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수영의 고민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나연은 잠깐 쉬려고 도서관을 나왔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데 도서관 앞에 있는 잔디밭에 수영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수영은 그 곳에 앉아서 자수를 놓고 있었다. 나연은 그 곳으로 걸어갔다. 누군가 자신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 수영은 고개를 들었다. 나연 누나였다.
“또 수 놓냐?”
“누나도 한 번 배워 볼래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됐어. 난 그런 일엔 관심 없어.”
“그럼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갈래요?”
“햄버거?”
“예.”
“니가 사는 거라면 같이 가 주지.”
“당연히 제가 사야죠.”
수영은 자수를 옆에 놓았던 가방안에 넣은 후 일어났다.
나연과 수영은 햄버거 가게로 왔다. 2층 건물이었는데 1층엔 사람이 꽉 차 있었다. 둘은 불고기 버거 세트를 주문했고 주문한 것이 나오자 그것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창가쪽에 있는 자리가 비어 있어서 둘은 그 곳으로 가서 앉았다.
“그래, 넌 정말 의사 될 생각은 조금도 없는 거냐?”
나연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의학엔 흥미 없어요. 누난 의사 되고 싶어서 의대에 온 거에요?”
“그럼 의사 되고 싶으니까 의대생 됐지. 안 그러면 뭐 하러 의대에 와?”
“누난 훌륭한 의사가 될 거에요.”
“너한테 그런 소리 들어도 하나도 안 반가워.”
들은 세트 메뉴를 다 먹은 후 그것을 치우고는 1층으로 내려가려고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연이 먼저 계단을 밟고 내려갔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계단이 그렇게 높지 않은 곳이어서 크게 다치치는 않았지만 입고 있던 청바지의 오른쪽 무릎 부분이 찢겨졌고 그 곳에서 조금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수영이 놀라서 뛰어 내려왔다.
“누나, 괜찮아요?”
“괜찮아.”
“누나, 근데 피 나요.”
수영은 피가 나고 있는 나연이의 오른쪽 무릎을 가리키더니 기절해 버렸다. 나연은 어이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라고 수영이의 얼굴을 살짝 때려 보았지만 수영은 요지 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연은 수영을 업고 햄버거 가게를 나와서는 길 건너 편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병실에 누워 있던 수영이 깨어났다. 수영의 옆에는 나연이가 앉아 있었다. 나연은 한심하다는 듯이 수영을 보고 있었다.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다친 건 난데 왜 니가 기절해?”
“전 피가 제일 무서운 걸요.”
“너 그래 가지고 6년간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겠냐?”
“저도 그래서 걱정이에요.”
“어휴, 속 터져.”
의사가 들어왔다.
“깨어났으니까 그만 가 봐도 돼요.”
의사의 말에 나연과 수영은 병원을 나왔다. 나연은 오른쪽 다친 무릎에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근데 지금 몇 시냐?”
나연이의 말에 수영은 왼손에 찬 손목 시계를 보았다.
“5시 좀 넘었는데요.”
“뭐? 너 때문에 늦었잖아?”
나연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늦다뇨?”
“병원에 가야 한단 말이야.”
“병원요? 어디 아파요?”
“아픈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청소해야 해.”
“예?”
수영은 나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널 만나고부터 하나도 되는 일이 없어.”
나연은 전속력으로 달려 학교 도서관에 들러 가지고는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는 나와서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6시까지 자애병원에 도착해야 하는 나연은 6시 10분에야 도착해서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에도 나연은 늦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온 상태라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었다.
“넌 며칠이나 지났다고 지각하는 거야?”
한 원장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큰... 큰 아버지...”
나연은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병원에선 원장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했잖아?”
한 원장의 나연이의 말을 잘랐다.
“저기요. 원장 선생님. 전 늦고 싶어서 늦은 게 아니라고요. 그 수영인가 뭔가 하는 녀석 때문에... 아 근데 수영이라고 알아요? ”
한 원장도 수영이라면 박 회장한테 얘기를 들어서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알아. 근데 그 애가 어쨌다는 거야?”
“걔랑 같이 햄버거 먹으러 갔다가 다 먹고 나오는데 그만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가지고 제가 좀 다쳤거든요. 근데 그 녀석이 내 무릎에서 피 좀 나는 거 보더니 기절해 버리는 거 있죠? 제가 병원까지 업고 가서 지금까지 깨어나길 기다리다가 깨어나자 마자 온 거라고요.”
한 원장은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는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못 마땅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변명은 그만하고 그만 가서 청소나 해. 오늘은 늦은 벌로 30분 더 연장이야.”
“변명이라뇨? 사실이라니까요. 수영이 그 녀석한테 전화 해 보면 지금이라도 알 수 있을 거에요? 제가 전화 해 드릴까요?”
“됐으니까 가서 청소나 해.”
“자꾸 이렇게 날 부려먹으면 큰아버지...아니 원장선생님은 나중에 후회할 거에요. 저 복수할 거라고요.”
“복수하는 건 안 말리는데 하려면 좀 제대로 해라. 너처럼 덤벙대다간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이미 다 들통날 테니까.”
“절 그렇게 만만하게 보다간 나중에 큰 코 다칠 거라고요. 두고 보세요. 반드시 이 병원은 내가 다 접수할 테니까.”
나연은 말을 마치고는 청소를 하려고 원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수영은 나연이 갑자기 떠나자 집으로 돌아왔다. 6시에 수업이 한 과목 있긴 했지만 수영은수업을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유진이의 집에선 유진이 희연이랑 같이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희연이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유진이 크게 웃었다. 희연은 유진이한테 최근에 나연이가 한 원장의 계획에 걸린 일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나연이한텐 비밀로 해야 돼. 안 그러면 큰아버지 계획은 다 탄로나니까.”
“알았어. 근데 니 큰아버지가 나연이 정말 좋아하긴 좋아하나 보다. 그렇게까지 하는 거 보면...”
벨이 울렸다. 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받으러 갔다.
“저 수영이에요.”
희연은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 주었다.
“누구야?”
유진이 물었다.
“수영이.”
“수영이? 7시까지 수업 있다고 했는데.”
유진은 의아해 했다.
수영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나 와 있었군요.”
“넌 7시까지 수업 있다고 하지 않았냐?”
유진이 물었다.
“듣고 싶은 생각 없어서 그냥 왔어요. 전 그만 올라갈게요.”
수영은 계단을 오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온 수영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그깟 피 좀 봤다고 기절을 하다니 나연 누나의 말이 아니라도 역시 자신한테 의사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수영의 고민은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