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광장" 이라는 소설이다. 언제 읽었었더라? 난 소설 따위를 읽고 있을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아닌데. 가만 살펴보니 그 수많은 책장들 중에서, 현대 문학은 오직 이 책 한권밖에 없었다. 고시 수험서, 혹은 빛바랜 군사 잡지들, 역사책들이 낡은 책장에서 간신히 자기 자리를 잡은 채로 아우성치고 있다. 책을 집어든다. 구겨져있다. 구겨진 부분을 편다. 아마 구겨진 부분까지 읽었다가 잠이 와서 접어둔 채로 잠들었는가보다. 어쩌면 수면제 대용으로 사용했는가보지. 흥미가 없는 일을 반복하는 것만큼 사람을 잠들 수 있게 하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빛바랜 텍스트를을 훑어간다. 이명진이라는 사람이, 지금 자기가 있는 남한에는 밀실만이 있을 뿐이라고 자조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고 있다. 남한의 광장은 죄다 썩어문드러졌단다. 그 곳의 무뢰배들이 자기의 조그만 밀실 문 앞까지 쳐들어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단다. 시대적 배경이 해방 직후이고, 이 소설이 쓰여졌을 때가 1960년이지...?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이야기지만, 그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한 30년 정도 광장에 어둠이 드리워졌고 남은 20년 동안 그 어둠이 걷히었지만, 뭐 결론적으로 그때랑 달라진 것이 없다. 83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광장은 없는 걸까. 조금 책을 넘겨본다. 거기서는 이명준이 북한에 가 있다. 그리고는 그 곳에는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단다. 광장의 모든 구호들은 공허한 죽은 구호들이란다. 혁명의 흉내만 내고 있는 인민공화국이란다. 새끼, 거 참 불만 많은 인간이네. 그냥 그러려니하고 살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라는 인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냥 그러려니하고 살지? 그러려니? 그게 안되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게 누군데? 씁쓸한 입맛을 달래려 엽차를 들이킨다. 제기랄. 씁쓸한 맛이 가시지가 않는다.
광장만 있는 곳?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체험을 한다. 군대다. 적응할 수 없었던 곳. 그러려니가 최대의 미덕인 집단에서 적응하지 못한 인간. 그게 바로 나였잖아. 83은 피식, 하고 웃는다. 결국 밀실만 있는 곳이나 광장만 있는 곳, 둘 중 어느 곳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짜겠노.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오늘이라는 시간이 합쳐진 이 4차원의 세계에는 그 두 공간만이 존재하는 걸.
그렇다면 이 인간은 어떻게 결론을 내렸을까? 어쨌든 소설이니까 이렇게 좌절만 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을거란 말이지. 타고르호 라는 배를 타고 있다. 3천톤 급이면 어지간하게 적응만 하면 멀미를 하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가끔씩 멀미를 하기도 하고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고 있다. 중립국. 중립국이라고 해봤자 인도INDEA 가 아닌가. 카스트제도가 뿌리박힌 나라. 대한민국따위는 천국으로 보일 듯한 빈부격차. 그런 나라에서 완전히 새로운 광장과 밀실을 찾아가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나다를까, 이명준은 뭔가 욕구불만이라는 것을 글귀에서 풍기는 냄새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글귀들의 냄새를 맡는 능력. 글귀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는 능력. 아무래도 글귀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이상한 83이 가진 몇 안되는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상한 후각에서 지금 이 남자가 무엇 하나를 잊고 있다는 느낌을 감지했다. 그리고는 갈매기 두 마리가 나왔고, 이명준은 바다라는 광장을 선택했다.
대충 대충 읽어나간 소설 중간중간에는 연애 이야기가 끼여있다. 연애? 그도 아직까지 가슴을 아프게 하는 첫사랑이 있었고 대학 시절에는 친한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다. 첫사랑은 연애가 아니라 구애였다. 그리고 그 대답은 결국 이 기나긴 세월동안 스쳐간 수많은 여자들을 그냥 하나의 인간 중 하나로밖에 볼 수 없게 하였다. 첫사랑의 이름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조그마한 몸집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가진, 조용한 성격의 여자였단 것 빼곤.
그 동안 살아오면서 그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여자를 만나 적은 없다. 첫사랑이었던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이 식어갈수록, 그와 비슷한 다른 조건을 향한 열망은 내면 깊숙이 침잠하면서 도사리고 있었다. 깊숙히 가라앉는 그 열정은 그도 모를 방식으로 그를 침식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얼까? 결국 아무 것도 못 찾아 내서 절망했다? 그런 주제의 소설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릴 만한 글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바가 있을 것이다. 남한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북한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인도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바다를 찬양하는 건가? 죽음을? 그런데 이명준이 왜 죽었지? 왜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다라고 썼지? 죽음을 통해서 이 모든 고뇌에서 구원받는다는 건가? 그런 염세적인 작품은 아닐거다. 그럼 무엇 때문에?
... 갈매기...?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