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아직도 거리엔 온통 어릴 적 할머니께서 끓이시던 쇠죽냄새가 납니다. 아마 계절도 비슷하지 않았나 싶어요. 얼어붙은 논두렁에서 감나무 주위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다 언 손을 녹이려고 집으로 뛰어들어가면 어김없이 할머니는 누렁이에게 줄 쇠죽을 가마솥으로 하나 가득 끓이고 계셨으니까요. 추운 날일수록 어김없이 누렁이에게 더운죽을 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푸라기를 한아름 넣고 빙빙 막대기를 저어 끓이는 쇠죽가마에서는 고소한 것 같기도 하고 비릿하기도 한 이상한 냄새가 났었습니다. 운동화가 젖기라도 하면 늘 그 가마솥 언저리에 올려놓으셨는데, 뚜껑을 닫으면 조금 약해졌다가 다시 뚜껑을 열면 온 집안을 진동하는 쇠죽냄새가 그 때 나는 너무 싫어서 할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던 기억도 납니다. 집에 들어와 처음 맡으면 조금 좋은 것 같기도 했지만 계속 맡고 있으면 사랑방 아랫목의 메주냄새와도 비슷한, 참 이상한 냄새였으니까요. 지금 창 밖으로 허리가 끊어질 듯 부는 바람소리를 듣다보니 갑자기 마음이 허해지고 그 옛날 할머니께서 막대기로 저어가며 끓이시던 쇠죽냄새가 그리워집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가마솥에 살이의 온갖 까끌한 것들을 지푸라기와 함께 몰아 넣고 뜨거운 장작불로 녹여 걸쭉하게 만드는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가시고 없지만 지포라이터로 늘 추억하니 위로가 되는데 이렇게 쇠죽냄새마저 그리워질 날이 온다는 걸 그 때 알았더라면 코를 킁킁거리며 실컷 맡아둘 걸 그랬나봐요.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시골집에는 누렁이와 갓난 송아지가 살았고, 동리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다 사립을 열고 들어오면 언제나 할머니께서 외양간 곁에 쪼그리고 앉아 가마솥 하나 가득 쇠죽을 끓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