찾아가는 길이야."
"그래, 그럼 다음에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어미 원숭이와 아기 원숭이가 나무를 타고 숲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퉁가는 다시 강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랜만에 물 속에 마음껏 헤엄치며 물고기로 배를 잔뜩 채우고서 퉁가는 다시 서쪽을 향해 길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