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가 사라져 버린, 가슴의 빈 자리.
이게 뭘 의미하는 말일까, 적어도 83 그 자신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형체가 사라져 버린, 가슴의 빈 자리... 이는 나의 옛 사랑이 지나갔던 흔적을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그 얘기를 왜, 파랑한테 했지? 그 다음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지? 그러니까 네가 좀 채워달라고? 그런 미친 말을 했다가는 보통 여성이었다면 따귀가 날아왔을거다. 내가 무슨 당신 첫사랑 대용품입니까, 하고 말야.
안 그렇다면 그냥 외롭다, 미칠 듯이 외롭다. 라는 말만 하고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린다. 파랑이 이 말을 듣고 제 입으로 슬퍼서 울었다고 했다. 그 다음의 일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왜 슬퍼했을까? 단순히 텍스트 자체의 의미 때문에 감동먹어서?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적어도 그렇다고 나중에 되서 "적어도 그 말 만큼은..." 이라고 빼지는 않을거다.
역시 그녀도 이 말에 공명하는 주파수가 있다는 걸까. 더 이상 주저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용기내 뱉는 말이 실언이 된다고 해도.
"저, 쌤. 쌤은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노?"
"네?"
"그 때 술이 되가꼬 내가 아무렇게나 말을 뱉어서, 쌤이 기분 나빴다면, 내 사과할게. 미안."
"아, 아니에요. 그런거. 쌤이 저한테 얼마나 잘 해주시는데요. 언제나 전 쌤을 보면서 힘을 얻어요."
"내같은 놈을 보고?"
"글쎄요, 뭔가, 뭔가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라고 할까... 요..? "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83은 아무 말이 없다.
"저, 저기, 쌤... 호,혹시 기분 나쁘셨어요? 죄, 죄송..."
"파랑 쌤."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리는 남자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
"네...?"
"내는, 의지할 만한 기둥... 그런 과찬을 받을 사람이 아니여..."
"......"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 이 험상궃은 겉 속은 뭉개질대로 뭉개져서... 아파서...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는... 그런... 쓰레기같은 사람이여, 나는..."
누구에게도 뱉어내지 못한 말을, 평소에도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뱉어버렸다.
"형체가 사라져버린, 가슴 속의 빈 자리... 내가 그 때 와 그런 말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는... 부서져버린 채로...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을 헤메였었는지..."
파랑이 아무 말이 없다. 문득 바라보니, 그녀는 울고 있었다.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저... 파랑 쌤?"
"선생님도... 그 사람이랑 같은 말을 하시네요..."
...? 그 사람?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하며 저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줬었는데..."
"쌤..."
"그런데... 그, 그 사람은 왜? 도대체 왜...? 나, 난... 장난감이었던거야? 정말로?"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만다. 어린아이처럼. 83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한채, 멍하니, 서 있다.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