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한다. 못 한다. 살핀다.
근마가 갑자기 웃더라.
항상 뚱하던 놈이 웃었단 말이야. 나는 퍽 신기해가꼬 읽던 책을 덮었지. 다른 놈들도 그런지 근마한테 눈을 돌리더라. 근데, 근마가 웃을 때마다 그 놈의 손을 왜 자꾸 흔들어대는지 웬 종이 쪼가리들이 날리가꼬 꼭 눈발 날리는 거 같았다. 또 뭐가 그리 웃긴지, 쉬지 않고 계속 웃는거아이가. 꼭 세게 박힌 못 마냥, 종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놈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거든? 그래가꼬 녀석 근처 놈한테 말 거는 척하면서 다가갔지. 그 때 망치가 못을 ‘딱!’ 하고 세게 때렸다아이가.
「야, 은자혼. 뭐 그리 쪼개는 데?」
근마, 그니까 자혼이의 얼굴이 책상에 박힌 거지. 반에서 껄렁거리던 놈이 자혼이의 뒤통수를 휘갈겨가꼬 자혼이가 완전히 고꾸라졌다니까. 나는 자리에 돌아가가꼬 책을 피고 딴 짓 하는 척 했지. 근데, 머릿속에 책의 글자보다 껄렁거리는 근마 고함소리가 더 많이 들어오더라. 그때, 작게 자혼이가 무어라 중얼거렸거든. 자혼이가 왠진 모르지만 말소리가 무척 작았다아이가. 그다음에 한 번 더 망치가 못을 세게 때려가꼬 책상이 흔들리더니 책들을 막 토해냈데이. 왜 책상보고 토해냈냐고 카나면, 동시에 자혼이도 토했거든. 그 책은 내가 똑바로 봐서 아는 데 사탐계열이었다. 일반사회, 지리, 역사. 자혼이가 좀 많이 잘하는 과목들아이가. 신기하게 그거만 잘하지. 그 왜, 자혼이는 세계지도도 안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릴 줄 알고,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는 역대 왕조 계보를 읊는 게 가능했다아이가. 자혼이가 내한테만 해준 얘긴데 사회관련 자격증도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 책에 자혼이가 쏟아 낸 토가 뒤섞여 가꼬 다시는 못 쓰겠드라. 이건 내 생각인데. 그때 분명히 울었을 걸. 자혼이가 좀 마이 다르다아이가. 그래가꼬 또 무척 외롭고.
마지막으로 자혼이가 무어라 중얼거렸는데 아쉽지만 난 못 들었다. 그건 봤다. 껄렁거리는 망치가 또 못을 박는 거.
학기 초에 자혼이가 내 뒤에 앉았었는데, 난 소심한 A형이라가꼬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못 건다아이가. 3월 내내 친구 사귀기가 그래 힘들었는데. 웃기는 게, 남자 놈들이라가꼬 컴퓨터로 아주 쉽게 친해졌다아이가. 니도 알제? 내가 게임할 때, 완전 넋 나가버는거. 그런데 게임으로 친해진 딴 놈들하고는 다르게 자혼이는 대화로 친해졌데이. 내한테 처음으로 말을 건 거다아이가. 책을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렇다고 했지. 이제 와 생각해보는 건데 반에서 책을 읽는 건 내하고 자혼이 뿐아이가? 그 짜증나는 양판은 제외하고. 아쉽지만 자혼이하고 내하고는 분야가 달랐다. 나는 문학이고 자혼이는 사회관련 비문학 책이었지. 내가 문학이라는 부드러운 풀만 먹어대는 토끼라카면, 자혼이는 딱딱한 비문학을 한 입에 삼키는 뱀이라는 거아이가. 그 뒤로 종종 서로 뭔 책을 읽는 지 묻기도 했고, 내가 쓰는 글에 대해 평도 부탁하면서 친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준 글이 뭐였더라. 그래, 자혼이가 주인공인 글이었군. 간단하게 내용을 읊어보면 주인공 금자혼이가 껄렁거리던 놈을 짓밟는 그런 이야기였지. 그걸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뒤로 자혼이랑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아이가. 왜냐고? 거 알잖아. 내 성적 중간고사 때 떨어진 거. 어머니께서 얼마나 화나셨는지······, 어우 말도 마라. 차라리 중학교 때 공부를 못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전교 2등은 뭐 하려고 한지 모르겠다. 고등학교에서 떨어지면 말짱 꽝인데. 아무튼 공부하느라고 내 눈에 비는 게 없었다. 책도 글도 다 미루고 빌어먹을 수학문제를 풀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까운 시간이다.
그 뒤에 내가 다시 자혼이에게 관심을 가진 건, 자살소동이 일어난 뒤였지. 평소에 찝쩍거리기 좋아하는 근마가 자혼이한테 무어라 캤잖아. 그 때, 갑자기 자혼이가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캤다아이가. 아, 못 봤나? 니 우리 반 아이제 참. 암튼 애들은 놀라가꼬 자혼이를 붙잡으려고 쌩 난리였다. 근데 나는 자혼이 안 잡았다. 내 눈에는 근마 자살할 생각이 없어 보였거든. 며칠 지나니까 내 생각이 맞더라. 자혼이가 썩 많이 뛰어내리려고 해가꼬 애들이 지쳤다아이가. 결국에는 아무도 붙잡지 않아가꼬 자혼이는 그 뒤로 창문 근처에도 안가더라. 아무튼 그거 때문인지 학기말에는 완전히 애들이 자혼이 무시했다아이가. 양아치고 뭐고 없고. 그냥 내가 봤을 때 괜찮은 놈들도 자혼이 괴롭히는 있제거 . 사람 괴롭히는 게 뭐 그리 재밌는지 모르겠는데, 한마디로 장애인 취급이었다. 사람 행동 하나가 무시 못 하는 게 그 자살소동 뒤로 자혼이 옆에 아무도 없었다아이가. 밥 먹을 때도, 단체 활동 때도, 집에 갈 때도 항상 혼자더라. 밥 먹을 때는 내가 일부러 근처에 앉기도 했다. 애들 눈치 좀 보면서. 이 소심한 성격 좀 우에 하고 싶다. 빌어먹을. 내가 그 녀석을 위한 일이라고는 도서실에서 말벗이 되어주는 게 다였다. 물론, 조용히. 그걸 꼭 따져야겠나.
자혼이가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하게 된 사건은 하나 더 있다. 나는 직접 못 봤는데. 일단, 미술실 사건이라고 정의하자. 자혼이가 지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그린다고 했잖아. 그게 또 그림에도 적용 되가꼬 그렸다 하면 백 점 마았다아이가. 근데 딱하나 구십 점짜리가 있거든. 그게 왜냐면 시간이 없어가지고 다 못 그려서 칸다. 나는 종치자마자 바로 교실로 올라가서 뭔 일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나가고 난 뒤에 자혼이가 미술실 의자를 막 이리저리 던지면서 쌩 지랄발광을 떨었단다. 솔직히 내가 거 있었으면 막았겠지. 아무도 안 다쳤다는 게 신기하다.
니도 근마 미친놈으로 생각하나? 나는 우에 생각 하냐고? 당연히 아이지. 종례 끝나고 내가 자혼이가 딱 가서 물었거든 왜 던졌냐고. 솔직히 그때는 나도 자혼이가 좀 이상한 놈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어쨌든 답은 간단했다. 그 껄렁거리는 새끼가 자혼이 그림 다 배려나가꼬 그림을 빨리 못 그린거지. 생각해봐라, 자기가 잘하는 그 몇 가지가 무너질 때의 그 절망감 말이다. 근마도 남잔데. 올백 같은 거 노렸을 거 아이가.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런 걸 좋아해가꼬 자혼이 말에 납득한 거지만.
「종쳤다. 안가나?」
나는 기지개를 쭉 피며 손바닥으로 시계를 가리켰다.
「가야지. 니 이야기 솜씨하나는 끝내주네.」
내 이야기를 듣던 놈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교실을 나갔다. 내 기분도 상쾌했다. 자혼이에 대해 오해하던 사람이 한 명 사라졌다.
「이런 거라도 해야, 자혼이 얼굴을 보지.」
맨 앞자리에서 엎드린 그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오후자습이 시작되고 썰렁한 교실이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학원 가야한다며 오자를 빼버린 아이들을 어떻게 원망하랴. 우울할 때는 공부도 잘되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오후자습 1부가 끝나기 5분 남았을 때 몇몇 애들이 나타났다. 슬금슬금 걸어오는 게 꼭 기는 듯 했다. 나는 퍽 반가워서 농담을 던지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감독 선생님이 교무실로 갔다고 해서 우리는 컴퓨터 앞에 모였다. 자혼이도 한 자리 차지 했다.
게임할 때면 늘 그렇듯 시간은 금방 흘러, 오자 2부 시작종이 쳤다. 한 참 이기던 터라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애들은 둘러봤다.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이상했다. 애들이 모니터가 아닌 다른 쪽에 눈을 두었다. 나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찰나, 내 옆에 있던 교탁이 넘어졌다.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기에 다리가 책상에 깔렸다. 아프다는 느낌보다 나는 이게 왜 넘어 간지 더 궁금했다. 자혼이를 바라봤다. 의자를 이리저리 던지며 난동 부리는 녀석의 눈과 마주쳤다. 자혼이는 하던 짓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애들에게 돌렸다. 아프지 않았지만 일부러 오버하며 교실바닥을 뒹굴었다. 애들이 웃었고 분위기는 한층 나아졌다. 자혼이가 던진 의자가 책상 유리에 부딪혔다. 분위기와 함께 유리가 깨졌다. 나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자혼이가 지쳐 밖에 나가 뒤에야 나는 애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리저리 남 탓하는 애들에게 제대로 된 말을 듣기는 어려웠다. 나는 늘 그러듯이 자혼이가 피해자라고 혼자 생각했다. 파랗게 익어가는 다리보다 가슴 속 차가움이 더 쓰렸다.
담임선생님께서 올라오셨다. 우리는 유리를 치우고 책상을 똑바로 세웠다. 우리들은 담임선생님을 퍽 잘 따랐다. 첫째가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고, 둘째는 착했고, 셋째는 무척 착했다. 그 때문에 몇몇 양아치들에게는 무시당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착한 선생님도 자혼이는 어렵게 생각했다. 선생님은 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혼이 건들지 말랬잖아.」
아이들이 변명이 시작됐다. 나는 묵묵히 자혼이의 책상을 똑바로 세웠다. 쏟아져 내린 책들을 다시 서랍에 넣다가 전에 봤던 종이쪼가리들을 발견했다. 여기저기 찢기고 물─자혼이의 구토─에 젖어 무어라 적힌 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그래도 자혼이가 뭘 보고 웃었는지 꼭 알아내고 싶어 억지로 글자들을 짜 맞춰 봤다. 애들이 니 뭐하냐고 물을 때까지 나는 그 종이에 붙들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종이를 서랍 안에 넣으려는데 우연히 온전한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금자혼.
이 종이는 내가 예전에 준 자혼이가 주인공인 글이었다. 실명을 쓰는 게 영 내키지 않아서 자혼이의 성인 은을 금으로 바꾸는 장난을 쳐났었다. 기분이 오묘했다. 자혼이에게 달려가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공원은 추웠으나 사람들은 썩 많았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게 싫은 난 일부러 외진 길로 다녔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여러 가지이지만 난 아버지께서 가르쳐 준 이 길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풀이 많고 사람은 적었다. 나는 풀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새빨간 새순이 돋아다는 쇠무릎이 알렸다. 2월이면 밥상에 오른다는 신내이. 씀바귀가 표준어지만 상관없잖나. 부드럽고 은은한 붉은 빛이 도는 조선소나무를 한 바퀴 빙 둘러 지나 높다란 일본소나무의 꼭대기를 한번 바라봤다. 시선이 점점 높아지다가 하늘까지 닿았다. 뒤로 누웠다.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냥 잡초, 그냥 나무일뿐인 이들에게 나는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을 구별 지으며 개성을 주었다. 세찬 바람이 낙엽을 휘날렸다. 나무가 부끄러워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리 외진 곳에 누워 일본 소나무보다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 아버지께서 그리워하시는 시골에 살고 싶어진다. 맑고 깨끗하고 티 한 점 없는 곳. 그냥 나무, 그냥 풀 하나 없는 곳. 모두 특별하고 모두 다른 곳.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 자혼이와 함께 가고 싶다.
오늘은 휴관 일이었다. 나는 허탈해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낯익은 무표정이 날 바라봤다. 우리는 한동안 바라봤다. 아무런 말도 안하고 서로 안부를 물었다. 자혼이는 침묵에 익숙했으나 나는 아니었다.
「도서관 왔나?」
당연한 걸 묻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자혼이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나는 자혼이 목소리가 작다는 걸 알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니·······」
「어? 내가 뭐?」
자혼이에게 한 번 더 말해 달라 일렀다.
「니 보러 왔다.」
이번엔 또렷하게 들렸다.
「왜?」
내가 도서관 다닌다는 걸 언젠가 말했었나보다.
「미안해서.」
자혼이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뭐가?」
「니 글. 배렸다아이가.」
자혼이의 목소리는 어눌했지만 명확했다.
「난 또 뭐라고. 내 글을 배렸나. 글을 적은 종이를 배렸지.」
나는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자혼이도 내 발에 맞춰 따라왔다. 외진 길로 들어가려 했으나 자혼이의 집에서 멀어지기에 북적거리는 곳으로 갔다. 거기도 풀과 나무과 있으니 상관없었다. 자혼이는 내가 설명하는 풀들에 대해 퍽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나는 기분 좋아 술술 말을 토해냈다.
「니 사과하려고 이까지 온 거가?」
조선소나무와 일본소나무의 차이점을 말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자혼이의 눈이 총기를 잃었다.
「뭘 받아? 내가 뭐 잘못했나?」
나는 말을 내뱉고는 후회했다. 내가 자혼이에게 잘못하게 얼마나 많은데. 자혼이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발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나는 따라가 잡았다.
「미안. 미안하데이. 비겁해서 미안. 그래도 무서운 걸 어떡하는데.」
내가 나직이 사과했다. 자혼이는 고개를 흔들며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아니 않았겠지. 자혼이는 길을 따라 쭉 달렸다. 나도 자혼이를 등지고 달렸다. 자혼이가 괴롭힘 당하는 걸 난 막지 못했다. 못했다? 정말 못한 걸까. 아니면 안할 걸까.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가 그 뒤를 잇고, 바닥에 처박히는 둔탁한 소리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사람들이 나를 스쳐 그리로 모였다. 나는 뒤돌아서서 차도를 바라봤다. 친구가 차에 치였다.
'달려가야지. 그래야지. 친구아이가.'
두려움의 뿌리가 내 발목을 잡아 놓지 않았다.
'아니 안 할란다. 치사하게 사과도 안 받아주는 놈 아이가.'
가슴이 뜨거웠고 손은 떨렸다.
'안하기는 개뿔. 못하는 거지. 가서 할 게 없잖아. 돕지 못하는 거아이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단지 살필 뿐이었다. 자혼이가 살았는지 누가 신고는 했는지. 살필 뿐이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했다. 애들은 여전했다. 교실 전체를 둘러봤으나 자혼이는 없었다.
「얘들아, 현박이가 입원했데.」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었다. 현박이란 자혼이를 괴롭히는 껄렁거리는 놈의 이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침 조회마다 하는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는 나갔다. 자혼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다른 애들 역시 자혼이는 관심 없는 지 껄렁거리는 놈 얘기만 해댔다.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가슴에 맺힌 덩어리가 녹아 흘렀다.
「니 왜 우는데?」
짝이 물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그런다.」
내가 말했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