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딱딱한 글이구요 그래도 유쾌한 문장을 좀 넣었으니 아주 지루하게는 읽힐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3이 쓴 소설이니 감안해서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빈익빈 부익부 -
시작은 싱가포르였다. 한당이 독재하는 형태의 조그만 소국가에서 이정책을 밀고 나가는것은 아주 쉬웠다. 그리고 국가 청렴도 최상위권의 정부로서 국민의 절대적인 믿음을 받고 있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쉬웠다.
그들은 적극적인 기업가,부자들 옹호정책을 통과 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약간의 공익에 대한 의무를 지게하였는데, 이를테면 '버는 수입의 몇퍼센트는 나라에 특별세금으로 추가로 내야하며 또 몇퍼센트는 자선단체 기부,소외계층을 돕는일등 공익을 위한일에 의무적으로 써야만한다.'이런 식이었다. 이에 대한 반대여론은 정부에서 재갈을 물려 신문에도 텔레비젼에서도 볼수없었고 이 법들이 실행되므로 인해 표면적인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굳이 얻어 맞으면서 재갈을 입에서 빼내려는 자는 없었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움직임에 세계는 잠시 관심을 보였으나 싱가포르는 주로 운송업,관광업등으로 먹고사는 서울보다도 조그마한 고소득 도시국가일 뿐이었고 세계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빠르게 잊혀져 갔다.
원인은 또있었다. 2010년 이래 빌게이츠, 워런버핏등은 대기업가들의 기부문화 확산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여왔다. 그들의 어마어마한 기부액수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으며 이는 점점 확산되어 이제 기업의 수익 5%이하를 기부하면 여론의 공격을 받는 이기주의 기업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고 부자들은 죽을때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게 미덕이었다. 대기업의 사회환원을 통해 조금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그들의 기부운동은 대성공이었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 항상 그렇듯이 이흐름은 미래에 사회 교과서에 굵은글씨로 나올만큼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당시에는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수 없었고 이 일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그들의 정책을 점진적으로 강화해갔다. 여러 신문에서는 이와 관련된 기사가 실리기도 했으나 "싱가포르가 전세계적인 기부문화의 확산 와중에 이 문화를 아예 법적으로 정해놓으려 한다"는 제목의 새로 확산돼는 기부문화에 초점을 둔 기사였고, 싱가포르는 이를 강조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몇몇 기업가들은 이 신문기사를 보고 싱가포르의 정책을 곰곰히 따져보았다.
그들은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명분아래 특권을 주고 보호해준다. 그렇다, 애초에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 이부분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추가한 명분일 뿐이었고 '특권을 주고 보호해준다.' 이부분이 정책의 주요 내용이다. 즉 다른 나라에서나 싱가포르에서나 똑같이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특권을 가지고 더욱 이윤을 늘릴수있다!
이러한 자명한 사실을 그 짤막한 기사들을 보고 눈치챈 자가 몇있었다. 그들은 싱가포르에 지부를 두고 여기에 자본을 집중하거나 생산공장을 두는등 싱가포르의 정책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돈이 더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매출 5% 상승' 따위의 수치로 직접 나타났다. 그들은 그곳에 더많은 자본을 집중하였고 그들보다 조금 덜 눈치 빨랐던 자들도 뒤늦게 합세하고 또 돈이 싱가포르에 집중돼고 그다음에는 이들보다 더 눈치가 없었던 자들이 합세하고... 이런식이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오랜시간에 걸쳐 나타났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 자본의 집중이 슬슬 직접 눈에 띌 즈음이었다.
뒤늦게 아랍국가 몇이 싱가포르가 자기네 정책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익을 꿰뚫어 보았고 그들은 싱가포르의 이 친 기득권적 정책을 자기네 나라에 들여왔다.
그제서야 세계는 잘못 판단한 기자들의 기사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던 세계정세 에서 눈을 돌려 조그만 이 도시국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대부분은 이 정책을 마구 헐뜯었다. 정글 자본주의의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을 주는 이 정책들은 경제 공황이라면 진절머리가 나있는 21세기에는 아주 좋은 비난거리 였다. 각국의 대통령,수상들의 친 기득권 정책의 단점과 과거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대공황을 언급하는 기사들이 마구 실려댔지만 정작 싱가포르와 사우디아라비아,그리고 이란등의 정책실행국가의 국내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모두 반독재 또는 독재 정권이 나라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엔의 압박이 가해졌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세계의 맹렬한 공격으로부터 버팀으로서 들어오는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고 또 그돈으로 로비가 행해지고 언론을 사들이고 하여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질 뿐이었다. 결국 네덜란드를 필두로 몇개 국가가 유엔등의 눈치를 보며 슬쩍 싱가포르를 최우선으로 참고하여 그 법들을 베껴 자기네 나라에 들여왔다. 세계 각국에서 찬반 대결이 거세졌다. 하지만 승리자는 찬성쪽이었다. 반대쪽이 명분을 내세운것은 고작 기회의 평등, 양극화현상의 우려 등의 고상한 이유였지만 찬성하는 자들이 내세운것은 당장 눈으로 볼수있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가난한자들에 대한 기부와 도움이었다.
결국 가난한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이 대거 항복하였다. 아프리카 소국가들,남아메리카의 브라질,중동에 추가로 몇개국가 더... 동남아시아...이쯤되자 최강대국인 미국에서도 법의 개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반대론이 굉장히 거셌다. 미국 정치인들은 반대론자들에게 소위 '현대판 록펠러' 나 '현대판 부르주아' 등으로 몰려 자기의 지지와 인기를 모두 잃을 생각은 없었으므로 당분간 미국은 항복하지 않을것이었다. 결국 이 친 기득권 정책을 들여온 나라들은 네덜란드,스위스를 빼고는 전부다 독재정권,아니면 후진국 등이었다. 아직까지 대세는 반대였다.
친 기득권 정책들을 들여온 국가들에서 텔레비젼에 기부문화의 성공적인 완성을 자랑하는 공익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활동을 통해 정부는 깨끗한돈이던 검은 돈이던 기업가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이는 또 포퓰리즘 정책의 밑바탕이 되었다. 일찍히 아리스토텔리스는 포퓰리즘 정책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민주주의를 비하했다. 그의 말이 어느정도 맞아들었다.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놓는 정부들의 지지율은 하루게 다르게 올라갔다.아무래도 '현대판 록펠러' 들의 승리였다. 이제는 영국,호주,터키 등이 이 행렬에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대세는 다시 정해졌다.
이젠 미국도 중요한 선택을 해야했다. 이젠 미국내에서도 찬반론이 거셌다. 반대론이 우세한것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진보당의 이 젊은 대통령은 대세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미국도 항복해버린 것이다.
그렇다. 대세는 다시 정해졌다.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입장을 같이했다.캐나다,멕시코,일본,한국등등... 이 흐름은 더이상 되돌릴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인류는 이제 색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들 했다.그러나 아직 항복 안한 나라들도 있었다. 중국도 그중에 한 나라였다. 10년 넘게 미국과 첨예한 대립을 하고있던 중국은 이 새로운 물결을 탈 생각이 없었다. 독재정권의 힘으로 자기네 정책을 과감히 밀고 나갔던 싱가포르처럼 정부의 힘이 강력하기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정부는 이 새로운 물결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직접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것이다. 이 성명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이것이다."우리는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 정책에 반대하며..." 중국의 막강한 영향권에 있던 싱가포르는 중국을 따라갔다. 아니 중국의 압박에 못이긴것이다. 싱가포르의 배신으로 세계는 깜짝 놀랐다. 싱가포르 처럼 중국의 영향권 내에 있던 나라들도 있었다. 이런 나라들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 미국에 영향권 내에 있기는 했지만 반미정권이 들어서 있었고 국민들이 이 빈익빈 부익부 정책을 보는 시각은 그닥 곱지 않았다. 갑자기 한국은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일본은 우왕좌왕 하다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갑작스러운 동아시아의 이탈로 인해 이제 세계는 다시한번 들썩이기 시작했다. 세계는 일단 냉정을 되찾았다. 중국등은 이 빈익빈 부익부 정책을 마구 헐뜯고 비난하며 좋은점 뿐만 아니라 나쁜점도 있다는것을 확실히 세계에 알려주고 있었다.
세계는 또다시 찬성과 반대로 나눠졌다.하지만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싱가포르가 반대로 간것이 찬성쪽에는 치명적이었고 찬성과 반대의 대립은 나라와 나라들의 대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각자의 논리도 더 발전되었다. 그리고 찬성쪽의 정책또한 초기와는 달리 구체화 되고 많은 부분에서 보완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찬성의 의견은 이랬다: 이 기업의 복지 의무화 정책은 자본주의의 색다른 완성이다. 아직 과도기에 있지만 연구를 통해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할수 있을것이다.
반대의 의견은 이랬다: 이 빈익빈 부익부 정책은 과거 정글 자본주의의 약자들의 지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정책이 완성되고 나면 우리는 경제대공황을 하루에 한번꼴로 맞을것이다.
분명히 입장을 표명하지 않던 대부분의 나라들은 반대로 돌아섰다. 베트남,쿠바,덴마크,인도...대부분 개발도상국 이었다. 프랑스는 처음부터 반대의 의견이 대세였다. 국민들이 이 정책을 상당히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세계는 두개로 갈라졌다. 돈과 직접 관련된 것이어서 그런지 중립은 없었다. 반대 아니면 찬성 적 아니면 아군이었다. 대립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러시아 만이 애매한 중립을 지키고있었다. 정부의 마음은 찬성이었지만 옛날 공산주의의 수장으로서 미국과 대립했던 나라여서 그런지 찬성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대립이 점점 심해졌지만 전쟁의 위협등은 전혀 없었다. 있을수가 없었다. 유럽만 해도 국경을 맞댄 수많은 나라들이 갈갈이 찢어져 있었다. 프랑스는 서남쪽(스페인)과 동쪽(독일) 북쪽(영국)으로 찬성인 나라들에 둘러쌓여 있었고 영국은 동쪽으로 덴마크 노르웨이등 반대권의 북유럽 나라들과 남쪽으로 반대인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스위스는 반대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이처럼 이 정책으로 인한 대립을 빌미로 사소한 분쟁이라도 나면 전세계 모든곳이 전쟁터가 될터였다. 아프리카도 갈갈이 찢어졌고 남아메리카도 갈갈이 찢어졌고 아시아도 갈갈이 찢어졌다.
각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매체를 통해 학자들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중의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싸움도 공산주의가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지면서 자본주의가 승리했습니다. 이번 싸움도 스스로 무너지는 쪽이 패배할것입니다. 아마 국민의 반발이 그 패배의 원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학자는 반대진영이었다. 마지막 말도 찬성진영의 나라들은 서민들, 즉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정책을 반대하여 무너질 것이란걸 돌려말한 것이었다.
이 사람은 훌륭한 예언가였다.
예언가의 불행은 자신의 예언이 반만 들어맞았다는데에 있었다.
양 진영의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사소한 충돌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치열한 외교 공방전과 티비광고의 5/1을 차지하는 공익광고가 그 싸움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어느것이 옳은가 ? 그 어떤 사람도 명쾌한 해답을 내주지 못했다. 결국 역사는 스스로 승자의 손을 들어줬다. 양쪽다 전세계 사람을 합리적으로 설득할수 있는 선구자가 없으므로 인해 대중들은 더 단순하고 알기 쉬우며 더 달콤한 논리를 내세우는 쪽을 선택한것이다. 그랬다. 결국 이전과 똑같은 이유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 정책이 승리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라면 돈의 유혹이었다. 아무래도 돈이 많은쪽은 미국이 속하며 친 기득권 정책을 펴는 쪽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도화선은 끝까지 중립을 지키려고 하던 러시아 였다. 러시아의 국민들은 대부분 빈익빈 부익부 정책을 지지했고 쉽게 결정을 못내리고 갈팡질팡하는 정부앞에서 싫증이 나버렸다. 그 결과 마치 공산혁명과도 같은 조그만 혁명이 일어나면서 (성격은 정반대지만) 찬성 진영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번에 대세를 결정하는것은 러시아였다. 서로 러시아를 끌어드리려고 하던 미국은 쾌재를 불렀고 중국은 러시아를 마구 비난했다. 중국 신문에는 커다란 곰의 손이 강제로 머리를 돌려 큼지막한 달러 문양이 새겨진 구덩이에 쳐박는 만평이 실렸다. 물론 이것은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러시아 국민들이 건전한 중립국가를 타락시켜 버렸다고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가 등을 돌린것이 그렇게 심각하게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계기로 중국에서도 친 찬성파 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그들을 마구 잡아들여 고문하고 배후를 캐내며 뿌리를 뽑기위해 애를 썼다. 결국 국민의 성원에 못이겨 개도국 몇국이 항복 하였다. 반대파 진영에는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찬성파는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고있는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것을 그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알고있었다. 그들은 설마 그들이 이념싸움의 패배자였던 공산주의의 뒤를 따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 안하려고 했다. 설마...
하지만 설마가 사람잡는다.
다시금 이 정책에 항복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번에는 진행이 빨랐다. 위기감을 느낀그들은 애써 태연한척을 하려했고 위기가 겉으로 드러나자 강하게 부정했고 그다음은 발악했으며 그다음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 허무하게 말이다. 빈익빈 부익부 정책의 승리였다. 아니 이제 빈익빈 부익부 정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신 수정자본주의" 이것이 이제 공식명칭이었다. 지금이 신 수정자본주의의 시대라면 이제 찬성진영과 반대진영의 대립할때의 상황은 자본주의의 냉전시대라고 불렸다. 미래의 학생들은 냉전과 자본주의의 냉전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외워야 하는 불쌍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시스템은 잘 굴러갔다. 빈익빈 부익부는 커녕 적어도 선진국에서의 빈곤층은 감소 추세를 보였다. 자, 인류는 한단계 더 발전한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와 프랑스 혁명을 통해 민주 사회로 ! 산업 혁명을 통해 산업 사회로 ! 통신혁명을 통해 정보화 사회로! 그리고 이번에는 자본주의 혁명을 통해 인류 평등의 사회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의 승리였다.
세계는 활기를 띄고있었다. 긍정적인 풍조가 도처에 만연했다.
자그럼 냉정을 되찾아 인류의 역사를 또 되짚어보자. 전제정치를 추구하던 로마. 로마가 멸망하자 서유럽 세계에는 암흑 중세시대가 왔다. 그들은 위대한 로마문명과 이념을을 르네상스로 되찾을때까지 미개하다고 할수밖에 없게 살았다. 인간은 항상 발전하는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이번의 사회 개혁은 발전이었는가 후퇴였는가. 그들은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했다. - 인류는 스스로 무엇이 더 나은지 판단하지 못했으며 대중들은 숭고한 이념과 합리적인 논리를 따라간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을 따라갔다는것을.
결과를 보기위해서는 조금더 지켜봐야 했다.
역사의 그다음 흐름을 결정지은것은 '기부 의무화 정책' 보다는 사실 '빈익빈 부익부' 정책이 더 맞는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시스템이 건전할때는 괜찮았지만 부패가 발목을 잡았다. 한세대가 지나자 예전의 이상에 차있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내겠다는 기업가들은 모두 어디로갔는지 탐욕스러운 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그들은 시스템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속으로부터 시스템은 무너졌다. 하지만 이룬지 얼마되지도 않은, 아직까지는 새로운 체제를 벌써부터 다시 무너뜨릴 만큼 인간은 선견지명이 없었다. 새로운 세대들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고 스스로 깨치면서 어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있는 현 체제의 모순을 차츰 깨달았다.
결국 어떤 멍청한 기업은 정부의 감시망에 그들의 부패를 보이고 말았다.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기업과 줄줄이 검은돈으로 이어져있는 수많은 기업들이 빨려 들고 말았다. 미국의 여러 대기업 뿐만아니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같이 빨려들어간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세계는 들썩였다. 모두가 들고 일어섰다. 그들을 처벌하라, 이런일이 더이상 없게하라 부패의 고리를 끊어라, 부패한 자들을 더 찾아내라 ! 마침내는 법이 개정되었다. 모두 그것으로 만족했다. 더이상 이전과 같은 일은 일어날수 없는 단호하고 빠른 정책수정 이었고 더 많은 자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가고 막대한 벌금을 물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과격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체제의 모순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혁명을 일으킬 필요성을 약간 느꼈다. 아직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여기서 조금 성격이 다른 자들이 또하나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중국의 무정부 주의자들. 과격하기 짝이없는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과 꿈에 부푼 이들은 다소 폭력적인 시위를 벌이게 된다. 진행은 꽤나 거칠게 이루어 졌지만 특별히 일으킨 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찍어 내렸다. 성격은 전혀 달랐지만 정부에게 현 체제에 반감이 있다는것에 공통점이 있던 '과격파' 들은 그들에게 연대감을 느꼈고 현체제에 대한 경멸이 솟아났다.
이제 이들에게 명분과 뚜렷한 목적만 생긴다면 들고 일어설 여지가 충분해졌다. 하지만 혁명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무정부 주의자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던 사람중에서 미국에 '로버트 웰치' 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동시에 과격파이기도 했다. 어느날 그는 공산주의에 관한 책을 보게된다. 그는 그 책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공산주의의 모순과 패배에 대한 책들도 읽게된다. 그는 수정 자본주의가 있었듯이 수정 공산주의가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정부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는 그런것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상에 불타는 청년이었다. 그는 수완이 뛰어났다. 금방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감화 시키고 자기 주변의 과격파들에게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공산주의는 예전에 패배해버린 모순에 가득차고 실패한 과거의 유물이란것도 잘알았다. 기성세대가 기억하는 공산주의란 독재자들이 판치는 가난한 나라들의 이념이었다는것도 잘 알았다. 그랬기에 그는 무정부 주의자들 처럼 마구 들고 일어나 과격한 시위를 벌이진 않았다. 현실은 현실이고 이상은 이상이었다.
젊은 과격파들은 두갈래로 나뉘어 졌다. 웰치에게 매력을 느낀 자들과 그저 현실의 모순에 염증을 느끼고 탈선한 자들. 이제 과격파들은 공공연히 대부분의 사람이 존재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중 대부분은 젊지도 않았다. 이제 그들은 30~40대가 되어 있었다. 탈선한 자들중에 음악적 천재성을 가지고 있어 대 스타가 된 자가 있었다. 그는 우연히 웰치와 만나게 되었다. 웰치의 뜨거운 열변을 들으면서 그는 젊은시절의 뜨거운 이상이 다시 불타오름을 느꼈다. 혁명은 천재 한사람가지고는 쉽게 일으킬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이제 웰치의 과격파들은 잘생기고 인맥이 넓고 돈도많은 대스타의 지원사격을 받게 되었다. 또한 그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도 똑똑한 엘리트 였고 이상과 현실을 구별할줄 알았다.
또한사람. 이자는 과격파는 아니었다. 한국의 성공한 기업가였고 기성세대 였다. 하지만 그는 부패한 기업가들의 현실에 그 자신도 염증을 느꼈다. 그는 기억했다. 예전에는 우리의 체제가 빈익빈 부익부 체제라고 불리던 시절을. 그런데 지금 진짜로 빈익빈 부익부가 실현되고 있는 현실을 그는 꿰뚫어 보았다. 그도 우연찮게 미국의 젊은 과격파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는 이들에게 당장 매료되었다. 자 이제 그들은 거대한 대기업의 지원도 업게 되었다. 이 선견지명을 가진 세사람의 콤비는 환상이었다. 뛰어난 리더. 뛰어난 지휘관.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뭍으로 나왔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문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누구나 알수있었다. 수많은 이상에 불타는 청춘들, 깨어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들게 되었다.
그들은 빈익빈 부익부 정책을 증오 했다.
미국은 혁명이 일어나기 힘든 사회구조와 법률을 가지고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그때 즈음에는 정부도 기업들도 완전히 썩어있었다. 빈익빈 부익부 정책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혁명을 일으킬 명분도 힘도 돈도 충분했다. 혁명이다! 두번째 공산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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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성공했다. 혁명 세력들이 먼저 착수한 일은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었다. 마치 예전의 eu 처럼 세계를 좀더 단단하게 하나로 묶었다. 무력으로 합병시킨 나라도 많았다. 어쨌든 그들은 성공했다. 그들의 혜안은 이상을 성공적으로 현실로 옮기었다. 모순이 발견되면 즉시 수정할줄 알았다.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고 마침내 세계에 평화와 안정이 찾아왔을때는 첫번째 혁명 세대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간지 오래였다.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돌아갔다. 세계는 힘차게 발전해나갔다. 놀라울 정도로. 이렇게 인류는 한걸음 아니 세걸음을 한번에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빈익빈 부익부 정책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과학도 힘차게 발견해나갔다. 남극에서 새로운 종의 '바퀴벌레'가 발견되었다. 생물학계는 또다른 놀라운 발견에 축배를 들었다. 사람들은 그 옛날 싱가포르의 지도자가 새로운 결심을 했을때처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순전히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인류의 역사는 계속 흘러갔다. 아무도 미래가 어떨지 몰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