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며칠째 단 한 줄도 적지 못하고 있다. 두 눈 앞에 커서가 깜빡깜빡- 깜빡인다. 슬럼프인가? 아니다. 다만 무언가 이야기를 풀어낼 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를 몇 번, 썼다 지웠다를 몇 십번 반복해봐도 이렇다 할만한 이야기가 나오질 않는다.
연애를 너무 오래 쉰 탓이다. 연애가 소재거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한 권의 책이 나올 수 있다. 이젠 연애를 해야 한다.
딱 1년. 헤어진 지 1년, 아니 헤어진 것 같은 날로부터 1년. 이제 고작 겨우 아직도 여전히 1년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단 말 인가. 때로는 너무 아득하고 또 때로는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져서 도대체 그 1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 1년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하는 것 같았다. 이봐, 외롭지? 라고. 그 바람의 한 손에는 늘 그렇듯 반쯤 타 들어간 담배 한 개피가 들려져 있고 표정은 아마도 다소 시니컬한 표정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바람이 내게 말을 건네는 듯 한 기분이다. 이상하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움에 몸이 들썩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다. 뭐가 겁나는 걸까.
아직도 화면에는 커서가 깜빡깜빡- 깜빡인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내뱉지 않은 채 숨을 참고 한참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나름대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다. 어느 날 갑자기 몸 둘 바를 모르게 찾아온 외로움처럼 문득 그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충동적이니만큼 자신은 없다. 결국은, 내 이야기가 아니면 쓰지 못하는 게 문제다. 내가 겪은 일이니만큼 그 누구보다 리얼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한 사람이 겪는 일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겪은 일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또, 내 이야기를 써야 한다.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끊임없이 산 꼭대기로 바위를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처럼 나는 무언가 계속해서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렇게 쏟아져 나온 결과물로써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 누군가는 여러 명이 될 수도 있고, 또 오직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렇게 또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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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쓰는 소설인지 모르겠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수필과 소설의 모호한 경계속에서
이 글은 쓰여지겠지만-
의지박약이라 또 쓰다 말았군, 이라고 혼잣말 하지 않게,
되도록이면 끝까지 써보고 싶다.
뭔가, 자꾸만 혼란스러워지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