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란 인간은 참으로 이기적인 놈인 것 같습니다.
카운슬러는 깍지 낀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한쪽 엄지를 빙글빙글 돌려댔다.
그렇다고 느낀 적이 언제였죠?
피상담자는 한숨을 내시고는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결단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당직을 서고 휴식을 취할 새도 없이 사로 통제관으로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슴팍에서 전화 벨소리가 빗발치는 것이 무척 거슬렸습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라서 전화를 안 받은 것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바빠서 전화를 받고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번호가 저장되지 않은 간부의 전화는 아닐까 걱정되긴 했지만 계속 전화가 와서 결국에는 전화 배터리를 떼어내 무시해버렸습니다.
카운슬러는 서두가 긴 것이 따분하긴 했지만 최대한 점잖은 표정을 유지했다.
훈련이 끝나고 폰을 켤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러다 도중에 일어나 폰을 켜보니 정체불명의 전화는 생각보다 많이 왔었습니다. '부재중 전화'란 빨간 글씨가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 번호로부터 온 문자 한통이 너무 끔찍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카운슬러는 찻잔을 들려는 자신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그 땐 제가 번호 이동을 한지 얼마 안 된 터라 전에 주인의 연락처에서 수시로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래서 번지수를 잘못 찾은 비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의 지인들이 보낸 전화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아무튼 ‘사람이 죽었다고 장난칠 사람은 없겠지’하고 떨리는 손으로 그 정체불명의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 순간 카운슬러의 전화에서 진동음이 퍼졌다.
카운슬러는 전화 받기를 주저했다. ‘전화를 받는 것은 피상담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란 철칙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철칙을 지키기 위해 전화를 서랍장에 집어넣었다.
전화 받으십시오.
아뇨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전화 한 이야길 계속하시죠.
그렇게 해서 전화를 해보니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 목소리는 울음이 뒤섞여 내가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가고 제 불안감은 극으로 치닿았습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셔서. 누구신지?
재성아. 안 좋은 소식을 보내서 미안하다.
제 이름을 듣는 순간 전 생각했습니다. 불안이 곧 현실이 되었구나.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질없이 현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전화번호가 바꿔서 그러는데 누구 전화신지?
나야, 민서야. 막막한 생각에 전화했어.
제 이름을 들었을 땐 제 아버지가 돌아가실 줄 알았지만 민서란 이름을 들었을 땐 민서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그런데 참 웃긴 것은.
피상담자는 콧구멍에서 어울리지 않게 거친 바람소리가 났다.
웃기게도 무척이나 속이, 속이 아주 시원했습니다. 아! 오해하시진 마십시오. 제 말은 민서아버지가 죽은 게 후련한 게 아니라 제 아버지가 아니 죽은 게 엄청나게 후련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 제 자신이 무척이나,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카운슬러는 간헐적인 피상담자의 미소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날뻔도 했지만 애써 고상한 외향을 고수했다.
일종의 죄책감이군요.
죄책감이라기보다는.
그는 어떤 단어를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들 앞에 있는 찻잔은 서로를 마주보며 천장을 향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지만 그 둘은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카운슬러는 그 어색한 시간을 인내하고 인내했다. 몇 분 후 피상담자의 입에서 드디어 찾기 어려웠던 단어가 나왔다.
배신감입니다.
피상담자는 다시 처음처럼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민서랑은 매우 친한 친구였습니다. 고1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함께 등하교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3년을 꼭 붙어 놀았습니다. 종종 녀석의 집에 놀러가기도 했는데 민서의 아버지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끔씩 등굣길에 민서아버지가 학교까지 태워주기도 했었고. 아무튼 녀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개월 전에 녀석은 전역을 했다면서 대뜸 전화를 했었습니다. 전역을 할라치면 1년은 더 있어야할 녀석이 전역을 한다니깐 이게 뭔 일인가 의아했었습니다. 전방에서 통신소대에 있던 녀석은 호기롭게 농담까지 했습니다. 전방에서 가설하다가 삐삐선으로 북한군 하나를 목 졸라 죽였다고.
그 농담이 아직도 우스운지 피상담자는 픽 웃어보였다.
민서가 전역했다는 소리에 얼마지나지 않아 휴가 때 보기로 했습니다. 민서뿐만 아니라 같은 친구들 몇 명을 더 보태서 5명 정도? 그동안 묵혀놓은 이야기도 많겠다, 갑작스런 전역의 배후도 궁금하겠다, 만나자마자 술자리에서 회포를 풀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아련한 이야기와 이십대 들어서 생긴 녹록치 않은 사회생활 이야기가 한데 섞여 말 그대로 안주가 없어도 전혀 문제없는 술자리였습니다. 그래도 당연 화제는 민서의 전역이었습니다. 어떻게 상병이 되자마자 전역을 했냐고. 저도 군 생활을 하고 있지만 민서와 같은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전역한 게 맞느냐고?
아버지 때문이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술도 잘 않던 녀석이 처음부터 급히 마셔되는 꼴이 의아하긴 했는데 전역도 했겠다,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고해서 기분이 좋은가 보구나 했습니다. 근데 1시간도 못 채우고 녀석은 정신을 못 차리더니 결국에는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습니다. 기분 좋게 술 마시고 주접이라니. 친구들과 저는 어이가 없었는데, 녀석은 모든 건 다 잃은 사람마냥 말했습니다. 자신이 왜 전역을 1년씩이나 빨리 했는지. 아버지는 녀석이 상병을 달았을 즈음 쓰러졌고 그 시작은 일반병실도 아닌 중환자실이었답니다. 한국에서 암을 가장 잘 고친다는 병원까지 갔고, 그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살아날 가망은 제로였다고. 사실 민서의 어머니도 죽었습니다. 그것도 민서가 기억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나이 때. 자살 때문이었습니다. 민서는 아마 관심병사 내지는 주요 관리대상병사였을 겁니다. 병사의 부모가 자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쪽 간부들은 민서를 아마 시한폭탄처럼 여겼을 겁니다. 그러다 친구 중에 부사관인 제가 있으니깐 민서의 이것저것을 캐낼 심산으로 그 쪽 간부가 저에게 전화를 했는데, 같은 간부라서 그런지, 아니면 민서 친구라서 당연히 알 거라고 믿었는지, 어머니의 자살사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사실을 알고 나니 밝고 명량하게만 보였던 민서의 모습에서 왜 은근히 그늘지고 건조한 느낌이 들었는 지 그제서야 납득이 갔습니다.
피상담자는 드디어 차를 한모금 삼켰다.
일련의 이유로 소속부대에선 그를 특별히 전역시켜 준 것으로 보입니다. 녀석은 그 술판에서 아버지의 시한부와 자신의 막막함을 처절하게 토로했습니다. 우린 그 술자리를 얼른 파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시늉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 좋은 자리에 민서가 울어되니 그것대로 고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서가 어떻게 집으로 갔는 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카운슬러도 차를 한모금 삼켰다.
말짱한 녀석들끼리 2차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민서 이야기가 거의 반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서 철없는 말인데 그때 현역인 친구 한 놈은 민서가 부럽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시한부 인생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그게 잘 맞아떨어져 전역까지 했다면 그것만큼은 행운이라고. 우리는 기를 쓰고 그 놈에게 욕지껄이를 내뱉었지만 무의식으론 긍정을 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는 순간 갑자기 그 술자리 때가 생각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과연 인간인가? 민서의 아버지의 죽음에 오히려 우리 아버지가 아님을 감사해하고 있다니. 마치 제 자신이 초라하고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카운슬러는 그동안 굳게 잠긴 깍지를 풀었다. 그는 볼펜을 집어 들어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아마 이내 해야 할 말들의 요점을 적당한 단어로 변환해 적은 모양이다. 다 적고나서 경쾌하게 볼펜을 툭 놓았다.
사람은 모두다 교육을 받고 자라죠. 가령 착해야한다, 부지런해야한다, 진실하여야한다 등등. 그런 식의 교육을 철저히 받고 자라왔죠. 하지만 그런 교육이 없더라도 사람은 얼마든지 선의와 근면 혹은 정직 등을 가슴 속에서 반복해서 되새기죠. 왜냐하면 양심 때문입니다. 양심은 모두에게 타고난 하나의 헌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모든 법은 바로 양심에서 비롯됩니다. 재성씨의 생각이 어땠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건 단순히 제가 심리학을 전공했거나 상담기법을 연구해서가 아닙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고, 우리 둘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번뇌이기 때문입니다.
카운슬러는 피상담자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피상담자는 책상 혹은 찻잔만을 바라봤다.
번뇌는 죄책감에서 비롯되고, 죄책감은 양심에서 비롯되죠. 그래서 지극히 단순한 문제입니다. 재성씨가 느낀 건 단순한 죄책감에 그친 것일 뿐, 자신에 대한 배신감으로 부풀릴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을 탓할 것이라면 차라리 자신의 양심을 탓하세요. 조물주의 묘로 생겨난 원치도 않는 양심 말입니다.
피상담자의 눈은 초점을 잃고 희미해져가는 것만 같았다.
그 단적인 이야기만으로 저는 당신이 진실로 고뇌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하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재성씨가 매우 철저한 사람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피상담자의 눈은 비로소 생기를 되찾고 카운슬러의 얼굴로 향했다. 카운슬러는 피상담자의 신상서를 슬며시 보고는 다시 말했다.
예전 교육기간의 성적이 상당히 좋더군요. 뭐, 그건 둘째치더라도 교육기간엔 내무생활에서 옥의티가 있기 마련인데 재성씨는 완벽합니다. 아무리 타고난 군인이라도 상벌점제에서 자유롭지 못할텐데 재성씨는 그 흔한 벌점 하나 없습니다. 재성씨가 완벽한 게 아니라면 조교나 교관들이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다면평가에서 동기들이 재성씨를 평가하기론 '정이 많다, 어려운 일은 먼저 나선다, 부탁 잘들어 줌, OK맨' 등등을 적어줬구요.
카운슬러는 신상서를 내려놓으면서 피상담자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시계를 보았다.
양심의 가책에 쉽게 괴로워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선의에 대해 유별나게 집착하죠. 남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이미지를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신봉하기도 하구요. 그런 사람들은 남들을 무척 의식하기도 합니다. 예절이라든가 격식이라든가 아니면 정말 형식적인 부분에도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가령 부조금은 꼭 얼마를 내야한다, 이런 자리에는 이런 옷을 꼭 입어야한다, 그런 것 말입니다. 그것들을 지키지 못할 때면 무례를 저질렀다고 쉽게 생각하죠. 사실은 별것도 아닌 건데도 말이죠.
피상담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운슬러는 피상담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외향에서 풍겨지는 철두철미함. 군인 대상으로 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카운슬러는 피상담자 말고도 철두철미한 사람을 자주 보곤 했다.
자신에게 혹독한 가수들은 노래를 부를 때 미묘한 반음 실수를 엄청난 잘못을 여긴답니다. 하지만 노래를 듣고 있는 관객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죠. 오히려 저 가수가 노래를 잘 부르다가도 갑자기 얼굴이 붉게 타오르는 걸 의아해 할 뿐입니다. 친구 아버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해야한다’라고 생각하는 건 제가 봤을 땐 '재성씨의 기준'이 라고 생각합니다만, 문제는 재성씨는 그것을 '남들의 기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리고 재성씨 아버지의 죽음인 줄로만 알았던 문자가 알고보니 친구 분 아버지의 비보였죠. 슬픔에서 안도로 감정이 역전 되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입니다. 어쩌면 재성씨는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었을테지만 안도감이 오히려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수도 있는 것이죠.
카운슬러는 아주 그럴듯한 비유에 스스로 흡족하며 자신의 찻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하지만 피상담자의 얼굴이 변화가 없음을 깨닫자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카운슬러는 낙담했다. 생각보다 상담이 길어 질 것만 같았다. 사실 상담을 하면서 이런 경우도 있다. 아무리 전공을 했다지만 사람의 심리를 개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조차 상당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그마저도 이해했다손치더라도 처방이 안된다면 결국엔 실패다. 철저한 연구와 실험 속에서 확률은 확신으로, 혼돈은 질서로 정립시킨 그 많은 이론들이 때론 정말 무색무취의 화학물질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카운슬러는 이런 경우 때마다 찾아오는 텁텁한 회의감에 눈언저리가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그리고 동시에 책상 아래서 들려오는 전화의 진동을 느꼈다. 그는 애써 무시했다. 그는 상담자로 하여금 항상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 내지는 당신의 말에 열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철칙이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했다. 가령 절대 발을 꼬지 않는다, 손은 깍지를 끼고 턱을 받치거나 배 위에 올린다, 피상담자의 말을 메모하더라도 그의 눈을 응시한다, 등등 말이다. 피상담자는 다시 말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자궁경부암 때문이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자궁경부암은 생각보다 완치율이 높은 암이라고. 수술 후 통원도 하고 몸조리도 잘 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술 후 1년만에 재발하였고 그것도 악성으로 진행된 상태라 1년 전이 차라리 고마울 지경이었습니다.
카운슬러는 다시 몰입했다. 학창시절과 같은 20대 이전의 기억이 인간의 나머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피상담자 내면을 결정지을 단서를 거침없이 간파하고 그에 딱 떨어지는 해석과 처방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재발 후 몇 개월만에 돌아가셨을 때 정말 저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그 정도? 눈물조차 한 방울 나지 않았고, 도리어 후련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큰 짐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카운슬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앞의 사정을 듣고 싶군요.
사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부터 어머니는 의식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절 거의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고 가끔은 이상한 말도 중얼거렸습니다. 침대에서 이불을 반쯤 덮은 채로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를 반복했습니다. 그 힘겨운 숨은 보는 사람조차도 힘겹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란 걸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날 아침이었죠. 그런데 그날따라 어머니가 무척 마음에 걸리더군요. 아버지도 어머니의 손을 맞잡고 힘을 내라며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붉은 눈으로 말이죠. 저는 애써 피했습니다.
재성아, 오늘은 학교 가지 말래?
오늘 리코더 실기 시험 있어. 갔다 올게.
엄마 손 좀 잡아줘라.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 저는 그 가냘프고 메말라서 잿빛으로 변해버린 팔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숨조차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마지막 힘을 다해 들어 올린 손을 보셨습니까? 이건 전쟁영화가 아닙니다.
카운슬러는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매만지며 아무 말 없었다.
저는 어머니가 절 바라보는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신발을 도로 벗고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튼 입술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나왔습니다.
엄마 갔다 올게.
그렇게 전 학교로 갔죠. 아마 보리밭인가? 그 노래를 리코더로 연주했을 겁니다. 그 좋은 노래를 보기 좋게 망쳤죠.
책상 아래로 또다시 전화의 진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카운슬러는 서랍을 열어 폰을 확인도 않고 배터리를 빼냈다.
계속하시죠.
우리 반에서 저랑 한 아이 빼고 전부다 합격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기분이 꿀꿀했습니다. 민서와 함께 하교하면서 다소 용기내서 물어봤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그때 까지만 해도 민서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걸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민서는 기억도 안날 나이에 어머니가 자살로 돌아가셨죠. 민서는 있지도 않을 기억을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무척 슬펐다.
녀석과 헤어지고 15분 남짓을 걸어가면 저희 집이 나옵니다. 저는 어머니 생각에 복잡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머니에 있는 십 원짜리 동전이 손에 걸리더군요. 그런데 저도 참…….
피상담자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카운슬러는 자신이 다리를 꼬고 있는 것도 망각한 채 입을 열었다.
뭔 일이 있었던 거죠?
아니 그게, 제가 하늘과 함께 내기를 하고 있지 뭡니까?
카운슬러는 무슨 말인지 몰라 ‘예?’라고 들릴 듯 말듯 내뱉었다.
저도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습니다. 동전을 튕겨 하늘에게 일방적으로 내기를 건 것입니다. 코인드랍이라고 합니까? 만약에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어머니는 오래오래 살고,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죽는다고.
카운슬러도 어이가 없어 덩달아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몰라 얼굴이 애매해졌다.
정말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튕겼습니다. 손을 맞잡고 안에 있을 동전을 확인하기가 무서웠습니다. 허, 이것 참 말하기가 부끄럽네, 이런 내 모습을. 사람 목숨, 그것도 어머니의 목숨을 그딴 동전으로 결정짓다니.
아닙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모두 비밀입니다. 수치스러울 것도 없으며, 그저 재성씨 내면을 알고자하는 작은 단서일 뿐입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 실례지만 담배 한 대 펴도 되겠습니까?
그거 좋습니다.
각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담배를 각자 깊숙이 빨아당겼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습니까? 아, 그래 동전. 동전을 맞잡던 손을 들고 실눈으로 천천히 동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앞면이지 뭡니까? 정말 어머니가 훌훌 털고 일어난 걸 실제로 본 것 마냥 기뻤습니다. 철없는 내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우스운 게 왠지 다시 한 번 더 도박을 걸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설사 이번에는 뒷면이 나오더라도 앞 판이 본 게임이므로 무를 수 없다, 뭐 그런 것 있잖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도 앞면이 나왔습니다. 싱글벙글하면서 던지고, 또 던졌는데 말 그대로 4번 연속으로 앞면이 나오지 뭡니까?
피상담자는 다시 그 때로 돌아간 듯 마냥 웃고 있었다. 카운슬러는 담배를 깊게 빨아 댕기고는 아무 말 없었다.
집에 도착하면 마치 어머니는 예전 모습 그대로로 바꿨을 것이라 믿었지만 집에 가보니 누런 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지팡이 하나와 상복 3벌이 있었습니다. 바뀐 건 없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맞잡은 손을 펼 때 손모가지를 돌려서 편 모양입니다.
카운슬러는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그런데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때 제 자신을. 저는 민서가 말한 슬픔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관문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문을 열고나서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그리고 눈물을 얼마나 흘러야 하는지. 하지만 도저히 몰랐습니다. 연극배우가 대사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아마 그런 표정일까? 그런 배우가 커튼이 걷히는 걸 두려워하듯 저도 현관문을 여는 게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피상담자는 눈으로 들어가는 담배연기를 참으며 담배를 껐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언제 만들었는지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병풍과 진한 향냄새, 그리고 염불소리가 작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전 현관문을 열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역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당연히 맞닥뜨리는 일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런 제 자신이 부끄러워 방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죠. 억지로 눈물을 쥐어짰죠. 그때 그 비참함이란…….
담배 연기로 뿌옇게 흐려진 방안이 점점 밝아졌다.
저는 항상 그때의 마음이 제 마음속에 맴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날 이후로 늘 사람들에게 온정으로 대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건 냉정함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의무적으로 온정 베풀고 남의 일을 정말로 걱정해주기도 하고 손수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하지만 늘 제 자신을 의심했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그 사람을 위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겉으로는 그러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동작에 불가하진 않는가? 언젠가 친구들이 죽으면 나는 정말 그 죽음을 슬퍼하고 뜨겁게 울어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말입니다.
카운슬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갑갑했다. 피상담자와 마주하며 메모했던 글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였다. 카운슬러는 상담자로서 절대 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자세, 즉 팔짱으로 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고 있던 동심원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두서없이 말하다보면 그것들이 조각조각 꿰맞춰 하나의 그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재성씨, 달리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남들도 과연 재성씨를 진심으로 슬퍼하고 위하고 있을까? 제 말은 재성씨 주변사람을 의심하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보편적으로 모두가 자신의 슬픔을 우선순위로 둔다고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모두가 성자일 수 없고 자비로울 수 없습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전쟁터가 있고, 그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게 사람입니다. 자신을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카운슬러는 에멜무지로 내뱉은 말이 말 그대로 표면적인 부분만 다룰 뿐, 피상담자의 내면을 향해 내리꽂은 결정타가 아니었다.
절 충분히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을 만나서 사랑을 할 때도 뭔가 모르게 이게 정말 사랑일까 의심되기도 했습니다. 처음만나 호감이 갔지만 이 호감이 진짜 사랑일까, 그런 의심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 쉽게 권태로웠습니다. 이런 걸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크게 상처를 받거나 성장기 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곧잘 사랑을 느끼는 것 자체가 마비되곤 하죠. 재성씨는 그런 경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자신이 상대방에게 갖는 긍정적인 감정, 뭐 사랑이나 우정, 신뢰 같은 게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무의미하게 치부해버리는 현상은 있죠. 이 분야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이야깁니다. 생각보다 그런 사람은 많죠. 다만 재성씨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이렇다라고 말씀드리기가 힘든 점이 있죠.
이제 카운슬러가 담배를 물었다.
저도 예전에 전공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무슨 신화 같기도 하고, 전설 같기도 한데, 뭐 교수가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 일수도 있죠. 옛날 어느 왕국에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왕비가 죽었죠. 왕은 왕비의 죽음에 너무나 낙담했습니다.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죠.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평정을 되찾고 웃기도 하고 유희를 즐기고 만찬을 맛있게 먹기도 했죠. 그는 깨달았습니다. 결국 영원한 배필이었던 왕비도 그저 타인에 불가하며, 자신의 죽음 말고는 슬퍼할 일이 전혀 없다는 것도. 그가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책망하며 국정을 돌보지 않고 타락하기 시작하자 신하들은 그를 몰아냈습니다. 한순간에 궁정 밖으로 쫓겨나 들판에 나앉아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흐느꼈습니다. 결국 자신의 비참함에만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느 노인이 다가왔죠.
무엇이 그리도 슬픈 것인가? 인간은 평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낼 수 없으며 동시에 타인의 슬픔을 동정할 수도 없소.
아내가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는 것이 어찌 사람됨이오!
당신이 그녀를 사랑한 것은 사실이오. 당신 내면은 오직 당신만 알 수 있으니깐. 하지만 그녀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건 당신 추측일 뿐이오. 그녀의 내면은 오직 그녀만 알 수 있으니깐.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건 서로의 추측일 뿐이며 더 나아가 서로의 마음은 알고자 하는 것은 환상에 불가하오.
카운슬러는 담배를 껐다.
진정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 신뢰, 우정, 그리고 동정. 이 모든 것은 언어에 불가합니다. 감정을 지칭하는 언어는 너무나 추상적입니다. 그것을 시각화 시킬 수 있나요? 있다고 칩시다. 가령 사랑은 하트표? 우정은 어깨동무? 신뢰는 악수? 그렇다면 동정이나 슬픔은? 그렇죠, 눈물이 좋겠군요.
피상담자는 생기가 풀린 눈으로 카운슬러의 책상을 응시했다.
그저 언어에 불가합니다. 그런 표식이나 시각화조차도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언어일 뿐이죠. 우리는 그것을 그저 일방으로 느낄 뿐 ‘다른 사람은 어떨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까의 이야기처럼 하나의 환상일 뿐입니다. 재성씨는 재성씨 본인에 대한 환상에 갖혀 있다고 말하면 좀 서운할까요?
피상담자는 책상을 응시하던 눈을 조용히 들어 카운슬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피상담자는 내뱉은 말을 한동안 매듭짓지 못했다.
그렇다면…….
카운슬러는 다시 말하는 피상담자의 눈빛을 억지로 피했다.
그렇다면, 지금 상담하시면서 선생님도 저의 말에 그 어떤 동정이나 감정을 느끼지 않고 계셨습니까?
카운슬러는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카운슬러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방안은 조용해졌다. 적막이 한동안 감돌았다.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네들은 이제 아무 말이 없다. 그 적막은 피상담자의 의자가 바닥에 마찰되면서 나는 날카로운 소리에 깨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의자에서 일어선 그는 카운슬러에게 고개를 숙였다. 카운슬러 역시 일어서 인사했다.
카운슬러는 문을 조용히 닫고 담배를 물었다. 커튼을 걷혀 창밖을 바라보았다. 군용 지프 쪽으로 다가간 피상담자는 그 안에 있던 상관에게 경례를 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프 안으로 들어간 피상담자의 모습이 이상하게 작아만 보였다.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연병장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위병소를 통과하자마자 예상처럼 헌병대 장교가 문을 열어젖혔다.
선생님, 상담은 어땠습니까?
아, 네. 별거 없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습니다.
그 친구 관련해서 이번에 군단에서 말이 많은데, 아마 군단 인사참모가 먼저 올 것 같습니다. 그 전에 저희 쪽에 먼저……
네, 그러시죠. 그 때 그 누구죠? 아무튼 그 전에 온 사람이 올 건가요?
네, 그 분이 올 겁니다. 그 전에 오늘 상담 내용 좀.
말씀은 해드리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별 의미는 없을 겁니다. 원래 이 분야가 이렇거든요.
카운슬러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4시 10분. 그는 이제 퇴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섬주섬 챙겼다.
아, 전화.
그는 퇴근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다 끝냈다. 문을 닫고 경쾌하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꺼진 전화를 켰다. 부재중 전화가 이미 많이 왔다.
사람 둘 상담했다가 전화가 폭발하겠군.
그는 모르는 번호에서 온 전화가 군단 인사참모 혹은 그 아래쪽에 뻗은 수많은 가지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면서 피상담자의 신상서를 핸들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부재중 전화를 향해 통화버튼을 눌렸다.
퇴근이십니까?
위병이 카운슬러에게 묻자 카운슬러는 고개만 끄덕였다.
출입증 반납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내 정신 좀 봐.
카운슬러는 한손으로는 신호음이 가고 있는 전화를, 또다른 한손은 출입증을 찾아댔다. 출입증은 좀처럼 보이지 않자 카운슬러의 이마에 땀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화에서 신호음이 사라졌다.
아, 인사참모님이시죠? 김재성 하사랑 면담중이라 전화를 못했습니다. 사실 이렇다 할 건 없습니다. 여보세요? 듣고 계십니까?
혹시 이준호 상담관님 전화 번호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만.
순간 카운슬러는 인사참모의 전화가 아님을 깨달았다.
전에 XX사단의 이철호 일병 기억하십니까?
순간 카운슬러의 머리속은 깜깜해졌다. 그리고 창문 너머의 위병이 말했다.
출입증 찾으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시면 차를 옆으로 좀 빼주시겠습니까?
아예, 물론 기억하죠. 잠시만요, 출입증이 여기 있을텐데.
카운슬러는 백미러 뒤로 보이는 퇴근차량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차량의 행렬 이후 자신이 위병소를 통과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는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퇴근을 위한 그동안의 조바심에 나머지 한손만 바빠졌다
여기다 뒀는데 그것 참 안 보이네. 그나저나 이철호 일병는 차도가 보이는지요?
자살사하였습니다.
순간 깜깜하기만 했던 카운슬러의 머리 속은 하얗게 변했다. 백미러의 차량들로 아득해지고, 위병의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출입증이 안 보이시면 제가 상황실에 연락 후 통과....
사단 법무장교와 만나셔서 이야기 하실 것도 있고해서 제가 전화를...
카운슬러는 점점 희미해지는 모든 것들과 함께 자신도 증발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피상담자가 말했던 그 모든 감정들이. 카운슬러의 차는 한동안 나아가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