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시골마을에 위치한 작은 언덕 위에 아담한 집 한 채가 서 있었습니다. 지붕에는 파란색 기와가 얹어져 있었고 벽은 붉은 색 벽돌로 되어 있었으며 집 주위는 희색 페인트로 칠한 나무 울타리로 둘러져 있었습니다.
그 집의 주인은 나이가 제법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근처에 있는 작은 논과 밭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 오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조그만 밭에서 자라고있는 잡초를 뽑아내기로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집을 나서자 집안에 있던 수다스러운 고양이 방울이가 밖으로 뛰어나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큰일이야! 큰일났어!"
고양이 방울이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집안에 있던 모든 동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방울이에게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큰일이야, 정말 큰일이야!"
무슨 일인지 방울이는 정말로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어서 침착하게 말을 하라구."
성미가 급한 두 살배기 강아지 복슬이가 방울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정말로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부화될 사랑스러운 알을 품고있는 암탉 곁에 있던 수탉 대장이도 한 마디 했습니다.
외양간에 있던 누렁이 소와 아기 거위들 걸음마 연습을 시키고있던 엄마 거위 꽥꽥이도 모두 방울이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큰일이라고, 내일 글쎄 그 말썽꾸러기 녀석이 여기로 온다는 거야! 할아버지 손자 지훈이. 모두 기억하지?"
지훈이라는 이름을 듣자 모두들 깜짝 놀라며 눈이 동그래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외양간에 있던 늙은 소 누렁이는 입에 물고있던 여물까지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정말이야? 그게 정말이냐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복슬이가 방울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틀림없다니까. 방금 전에 할아버지가 전화로 얘기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어."
"세상에......어떡하면 좋지?"
고양이 방울이의 말에 엄마 거위 꽥꽥이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수탉 대장이의 알을 품고 있던 암탉 토실이는 자신이 낳은 알들을 꼭 껴안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대장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대장이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토실이를 위로하듯 자신의 날개로 토실이의 어깨를 감싸주었습니다.
동물 식구들 중에서 가장 혈기가 왕성한 복슬이는 지훈이라는 말에 꼬리를 바짝 세우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녀석이 왜 또 여기에 온다는 거야?"
복슬이가 방울이에게 물었습니다.
"글세,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여름방학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인간 아이들한테는 그런 게 있데.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다고 들었어."
"또 한바탕 시끄러운 난리가 나겠군......"
나이가 많은 탓에 움직임이 둔한 늙은 소 누렁이는 고개를 흔들며 먼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 어쩌면 좋아. 지훈이가 온다니......"
엄마 거위 꽥꽥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기 거위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치게 될 지도 몰라."
엄마 거위 꽥꽥이의 말에 대장이도 한마디했습니다.
"맞아! 그 못된 장난꾸러기 녀석이 지난 여름에 왔었을 때는 내 목을 줄을 걸고서 끌고 다니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는데......"
지훈이의 못된 장난에 혼이 났었던 수탉 대장이는 지난 여름의 악몽을 되새기기라도 하듯 목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 못된 장난꾸러기 녀석이 분명히 이번에도 얌전히 있지만은 않을텐데...... 분명히 우리 아이들한테도 장난을 칠 것이 뻔하단 말이야."
그러자 꽥꽥이가 말했습니다.
"맞아, 나한테는 하늘을 날게 해준다면서 높은 곳에서 마구 내던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다리가 부러질 뻔했었어."
그러자 복슬이도 말했습니다.
"나한테는 꼬리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구."
외양간의 누렁이도 느릿느릿 한 마디 했습니다.
"지훈이가 내 여물에 고춧가루를 섞어놓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나는 하루종일 굶어야만 했어."
모두들 작년 여름에 지훈이란 아이에게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동물 식구들이 저마다 지훈이에게 당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하자 그동안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했던 언덕 위의 집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작년 여름 방학에 지훈이가 여기에서 머무는 동안 지훈이의 심한 장난에 당하지 않은 동물은 거의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지훈이가 여름 방학을 맞아 내일 또다시 이곳에 온다고 하니 동물 식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작년 여름처럼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용감한 수탉 대장이가 울타리에 올라서며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암탉 토실이가 품고있는 자신의 소중한 알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알들에겐 손가락 하나도 대지 못하게 하고야 말겠어!"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대장이의 두 눈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맞아!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아기 거위들만은 지켜주고 말 거야. 내가 당했던 일을 우리 아기들도 겪게 할 수는 없어."
아기 거위들을 너무나도 걱정한 나머지 엄마거위 꽥꽥이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있었습니다.
"그래 꽥꽥이의 말이 맞아 우리는 몰라도 아이들은 지훈이의 심한 장난을 견뎌내지 못할 거야."
그동안 잠자코 있던 방울이도 한 마디 했습니다. 방울이는 울타리 안 동물 식구 중에서 유일하게 집안까지 드나들 수 있었고, 눈치도 빠르고 몸도 재빠른 덕분에 지훈이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동물이기도합니다.
"그래 우리 모두 이번에는 그냥 당하고 있지만 말고 뭔가 대책을 세워 보자구."
복슬이가 마당을 팔딱팔딱 뛰어다니며 말했습니다. 뛰어다니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복슬이는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매일을 보내는 것에 싫증이 나려던 참에 마침 새로운 사건이 생기게 된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대책을 세워보자는 복슬이의 말에 모두들 찬성을 하기는 했지만 누구도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만 살필 뿐입니다.
울타리에 올라서 있던 대장이가 땅으로 내려와 자신의 알을 품고있는 토실이 곁으로 다가오며 비장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특별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만일 지훈이가 우리 알들에게 손을 대려고 한다면 나는 그 녀석의 손등을 찍어서라도 우리 알들을 지키고 말 거야!"
그러한 대장이를 보며 꽥꽥이도 힘을 얻은 듯 말했습니다.
"그래 맞아. 나도 우리 아기 거위들을 위해서라면 지훈이의 발이라도 쪼겠어!"
꽥꽥이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눈빛만은 대장이 만큼 단호해 보였습니다.
"그래 우리 모두 어린 아이들만이라도 지켜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보자구."
대장이와 꽥꽥이를 보며 복슬이가 말했습니다.
방울이와 누렁이도 복슬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두의 의견은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서로 똘똘 뭉쳐서 어린 아이들만은 반드시 지훈이의 장난으로부터 지켜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우리 모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모두들 한 목소리로 다짐을 했습니다.
드디어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수탉 대장이의 울음소리로 시작한 하루는 다른 날보다도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일찌감치 일어나 동물들의 아침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꽃무늬가 수놓아진 예쁜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얼굴에 옅은 화장까지 하고서 할아버지와 함께 일찍 읍내로 나가셨습니다.
기차를 타고 올 손자 지훈이를 마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울타리 안 동물들은 모두들 초조한 마음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제 곧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훈이의 손을 잡고 나타날 테니까요.
드디어 해가 머리 꼭대기에 다다르자 멀리서 차 한 대가 서서히 언덕을 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울타리 문 앞까지 온 택시에서는 역시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훈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따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들어가자. 배고프지? 할머니가 금방 점심 차려줄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지훈이를 보자 동물 식구들은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분명 작년 여름에 왔었던 지훈이의 얼굴은 틀림이 없는데 그때보다 키는 한 뼘 이상이나 더 커져 있었고 덩치도 훨씬 커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동물 식구들은 모두 마당을 가로질러 집안으로 들어가는 지훈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키가 저렇게 커져 버렸으니 분명 힘도 훨씬 더 세졌을 테니까요.
어제의 기세 등등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두들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보란 듯이 꼬리까지 세우고 있던 복슬이 마저도 슬그머니 꼬리를 다리사이로 감추어 버렸습니다.
"지훈이를 상대하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겠어."
외양간의 누렁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포기할 순 없어."
지훈이가 들어간 현관문을 아직까지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있던 대장이가 말했지만 어제처럼 힘이 넘치지는 못했습니다.
모두들 일년 새에 훌쩍 커버린 지훈이의 모습에 몹시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갔던 지훈이는 한참 동안이나 동물 식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그동안의 지냈던 얘기들을 하느라고 바빴기 때문입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동물들의 저녁밥을 주기 위해 나오시는 할머니를 따라 잠깐 모습을 나타내기는 했었지만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아침식사를 마친 지훈이가 또다시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훈이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된 동물들은 어제보다도 더 풀이 죽어버렸습니다.
일년 동안 갑자기 커져버린 지훈이의 키와 훨씬 커다래진 손과 발하며...... 도무지 지훈이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승산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서 아기 동물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지훈이는 마당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왔다갔다하더니 닭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닭장 안에 있는 토실이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어? 닭이 알을 낳았네."
그러더니 손을 쑥 내밀어 토실이가 품고있던 알을 집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울타리 위에서 긴장한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장이가 화들짝 놀라 지훈이 옆으로 뛰어 내려왔습니다.
'꼬끼오'
대장이는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파닥였습니다.
"안돼! 우리 알들에겐 제발 손대지마!"
"아니, 이 닭이 왜이래? 저리가!"
지훈이는 그러한 대장이를 손으로 밀어버리고는 대장이와 토실이의 알을 손으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멍멍멍멍'
옆에 있던 복슬이도 힘껏 짖으며 지훈이를 향해 으르렁대기 시작했습니다.
"안돼! 잘못하다간 알이 깨져 버린단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훈이가 알을 손으로 잡으려고 하자 대장이는 급한 마음에 지훈이의 다리를 쪼아댔습니다. 대장이의 공격에 놀란 지훈이가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니 밖이 왜이리 소란스러운 게냐?"
그때 집안에 계시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할머니! 이 개하고 닭이 나를 물려고 했어요."
지훈이는 억울하다는 말투로 할머니에게 외쳤습니다.
"그럴 리가 있니? 얼마나 순한 녀석들인데.
"정말이에요. 나는 여기 있는 계란을 가져가려고 했을 뿐인데 이 개하고 닭이 나한테 달려들었단 말이에요."
지훈이의 말을 듣고 할머니는 이 작은 소란의 원인을 금방 알아채셨습니다.
"오라, 그것 때문이로구나. 지훈아! 그 계란은 먹을게 아니란다. 병아리로 부화시키려고 암탉이 품고 있는 거야."
"네? 병아리요?"
"그래, 병아리. 거기 있는 수탉 대장이가 그 아빠란다. 아마 그래서 대장이가 잠깐 흥분했었나 보구나."
할머니는 토실이가 품고있는 알이 모두 무사한지 확인하고는 지훈이에게 다시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알들은 건들지 않는 게 좋겠다. 조금만 더 있으면 병아리로 부화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할머니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병아리로 부화할거란 얘기에 지훈이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토실이가 품고 있는 알들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 만지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신을 공격했던 대장이를 쏘아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대장이는 작년 여름에 목에 줄이 걸린 채 지훈이에게 질질 끌려 다녔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라 움찔하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훈이는 대장이는 그대로 둔 채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복슬아! 아까는 도와줘서 고마웠어."
대장이가 복슬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울타리로 올라서기 전에 자신의 알이 모두 무사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하였습니다.
"할머니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지 뭐야.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하는 게 좋겠어."
울타리에 올라선 대장이를 보며 복슬이가 말했습니다.
그때 집안으로 들어갔던 지훈이가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손에는 이상하게 생긴 동그란 물건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게 뭘까?"
꽥꽥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훈이는 그 동그란 물건을 손에 쥐고는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무색의 투명한 비닐 같은 것이 쭈욱 늘어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조심해! 저건 접착 테이프야."
방울이의 목소리였습니다. 방울이는 집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조심해! 저건 아주 끈적끈적해서 무엇이건 다 붙여 버린다구. 잘 떨어지지도 않아!"
지훈이는 그 접착 테이프라는 것을 길게 잘라내더니 그것을 들고 대장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감히 나한테 덤볐겠다.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입을 붙여버리고 말겠어!"
지훈이는 그 접착 테이프라는 것으로 대장이의 부리를 돌돌 감아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대장이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대장이는 지훈이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키가 커진 만큼 걸음걸이까지 빨라진 지훈이도 끈질기게 대장이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쫓겨다니던 대장이는 결국에 지훈이 손에 잡히고야 말았습니다.
지훈이가 대장이의 부리에 그 접착 테이프라는 것을 붙이려는 순간, 이를 보다 못한 방울이가 대장이를 도와주기 위해 지훈이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지나갔습니다.
방울이 때문에 놀란 지훈이가 흠칫하는 사이에 대장이는 겨우겨우 지훈이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훈이가 들고있는 그 접착 테이프라는 것에는 대장이의 몸에서 뽑혀버린 깃털이 세 개나 붙어있었습니다.
대장이의 부리를 붙여버리는데는 실패했지만 지훈이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깃털을 보며 몹시 재밌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기 거위들한테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그 접착 테이프라는 것으로 아기 거위들의 깃털도 뽑아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도망쳐! 어서 도망가라구!"
복슬이가 엄마거위 꽥꽥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꽥꽥이는 아기 거위들을 이끌고 울타리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는 거위들이 근처 개울에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작은 출입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기 거위들의 발걸음으로는 도저히 지훈이를 따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기 거위들 중의 한 마리를 집어 올린 지훈이는 아기 거위 몸에 그 접착 테이프라는 것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꼬끼오'
'멍멍멍'
그때 대장이와 복슬이가 거의 동시에 지훈이를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아기 거위를 구하기 위해 지훈이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지훈이는 놀라서 아기 거위를 재빨리 내려놓고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꽥꽥이는 아기 거위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혹시라도 지훈이가 다시 나올 것을 우려해 아기 거위 다섯 마리를 모두 데리고 개울로 나가버렸습니다.
동물 식구들은 지훈이가 또 다른 물건을 들고 나와서 괴롭히지는 않을까 잠시 걱정했었지만 밭에 나가셨던 할아버지가 일찍 들어오시면서 다행히도 그 날은 더 이상의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겨우 한숨을 돌린 동물 식구들은 모두 어서 여름방학이라는 것이 끝나서 다시 평화로운 시절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리고 아기 거위를 지훈이의 손에서 구한 대장이와 복슬이의 용기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은 지훈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멀리 외출을 했다가 거의 하루종일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 식구들은 모처럼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방울이의 말에 따르면 근처에 있는 고모네 집을 방문한다고 했습니다.
해가 지고 캄캄해져서야 돌아온 지훈이는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또다시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지훈이가 이곳에 온지 벌써 사일 째가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밭을 돌보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우셨습니다. 그러자 지훈이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다시 마당에 나타났습니다.
지훈이가 들고 있는 것은 작은 유리병으로 그 안에는 검은색 액체가 들어있었습니다.
지훈이는 그 검은색 액체를 대장이가 마시는 물이 있는 그릇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자 그릇에 담겨 있던 물이 순식간에 검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저건 뭐지?"
지훈이와 자신의 검게 변한 물그릇을 번갈아 쳐다보며 대장이가 방울이에게 물었습니다.
"저건 간장이라는 거야!"
인간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잘 알고있는 방울이가 말했습니다.
"인간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거야."
"그걸 왜 내 물그릇에 붓는 걸까?"
대장이가 또다시 방울이에게 물어보았지만 방울이도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습니다. 방울이도 그 간장이라는 것을 먹어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침 목이 말랐던 대장이가 그 검게 변한 물을 맛보는 순간 당장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짜기도 하고 쓰기도 하여 대장이로서는 도저히 입도 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대장이는 물을 마시지 못하고 목이 마른 것을 꾹 참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건 대장이와 같은 물그릇을 사용하는 토실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지훈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병에 남아있는 간장을 누렁이의 여물통에 모두 부어버렸습니다.
여물을 먹고있었던 누렁이는 지훈이가 부어버린 간장 때문에 여물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자 고개를 내저으며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누렁이는 움직이는 속도만큼이나 먹는 속도도 엄청 느렸기 때문에 할머니가 아침에 주신 여물을 아직 반도 다 먹지 못했거든요.
"너희가 지난번에 나한테 덤빈 벌이야!"
지훈이의 못된 장난은 거기에서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지훈이는 복슬이의 목에 줄을 달아서 기둥에 묶어버렸습니다. 때문에 복슬이는 자유롭게 다니지도 못하고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 수밖에 없게되어 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울이는 잽싸게 그 자리를 피해서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잘못하다간 자신도 지훈이에게 붙들려 어떤 일을 당하게될지 몰랐으니까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전까지 집안에 숨어 있는 다면 방울이는 지훈이의 심한 장난을 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당에 있는 동물들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더욱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 거위들은 지훈이의 장난감 신세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지훈이는 아기 거위들을 손바닥에 올려보기도 하고, 아직 솜털로 뒤덮여있는 날개를 들추어 보기도하고, 또 손바닥에서 바닥으로 던져가며 아기 거위가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꽥꽥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높은 곳에서 던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친 아기 거위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때마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밖에서 돌아오시지 않았다면 점점 심해지는 지훈이의 장난에 아마도 아기 거위들이 다치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지훈아!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몹시 놀라셨습니다.
할머니는 대장이의 물그릇을 다시 깨끗한 물로 채워주시고 누렁이의 여물통도 깨끗이 치운 다음 다시 새 여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둥에 묶여 낑낑대고 있던 복슬이도 풀어주셨구요.
"얘야! 동물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 모두 같은 식구들인데......"
이번엔 할머니는 조금 엄한 말투로 지훈이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래, 지훈아. 네가 장난이 좀 심했던 것 같구나.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할아버지도 지훈이를 꾸짖으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동물 식구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계셨기 때문에 지훈이의 심한 장난으로 누구라도 다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저녁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는 다음날까지 이어졌습니다.
온종일 세차게 내리는 비에 지훈이도 동물 식구들도 집안에서 꼼짝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내리던 비는 밤이 되어서도 그칠 기색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동물 식구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녘이 다가오자 세차게 내리던 비도 차츰차츰 잦아들더니 해가 떠오르기 직전에 다행히 모두 그쳤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침 일찍 걸려온 이장님의 전화를 받고 읍내로 나가셨습니다. 거의 이틀동안 내린 많은 양의 비에 마을에 있는 일부분의 논과 밭이 잠기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할머니는 나가시기 전에 지훈이에게 오늘은 집안에서 얌전히 지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올 때를 기다릴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혼자 남게된 지훈이는 몹시 따분해졌습니다. 어제도 비 때문에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어야만 했는데 오늘도 아침부터 혼자서 집을 보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지훈이는 마당에 나와 현관 계단에 걸터앉아 마당에서 노닐고있는 동물들을 구경하였습니다.
지훈이와는 달리 마당의 동물 식구들은 모두들 신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꽥꽥이와 아기 거위들은 마당 곳곳에 고인 물을 마시기도 하고 화단의 꽃들을 입으로 쪼아보기도 하였습니다.
대장이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비 때문에 땅위로 올라온 지렁이를 잡기 위해 부지런히 마당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복슬이와 방울이까지도 마당에서 젖은 흙을 밟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심심했던 지훈이는 또다시 동물들에게 장난이라도 치고싶었지만 동물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당부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현관 계단에 앉아있던 지훈이가 갑자기 일어섰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그러더니 집안에서 작은 종이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다 아기 거위들을 한 마리씩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아기 거위 다섯 마리를 모두 상자에 넣고는 울타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꽥꽥이는 너무도 불안했어요. 지훈이가 이번에는 무슨 장난을 생각해 낸 것일까 너무도 걱정이 되었던 거예요.
꽥꽥이는 언덕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하고있는 지훈이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대장이와 복슬이도 꽥꽥이의 뒤를 따라갔어요.
대장이와 복슬이도 꽥꽥이의 아기 거위들이 무슨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봐! 대장이. 지훈이가 꽥꽥이의 아기 거위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복슬이가 대장이에게 물었습니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어."
대장이와 복슬이는 지훈이와 꽥꽥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훈이가 도착한 곳은 바로 꽥꽥이가 아기 거위들의 수영 연습을 시키던 큰 개울이었습니다.
개울 옆에서 걸음을 멈춘 지훈이는 뒤를 돌아보았어요. 그리고는 꽥꽥이와 대장이, 그리고 복슬이까지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야! 너희들 왜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거야!"
지훈이는 자신의 발 아래에서 아기 거위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꽥꽥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걱정마, 꽥꽥아. 나는 아기 거위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뿐이니까."
지훈이의 말을 들은 꽥꽥이는 갑자기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안돼! 지훈아. 지금은 비 때문에 물살이 너무 세단 말이야. 물도 평소보다 너무 깊어졌고...... 우리 아기들은 이렇게 세찬 물살에서는 헤엄칠 수 없어!"
하지만 사람인 지훈이는 꽥꽥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훈이에게는 단지 엄마오리의 꽥꽥대는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이건 아기 거위를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지 수영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도시에서 자란 지훈이는 비가 많이 오고 난 후엔 아무리 개울물이라도 물살이 아주 세진 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더욱이 이틀 전부터 내린 비 때문이 개울물이 불어 물도 아주 깊어졌을 것이란 것도 몰랐습니다.
이러한 개울물은 위험하기 때문에 수영에 능숙한 꽥꽥이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도 자칫하다간 물살에 떠내려가기 십상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꽥꽥이는 아기 거위들을 물에 집어넣으려는 지훈이를 어떻게 해서라도 말려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지훈이는 자신의 발을 부리로 쪼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꽥꽥이의 모습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는 꽥꽥이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며 아기 거위 한 마리를 손으로 집어 올렸습니다.
"안돼! 제발 지훈아. 지금은 물살이 너무 세단 말이야!"
하지만 꽥꽥이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지훈이는 결국 아기 거위를 개울물에 집어넣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리, 또 한 마리를 개울물에 집어넣었습니다.
지훈이가 네 번째 아기 오리를 잡으려고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대장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지훈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앗! 따가워"
대장이가 지훈이의 손등을 부리로 쪼아버리자 깜짝 놀란 지훈이가 아기 거위에게서 손을 떼었습니다. 그러자 복슬이가 으르렁대며 나머지 아기 거위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막아섰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지훈이가 대장이와 복슬이를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엄마 거위 꽥꽥이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를 돌아본 지훈이의 눈에 아기거위들을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든 꽥꽥이가 보였습니다.
꽥꽥이는 어떻게 해서든 아기 거위들을 개울가로 밀어보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다리를 저으며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꽥꽥이 역시 세찬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아기 거위들과 함께 조금씩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지훈이는 몹시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훈이가 심한 장난꾸러기이긴 했지만 정말로 아기 거위들을 헤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요.
단지 아기 거위들 때문에 당황하는 꽥꽥이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꽥꽥이를 놀려주려는 생각뿐이었는데 아기 거위들과 꽥꽥이가 물살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되자 지훈이는 당장 이 장난을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훈이는 아기 거위들을 개울물에서 꺼내보려고 손을 뻗어보았지만 계속 떠내려가고 있는 아기 거위들이 쉽게 손에 닿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한쪽 다리를 물 속에 무릎까지 집어넣고서야 겨우 한 마리를 건져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물 속에는 꽥꽥이와 두 마리의 아기 거위가 더 남아있었습니다.
지훈이는 계속해서 아래로 떠내려가는 거위들을 따라잡기 위해 개울을 따라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간 다음 조금 전처럼 다리 한 쪽을 물 속에 집어넣고 떠내려오는 거위들을 붙잡을 생각에 팔을 뻗어보았습니다.
계속 지훈이를 따라오며 이를 지켜보던 대장이와 복슬이는 거위들이 무척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발 지훈이가 거위 모두를 무사히 건져내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습니다.
아래쪽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지훈이 쪽으로 거위들이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지훈이는 최대한 팔을 길게 뻗어보았지만 잘 닿지를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지훈이는 개울물 속으로 좀 더 다리를 집어넣고 또 다른 아기 거위 한 마리를 구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아기 거위를 개울가 풀밭에 살짝 내려놓고는 뒤에 떠내려오는 꽥꽥이와 마지막 아기 거위를 향해 또다시 팔을 뻗었습니다.
꽥꽥이 역시 아기 거위를 지훈이쪽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애를 쓰고있었습니다.
점점 깊은 물 쪽으로 떠내려가는 꽥꽥이와 아기 거위가 손에 닿지를 않자 지훈이는 하는 수 없이 물 속으로 조금 더 다리를 집어넣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지훈이의 두 다리가 모두 물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훈이가 가까스로 꽥꽥이를 막 붙잡은 순간 그만 지훈이의 발이 바위에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개울물 속의 바위에는 이끼들이 붙어있어서 아주 미끄러웠거든요.
꽥꽥이와 아기 거위를 붙잡기는 했지만 물살이 워낙 셌기 때문에 지훈이는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래쪽으로 휩쓸려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떠내려가다간 이젠 지훈이마저 위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웬일인지 아래쪽으로 갈수록 물살도 더 세 지고 물깊이도 점점 깊어졌으니까요.
하지만 다행히 물살에 떠내려가던 지훈이는 개울 위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아래로 떠내려가는 것은 멈추었지만 지훈이는 쉽게 물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물살도 센 데다 바위가 온통 미끄러운 이끼로 덮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도 많이 깊어져 있었습니다.
지훈이는 온 힘을 다해 나뭇가지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꽥꽥이와 아기 거위도 지훈이의 어깨에 겨우 매달려 있었습니다.
"복슬아! 어서 가서 도와줄 사람을 데려와. 여기서는 지훈이가 혼자 힘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어."
꽥꽥이가 개울가에 있는 복슬이에게 소리쳤습니다.
"어서 서둘러야해. 여기서 나뭇가지를 놓치면 더 이상 잡을 것도 없어서 저 깊은 개울 속으로 빠져들고 말 거야!"
꽥꽥이의 말을 듣고 복슬이는 황급히 몸을 돌려 언덕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장이는 아기 거위들을 데리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훈이와 거위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붙잡아 지훈아! 복슬이가 돌아올 때까진 절대 나뭇가지를 놓쳐선 안 돼!"
대장이가 지훈이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소리쳤지만 지훈이에겐 꼬끼오 하는 소리로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한 편 쉬지 않고 집으로 뛰어서 돌아간 복슬이는 아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떡하면 좋지?"
복슬이에게서 개울가에서 벌어진 사고 소식을 들고 방울이와 누렁이는 몹시 놀랐습니다.
"방법은 하나 뿐이야."
방울이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기다리거나 마을로 가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거야."
"그럼 어떻게 해?"
"방법은 하나야. 하지만 힘이 센 누렁이의 도움이 꼭 필요해!"
이렇게 해서 복슬이는 방울이와 누렁이를 데리고 다시 개울가 쪽으로 향했습니다.
마음이 급한 복슬이의 눈에는 늙은 누렁이 소의 발걸음은 너무 느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서 서둘러! 늦으면 큰일난다구!"
복슬이는 계속해서 누렁이를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누렁이도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개울가에 다다랐을 때, 누렁이는 숨이 턱에까지 차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뛰어다니기에는 너무 늙었어."
누렁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런데 지훈이와 꽥꽥이는 어디에 있는 거야?"
방울이가 복슬이에게 물었습니다.
복슬이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개울가의 모습은 거기가 다 거기처럼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쪽 아래에서 대장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꼬.끼.오.
"저쪽이다!"
복슬이가 앞장을 서고 다시 누렁이와 방울이가 뒤를 따랐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힘들게 매달려 있는 지훈이와 그 어깨에 매달려 있는 꽥꽥이와 아기 거위가 보였습니다.
"어서 와. 서둘러야겠어. 지훈이가 힘이 빠져가고 있어."
대장이가 복슬이와 누렁이 그리고 방울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누렁이가 방울이에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 누렁이 목에 있는 밧줄을 지훈이가 잡도록 해야해. 그리고 나서 누렁이가 지훈이를 끌어당기면 된다구."
"하지만 내 목에 있는 줄을 어떻게 지훈이가 잡게 하지?"
누렁이가 방울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장이가 나섰습니다.
"내가 한 번 해볼게."
대장이는 누렁이 목에 달린 기다란 줄의 끝을 입에 물고 지훈이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 위로 용감하게 올라섰습니다.
대장이에게 이런 나뭇가지에서 걷는 것쯤이야 아주 쉬운 일이었지만 자칫해서 물 속으로 떨어지기라고 하는 날이면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대장이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장이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성큼성큼 나뭇가지 끝으로 다가가 지훈이가 줄의 끝을 붙잡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지훈이가 줄을 안전하게 잡은 것을 확인하자 대장이는 서둘러 나뭇가지에서 내려왔습니다. 나뭇가지가 대장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일일 테니까요.
대장이가 건네준 줄을 지훈이가 두 손으로 꼭 잡은 것을 확인하자 누렁이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누렁이가 뒷걸음질 칠 때마다 지훈이는 조금씩 앞으로 당겨졌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안전하게 개울가 풀 위로 끌어 올려졌습니다. 물론 지훈이의 어깨에 있던 꽥꽥이와 아기 오리도 무사히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훈이와 꽥괙이 그리고 아기 오리가 모두 무사한 것을 보자 동물 식구들은 모두 기뻐서 만세를 외쳤습니다.
"모두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방울이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기뻐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지훈이는 정말로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저 단순한 동물들로만 여기던 동물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자신과 거위들을 구해낸 것입니다. 지훈이로서는 정말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지훈이는 이 동물들도 자신처럼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동물들에게 너무나 심하게 대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훈이는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정말로 고마워, 얘들아. 너희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너희를 괴롭힌 것도 모두 사과할게."
지훈이는 진심으로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너희 모두에게 정말 고마워!"
그리고는 꽥꽥이와 아기 거위들을 보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꽥꽥아 내가 아기 거위들을 정말로 위험에 빠뜨리려고 했던 건 아니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정말로 미안해!"
꽥꽥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지훈이는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꽥꽥이는 지훈이에게 다가가 부리로 지훈이의 손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괜찮아, 지훈아. 네가 정말로 나쁜 아이가 아니란 것을 알았으니 됐어. 너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와 아기 거위들을 구해주려고 했잖아."
꽥꽥이의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꽥꽥이의 다정한 행동을 보며 지훈이도 꽥꽥이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비록 몸은 힘든 일을 겪고 난 뒤라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뛰어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친 늙은 소 누렁이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한참이 걸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러한 누렁이를 놀리는 동물은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지훈이는 다시는 동물 식구들을 괴롭히는 장난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할머니를 도와 동물들의 먹이와 물을 주고 누렁이의 외양간 청소도 해주었습니다.
며칠 뒤에 대장이의 알에서 병아리들이 태어나자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각각의 병아리들에게 예쁜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동물 식구들과 즐겁게 지내던 지훈이는 여름 방학이 끝나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지훈이는 동물 식구들 모두에게 차례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고 동물 식구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지훈이를 배웅해 주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될 내년 여름 방학을 기약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