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좀 보강해 보았습니다.^^ 사건의 연개성을 좀 개선하기 위해서....
주인공 이름을 민수에서 동민이로 수정도 했구요. 바람 소소라는 제 글의 주인공과 이름이 겹쳐지고 또 제가 너무 많이 우려먹은 이름이라....-_-;;;
암튼 아직은 허접한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해뜰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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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시간이 끝나 갈 때가 다가오자 동민이의 시선은 자꾸만 교실 창 밖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여전히 교실 창문에 줄을 긋고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제 제법 큰 무리를 이루어 교문 밖에서 웅성웅성 대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아침에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아이들을 마중 나온 부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에 젖은 운동장을 바라보며 어서 수업이 끝나고 교문이 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 역시 어서 밖으로 나가 엄마들을 만나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자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청소를 맡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동민이는 남은 아이들과 교실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동민이는 오늘 청소 당번도 아니었지만 다른 친구와 일부러 순서를 바꾸어 청소를 자청한 것이었습니다.
청소를 하고있는 중에도 동민이는 가끔씩 창 밖을 살폈지만 내리는 비는 여전히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청소를 끝낸 아이들도 이제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쓰레기통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난 다음에야 동민이는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를 빠져나갔기 때문에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를 찾느라 내지르는 고함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동민이는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 신발주머니를 머리 위에 얹고 천천히 운동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교문 앞에서는 아직도 자신의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엄마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민이는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서 교문 주위에 서있는 어른들의 얼굴을 살폈지만 역시 동민이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민이는 쓸데없는 짓을 해서 괜히 다른 엄마들과 눈이 마주친 것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바로 앞에서 같은 반 여자아이인 혜선이가 엄마와 같은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민이는 우산도 없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 오는 날 마중 나올 엄마가 없어 이렇게 비를 맞고 집으로 향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혜선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되도록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동민이의 엄마는 식당에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이 시간에 동민이를 데리러 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집안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야 하는 동민이의 엄마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고 밥이며 반찬 같은 것을 나르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비록 얼마 되진 않았지만 동민이가 계속해서 학교에 다니며 공부도 하고 작은 살림이나마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동민이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다른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들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아직 어린 아들인 자신을 그냥 비 맞도록 하는 엄마가 원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망은 곧 아빠에게로 옮겨갔습니다.
일년 전만 해도 동민이는 모든 것이 행복하기만 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엄마는 항상 집에서 반갑게 맞아주시며 빵이나 튀김 같은 간식을 만들어 주셨고, 아빠는 저녁마다 과자나 과일이든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들어오시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고, 저녁에는 아빠대신 엄마가 늘 피곤에 지친 얼굴로 들어오십니다.
동민이는 아무도 없는 집에 쓸쓸하게 혼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싫었습니다. 너무 외로웠고 또 가끔은 서글픈 생각도 들곤 했으니까요.
일년 전 교통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동민이의 행복한 시절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아빠 때문에 엄마가 힘들게 일하셔야만 하고 아빠 때문에 이렇게 비 오는 날 자신이 우산도 없이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민이는 날이 갈수록 아빠에 대한 원망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땅만 보면서 걷던 동민이에게 바라지 않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앞에 가던 혜선이가 뒤를 돌아보면서 동민이를 발견하고만 것이었습니다.
"어머! 동민아. 너 우산 없구나?"
"어? 으......응."
"같은 방향인데 나랑 같이 쓰고 갈래?"
"아니, 괜찮아."
"왜? 같이 쓰고 가자."
"괜찮다니까. 금방 헤어질 건데 뭐. 비도 얼마 안 오고."
동민이는 애써 쾌활한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래, 알았어. 잘 가라! 동민아."
혜선이는 다시 엄마와 함께 길을 가기 시작했고 동민이는 자신의 초라해 보이는 모습을 혜선이에게 들켜버린 것 때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앞에 가던 혜선이가 다른 골목길로 사라지자 동민이는 걸음을 약간 빨리 했습니다. 아무리 보슬비라도 오래도록 맞으면 옷이 흠뻑 젖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걷고 있는 동민이의 눈에 마주 오고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먼지와 때가 많이 묻었는지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더러워 보였습니다. 게다가 비에 젖은 털들이 뭉쳐져서 군데군데 속살까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곳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길에서 산 지 오래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땅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걷던 그 강아지가 동민이에게로 다가왔습니다.
동민이의 주위를 왔다갔다하며 얼굴을 살피는가 싶더니 동민이의 다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동민이의 신발을 핥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동민은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급하게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길 잃은 강아지는 다시 동민에게로 다가와 또 신발을 핥으려고 하였습니다.
"저리 가, 똥개야!"
동민이는 그 더러운 강아지가 자신의 신발을 핥지 못하게 하려고 발로 강아지를 걷어차 버렸습니다.
발로 걷어찬 곳이 제법 아팠는지 깽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아지는 뒤로 물러났고 다시 어딘가를 향해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강아지를 쫓아내는데 성공은 했지만 동민이의 기분은 더욱더 엉망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한 여름 소나기처럼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민이는 거세어진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 얼른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동민이의 작은 몸을 숨길만한 곳은 아무데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갑자기 퍼붓는 비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동민이는 몹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얘야, 이리로 들어오너라!"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니 붕어빵을 팔고있는 작은 포장마차에서 어떤 할머니가 동민이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민이는 급한 마음에 얼른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 말고는 달리 비를 피할 만한 곳이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동민이는 자신의 젖은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팔려고 구워놓은 붕어빵이나 의자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후후, 뭐 이런걸 가지고....... 그런데 어쩌다가 우산도 없이 그렇게 비를 맞고 가는 게냐?"
"......"
동민이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오냐, 알았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게지. 자 거기 앉아서 이거나 좀 먹어보려무나."
할머니는 동민이에게 의자를 하나 권해주시며 친절하게도 방금 구워낸 듯한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건네주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저는 돈이 하나도 없는 걸요."
"괜찮다 얘야. 그냥 주는 것이니 맘놓고 먹도록 해라. 어차피 추운 겨울도 아닌데 누가 이런 붕어빵을 사서 먹겠니?"
"그럼......감사합니다."
마침 배가 고팠으므로 동민이는 할머니가 건네 주시는 붕어빵을 모두 먹어치우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붕어빵을 먹으면서 동민이는 겨울도 아닌, 그것도 여름이 바로 코앞인 계절에 아직도 붕어빵을 팔고 있는 이 이상하지만 친절한 할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언제부터 여기서 장사하셨어요?"
"그건 왜 묻는 게냐?"
"이 길은 제가 매일 다니는 길인데 한 번도 할머니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동민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미소 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며 대답을 하셨습니다.
"글쎄, 그건 네가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아서가 아닐까?"
할머니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동민은 더 이상 그 질문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붕어빵을 맛있게 먹고 있는 동민이를 바라보시며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계셨습니다.
동민이는 그러한 할머니의 모습이 어딘지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너는 내 아들과 생김새가 꼭 닮았구나."
"네? 할머니 아들이요?"
"그래, 장수라고."
"장수요? 저희 아빠 이름도 장수였었는데......"
"그러냐? 정말 신기한 일이로구나."
하지만 계속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계시던 할머니의 얼굴에 갑자기 쓸쓸한 표정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다."
할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아들 생각 때문인지 잠시 눈가를 손으로 훔치시더니 동민이에게 아들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할머니의 아들도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자 남게된 며느리와 손자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여름이 다 되도록 붕어빵을 팔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내게는 정말 착한 아들이었단다. 그리고 좋은 아빠이기도 했지. 장수란 놈은 어딜 가나 자기 아들자랑에 늘 바빴단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동민이를 바라보시며 또 다시 눈가의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회사 일이 바빠서 항상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것에 늘 마음을 쓰곤 했지. 그런 아들놈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지......"
할머니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동민이는 잠시 돌아가신 아빠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회사에 다니고 계셨던 동민이의 아빠도 곧잘 늦게 들어오시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일찍 들어오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서 동민이에게 맛있는 간식을 안겨다 주시곤 하셨습니다.
가끔은 늦은 시간까지 동민이가 자지 않고 아빠를 기다리기도 했었는데, 그런 날은 아빠가 사다주신 간식거리를 동민이가 다 먹어치우기도 전에 아빠가 먼저 피곤하다면 잠 속으로 빠져들곤 했었습니다.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채 기다리지 못하고 동민이가 먼저 잠에 빠져들거나 아니면 아빠가 일찍 들어오셨더라도 피곤 때문에 얼마 앉아 계시지 못하고 동민이보다 먼저 잠에 빠져들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일요일 같은 공휴일이 되면 언제나 동민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셨다는 것을 동민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멀리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가까운 공원이나 놀이터에라도 나가 함께 공을 차거나 아니면 서점에 들러 책을 골라주시곤 했었습니다.
"그 날 사고만 아니었어도 아직도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셋이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동민이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며 아들을 몹시 사랑하고 계셨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아빠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오, 그렇구나."
대답은 그렇게 하셨지만 할머니는 별로 놀라는 것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예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아내고 계시던 할머니는 마치 벌써 알고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민이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래, 너도 아빠가 많이 보고싶겠구나."
"예, 할머니."
"네 아빠도 너를 많이 보고싶어 하고 계실게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와 저를 버리고 혼자서 하늘나라고 가버린걸요."
동민이는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빠 때문에 저는 학교에서 놀림 당할 때도 있어요. 동철이란 애가 저를 아빠 없는 애라고 놀려요.”
"왜 그런 아이 말에 신경을 쓰는 게냐?"
"그리고 아빠대신 돈을 벌려고 엄마는 매일 식당에 나가야하고...... 그래서 예전처럼 잘 놀아주지도 않아요."
"아빠도 그것 때문에 많이 속상하시겠구나."
"하지만 아빠는 이미 돌아가신 걸요."
붕어빵 할머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민이에게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습니다.
"얘야, 네 아빠가 돌아가신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너를 지켜보고 계실게다."
"하지만 돌아가신 걸요."
"후후후. 네 아빠는 아직도 너를 많이 걱정하고 있을게 분명하단다. 그리고 너와 네 엄마에게 많이 미안해하고 있겠지."
할머니는 동민이의 어깨에 손을 가만히 얹고 잠시 토닥여 주셨습니다.
"내 생각엔 그 날밤 교통사고가 네 아빠 잘못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너와 엄마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었겠니."
"......"
"아빠는 아직도 너를 많이 사랑하고 계실 게다, 얘야."
할머니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 날 밤 사고는 전적으로 아빠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음주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중앙선을 넘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던 아빠 차를 들이박으면서 사고가 났으니까요.
소식을 듣고 엄마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이미 숨을 거두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나이 어린 동민이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건 하얀 천으로 덮여있던 아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미련이 남은 듯 하얀 천 밖으로 살짝 빠져나온 아빠의 손끝을 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아무잘못도 없던 아빠는 동민이와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만 것입니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아빠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과 엄마를 생각하며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동민이는 가슴 한쪽이 시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동민이는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져 왔으므로 억지로라도 눈물을 참아보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만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아까 만났던 길 잃은 더러운 강아지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 강아지는 여전히 비에 젖어 볼품 없는 꼬리를 흔들며 또다시 동민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동민이를 발견한 강아지가 조금 전의 기억 때문인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다시 동민이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동민이는 더러운 강아지에게 신발이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리를 의자위로 끌어올리며 소리쳤습니다.
"저리로 가. 똥개야!"
동민이가 소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아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의자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저리로 가란 말이야!"
동민이가 아까 보다도 더 큰 소리로 쫓아내려 했지만 그 강아지는 동민이의 발치 근처에서 꿈쩍도 하지 않으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동민이는 다시 한 번 강아지를 쫓아내려고 강아지를 향해 다리를 휘둘렸습니다.
"얘야, 그러지 말아라. 불쌍하잖니"
할머니는 강아지를 걷어차려는 동민이를 말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잠시 살펴보시더니 그 더러운 강아지에게 붕어빵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 강아지는 무척이나 배가 고팠었는지 순식간에 붕어빵 하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붕어빵을 던져주었습니다.
강아지는 신이 난 듯 꼬리를 흔들며 두 번째 붕어빵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배가 많이 고팠었나 보구나. 불쌍한 것."
할머니는 온화한 표정으로 강아지가 붕어빵 먹는 것을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얘야, 한 번 자세히 보려무나. 털에 얼룩이 묻어 겉으로는 지저분해 보여도 까만 눈동자가 참으로 순하고 착하게 생겼구나."
동민이도 강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럽기는 했지만 원래의 생김새는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씀대로 두 눈동자는 정말로 착해 보였습니다.
'저 강아지도 나처럼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니 아까 전에 발로 걷어찼던 것이 조금 미안하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강아지가 붕어빵 먹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서서히 비가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구름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동민이는 이제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머니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붕어빵 감사했어요."
"그래, 정말로 비가 그쳤구나."
할머니는 동민이가 떠난다는 것을 몹시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언제 또 비가 퍼부을지 모르지 어서 집으로 가거라."
"예, 할머니. 내일도 나오실 거죠. 내일은 제가 꼭 붕어빵 팔아드릴게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푸근한 미소를 지으시는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동민이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동민이의 등뒤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참! 얘야 무적이 다리는 다 나았는지 궁금하구나. 후후후"
동민이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할머니를 힐끔 돌아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동민이를 바라보시며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저 할머니가 어떻게 무적이에 대해 알고있을까?'
무적이는 동민이의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동민이에게 사다 준 5단 변신 로봇의 이름이었습니다.
동민이의 생일 선물로 아빠가 그 로봇 장난감을 사 가지고 들어오시던 날 동민이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었습니다. 얼마나 갖고싶었던 로봇이었는지......
그 날 아빠와 동민이가 몇 시간이나 고민한 끝에 로봇에게 지어준 이름이 바로 무적이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줄곧 동민이의 보물 1호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무적이는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점점 찬밥 신세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식당에 일을 나가게 되면서 동민이는 어느새 점점 아빠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쭉 집안 살림만을 해오시던 엄마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든 식당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고 그 것 때문에 곧잘 몸살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엄마가 식당에 나가시게 되면서부터 학교가 끝난 대부분의 시간을 외롭게 혼자 보내고 있어야 하는 데다 학교에서까지 놀림을 당하게 되면서 동민이는 점점 돌아가신 아빠에게 화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풀이로 무적이를 벽에다 던져버렸던 것입니다.
바로 그 날 무적이의 한 쪽 다리가 부러져 버렸는데, 다리가 부러져 쓸모가 없어져 버린 5단 변신 로봇 무적이를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한 쪽 구석에 안 보이도록 처박아 두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 할머니가 무적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인지 동민이는 참으로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아들과 자신의 아빠 이름이 같다는 것도 참으로 이상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민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추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언제 또다시 비가 퍼부을지도 몰랐으니까요.
골목길을 돌아서면서 동민이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붕어빵 할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곳엔 텅 빈 공터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동민이는 자신이 포장마차가 있던 곳을 착각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잠시 무적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너무 많이 와버렸기 때문에 골목길을 착각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니면 꿈을 꾼 것이겠지요.
그때 동민이의 뒤쪽에서 갑자기 첨벙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서너 명의 아이들이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첨벙!'
또 다시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웅덩이에 고여있던 빗물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 옆에 그 길 잃은 강아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그 강아지를 겨냥해 물을 튀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야! 도둑 강아지야!"
계속해서 돌멩이가 날아오자 겁에 질린 강아지는 몸만 움츠릴 뿐 그 자리를 피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야! 도둑 강아지, 더러운 개야!"
아이들은 강아지를 놀리며 아주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탁!'
그러다가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 하나가 웅덩이 대신에 강아지의 몸을 맞추었습니다.
아파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강아지는 도망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웅크린 채로 앞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바보 같긴, 뒤로 도망치란 말이야!'
동민이는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아이들을 피해서 오던 길로 되돌아가 도망치면 그만인 것을 왜 저렇게 당하고만 있는지 한심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얘들아! 이제 그만해."
보다못한 동민이가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왜? 형이 뭔데 그래. 저 강아지는 주인도 없는 거지 개란 말이야."
그러면서 아이들은 계속해서 강아지에게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이제는 웅덩이가 아닌 강아지를 직접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탁!', '탁!'
계속되는 돌멩이 세례에 겁을 먹은 강아지는 아예 땅에 엎드려 꼼짝도 못하고 낑낑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야! 너희들 내 말 안 들으면 혼내줄 거야."
동민이는 더러운 강아지의 털 사이로 붉은 피가 베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돌멩이에 맞아 상처가 생긴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 너희들 그만 하라니까?"
갑작스럽게 동민이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아이들은 돌멩이 던지던 것을 멈추고 동민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그만 하라고 했잖아. 너희 눈에는 저 강아지가 불쌍하지도 않니?"
동민이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아이들이 겁을 먹고 그만 물러가 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이에 비해 덩치가 작고 혼자 뿐인 동민이에게 쉽게 겁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형이 뭔데 그래? 형 강아지도 아니잖아!"
"맞아! 형 강아지도 아니면서 왜 참견하고 그래?"
아이들 말에 동민이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쉽게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다쳐서 피까지 흘리는 게 보이지도 않니?"
동민이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 강아지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피가 나고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거지 강아진데 어때?"
"맞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저런 강아지는 더럽고 쓰레기까지 뒤지고 다녀서 우리한테 해롭다고 했어."
아이들이 쉽게 동민이의 뜻에 따르지 않자 동민이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너희들 내말 안 들을래?"
동민이는 한 쪽 팔을 들어올려 때릴 듯한 시늉을 내며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조금 겁을 먹었는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래도 거지 강아지는 거지 강아지야!"
그래도 아이들이 완전히 물러서지 않자 동민이는 이번엔 한 쪽 신발을 벗어들고 아이들 쪽으로 뛰어가며 겁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진짜로 겁을 먹었는지 모두들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뿔뿔이 도망을 쳤습니다.
돌멩이를 던지던 아이들이 모두 떠나가자 동민이는 강아지를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젖어있던 길 때문에 흠뻑 젖고 더러워져버린 양말을 벗어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시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강아지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동민이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동민이는 이 강아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보자 강아지를 향해 다시 발길질을 하였습니다.
정말로 강아지를 찰 생각은 없었고 아까 아이들을 쫓아냈던 것처럼 강아지를 떼어버릴 생각에 강아지가 겁을 먹고 도망가도록 시늉만 낸 것이었습니다.
"저리가! 왜 귀찮게 따라오는 거야! "
조금 전의 어린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강아지도 겁을 먹고 주춤주춤하더니 동민이의 뒤를 따르던 것을 멈춘 듯 보였습니다.
동민이는 다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집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앞쪽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마주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손에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있었는데 다리가 불편한지 절뚝거리고 있었습니다.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할아버지에게는 묵직해 보이는 보따리가 많이 힘에 겨워 보였습니다.
"어이구 허리야, 이젠 늙어서 힘도 없구먼. 아니 얘야 너는 집이 어디냐?"
동민이는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니 너희 집이 어디냐니까?"
"바로 저 앞인데요."
"오호, 그렇구나. 참 잘 생겼구나. 그런데 이 할아버지 좀 도와주지 않으련"
"……"
"이 보따리가 너무 무거워서 그러는데 저기 저 버스 정류장까지만 들어주면 안되겠니?"
동민이는 집 앞까지 거의 다 온 마당에 다시 버스 정류장까지 가야만하나 하는 마음에 망설여졌지만 할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는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보따리는 조금 묵직하기는 했지만 동민이가 들기에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너는 몇 학년이냐?"
"예, 5학년인데요."
"그럼 한 11살쯤 되었겠구나."
"예, 할아버지."
"그래 정말 시간 빠르구나. 벌써 11살이라니......"
동민이는 지금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를 전에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 학교 생활은 재미있니?"
"예? ...... 예."
동민은 마지못해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학교생활을 시시콜콜 다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착하구나.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씩씩하게 지내야 한다."
잠시 이 낯선 할아버지와 동민이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있었는지 잠시 보이지 않았던 그 길 잃은 강아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강아지는 조금 거리를 둔 채로 계속해서 동민이와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동민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찮다는 듯 강아지를 쏘아보았습니다. 그러자 강아지도 주춤거리며 땅바닥에 코를 대고 제자리에서 맴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웬 강아지냐? 꼬마야 네거냐?"
"아니에요. 저도 모르는 강아지인데 자꾸 성가시게 따라붙어요."
할아버지는 강아지를 잠시 지긋한 눈으로 쳐다보셨습니다.
"옳아! 네가 몹시도 맘에 드는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너무 더럽고 주인도 없는 강아지라 저는 싫은걸요."
"허허허, 하지만 저 강아지도 뭐 처음부터 저랬겠느냐. 누군가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고 돌봐준다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보기 좋아질 수 있을게다."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동민이는 다시 한 번 강아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그 모습이 더욱 망가지기는 했지만 까만 눈동자는 여전히 맑고 착해 보였습니다.
강아지의 등에서 조금 전에 돌멩이에 맞아서 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엉겨붙어 있었습니다. 동민이는 강아지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민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아지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강아지의 머리와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강아지에게 묻어있는 더러운 먼지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도 할아버지의 손을 거부하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할아버지의 손바닥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보거라, 원래는 하얗고 예쁜 강아지였을 텐데 씻겨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보이는 것이란다."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아지를 쓰다듬고는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 중요한 건 내면에 간직한 아름다움과 착한 마음씨란다."
동민이는 인자한 표정으로 강아지를 쳐다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어딘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동민이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응, 우리 며느리 보러 가는 길이란다."
"그럼 이 보따리 안에는 뭐가 들었나요?"
"응, 며느리에게 줄 선물이 들어있지. 우리 며느리가 우리 손자를 혼자서 키우느라고 너무 고생이 많아서 우리 할멈하고 내가 며느리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거든."
이 낯선 할아버지는 며느리와 손자얘기를 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함박 웃음까지 짖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벌써 다 왔구나, 고맙다 얘야."
"버스 정류장까지는 아직 더 남았는데요."
"아니다, 이제 됐으니 너는 그만 가 보거라. 그럼 잘 가거라."
할아버지는 동민이에게서 보따리를 받아 들고는 손을 흔들며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기분이 좋아져서 일까요? 할아버지는 아까 보다는 훨씬 더 가볍게 보따리를 들고서 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다리를 절지도 않고 걸음도 얼마나 빠른지 순식간에 동민이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기 위해 돌아선 순간, 동민이는 그만 깜짝 놀라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은 바로 동민이의 엄마가 일하시는 식당 앞이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동민이는 엄마가 일하고 계시는 식당으로 가는 것을 꺼려했었습니다. 누가 알까봐 창피하기도 했었고 또 엄마가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왠지 두렵기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모르는 척 얼른 지나쳐 버릴까 하다가 동민이는 이왕 여기가지 왔으니 멀찌감치 떨어져서 투명한 유리문 안으로 엄마의 모습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역시나 엄마의 모습은 식당 한 가운데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시느라 엄마는 앞이마로 흘러져 내려온 머리카락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고 바쁘게 일하고 계셨습니다.
연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시며 음식과 빈 그릇들을 치우느라 들고 다니는 쟁반은 가냘픈 엄마의 몸으로는 너무나 버거워 보였습니다.
피곤한 기색 속에서도 엄마는 내색치 않고 손님들에게 연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동민이는 그러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한 번도 엄마가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아빠를 원망하거나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동민이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항상 피곤한 몸이었지만 동민이를 안아주시며 사랑한다는 말을 늘 잊지 않으시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동민이는 흐르는 눈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몸을 숨긴 채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혹시라도 울고있는 동민이를 발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옷소매로 급히 눈물을 닦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기로 했습니다.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돌아서는데 길 잃은 강아지가 저쪽에서 다소곳이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전히 볼품 없고 더러웠지만 얌전히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또 다정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동민이가 집으로 발길을 옮기자 그 강아지도 조용히 동민이의 뒤를 따랐습니다.
드디어 집 앞에 다다르자 동민이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강아지는 여전히 동민이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왜 자꾸 나를 따라오는 거니? 정말로 갈 데가 아무데도 없는 거니?"
동민이는 강아지의 눈을 쳐다보았습니다.
강아지의 맑고 까만 눈동자도 동민이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 씻겨놓으면 그런 대로 봐줄 만 하겠어."
동민이는 강아지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리로 오렴. 괜찮아, 이젠 안 때릴게."
처음엔 머뭇머뭇하던 강아지가 순순히 동민에게로 다가와 동민이 내민 손바닥을 핥았습니다.
손바닥이 간지러웠습니다.
동민이는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목욕을 시키고 먹을 것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깨끗하고 씻겨놓으니 복슬복슬한 하얀 털이 되살아나 꽤나 귀여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강아지의 상처난 곳을 찾아서 동민이가 사용하던 연고도 발라주었습니다.
"네 이름을 지어주어야겠구나?"
동민이는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같이 살려면 부르기 좋고 듣기도 좋은 적당한 이름으로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쫑아라고 해야겠어."
동민이가 강아지의 하얀 털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네 이름말이야. 아빠이름 종수에서 따온 거야. 어때 마음에 들어?"
강아지, 아니 쫑아가 동민이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동민이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던 무적이도 꺼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러진 다리는 테이프로 감아서 다시 이어주었습니다.
파란색 테이프 때문에 5단 변신 로봇의 위용은 좀 떨어져 보였지만 동민이는 무적이를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다시 세워두었습니다.
동민이는 쌀도 꺼내어 씻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좀 서툴기는 했지만 힘든 엄마를 위해서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깨너머로 본 그대로 손을 담가 물의 양을 잰 다음 전기 밥솥에 넣고 전기 코드를 꼽았습니다.
동민이는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밥솥의 밥이 다 익기도 전에 엄마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났습니다.
엄마는 늘 그렇듯 힘든 내색은 없이 웃으며 들어오셨습니다. 동민이는 아까 식당 앞에서 본 엄마의 모습이 다시 떠올라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웃는 얼굴로 엄마를 맞았습니다.
엄마는 동민이가 엄마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라면서도 기뻐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민이를 바라보시던 엄마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동민이를 꼭 껴안으시며 두 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동민아, 너도 이제 다 컸구나."
엄마는 동민이를 껴안았던 팔을 푸시며 기쁜 목소리로 말씀 하셨습니다.
"동민아, 오늘 좋은 소식이 있었단다."
엄마는 동민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에 있는 땅이 글쎄 오늘 팔렸다는 구나. 너무 외지고 작은 땅이라 큰돈은 안되겠지만 엄마가 작은 가게는 차릴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는 잠시동안 동민이를 다시 안으셨다가 놓으시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셨습니다.
"이제 엄마랑 동민이가 함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지게 될 거야."
동민이는 엄마의 말에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사실 이제 엄마가 예전보다는 고생을 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더 기뻤습니다.
엄마는 장롱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었던 작은 상자를 꺼내놓으셨습니다. 상자 안에는 바로 그 시골 땅 문서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접혀있던 땅 문서를 들어올리자 그 사이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 낡은 사진 속에서 동민이는 낯익은 얼굴 셋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은 좀 더 젊었을 때의 아빠였지만 그 뒤에 서있는 두 사람은 놀랍게도 아까 낮에 만났던 붕어빵 할머니와 보따리를 든 할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엄마! 여기 아빠 뒤에 서 계신 분들은 누구예요?"
"응, 돌아가신 동민이 할아버지랑 할머니잖니. 동민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너는 아마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거야."
"네?"
동민이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사진 속의 얼굴은 분명히 아까 낮에 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이 분명했습니다.
동민이는 한참동안이나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도 멍해지는 것 같았지만 곧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과 엄마를 지켜보며 도와주시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말입니다.
아빠를 원망하며 살아가던 동민이를 위해 그리고 힘들게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아마도 잠시 동민이 곁을 다녀가셨나 봅니다.
동민이는 낡은 사진을 잠시 가슴에 대고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동민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동민이가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행복해하는 동민이를 보며 마음이 흐뭇해 졌습니다.
동민이는 이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고 항상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항상 자신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