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박회장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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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폰이 울렸다. 박 회장은 수화기를 들었다.
“회장님, 유진 도련님 오셨는데요.”
“응, 들어오라고 해. 그리고 쟈스민 차 두 잔 내 오고.”
“예.”
유진은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기 앉아라.”
박 회장은 중앙에 놓인 소파를 가리켰다. 유진이 그 곳에 가 앉자 조금 후 박 회장도 그 곳으로 와 앉았다. 비서가 노크를 한 후 들어와서 쟈스민차를 두 사람 앞에 내려 놓았다. 유진이 잔을 들어 차를 조금 마시더니 다시 탁자에 내려놓았다.
“근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거에요?”
“너한테 부탁이 있어.”
“부탁이요?”
유진은 의아해 했다. 여태까지 아버지가 자신한테 부탁 같은 것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아버지의 눈 밖에 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유진이가 아니었다.
“응. 백화점을 하나 지을 생각인데 니가 그 일을 해 줬으면 해서... 내 회사는 니가 물려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전 회사 물려 받고 싶은 생각 없는데요. 그런 일이라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게... 전 글 쓰고 싶어요.”
“도대체 글을 써서 어쩌겠다는 거야?”
방금 전까지 부드러웠던 박 회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무튼 전 아버지 회사 물려받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런 얘기라면 전 그만 가 보도록 할게요.”
유진은 일어나서 회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유진이 나가자 박 회장은 화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박 회장이 유진한테 자신의 회사를 물려주려고 하는 이유는 유진이 자신의 아들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박 회장은 유진의 따뜻한 마음을 높이 사고 있었다. 유진은 자신과는 다르게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다. 그리고 박 회장은 앞으로는 인간적인 경영을 하는 회사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전혀 몰라주고 있었다. 박 회장은 화난 마음을 조금 진정 시킨 후 희연이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희연이 밖에 없었다.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던 희연은 책상위에 올려 놓은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자 번호를 확인하더니 급히 열람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유진이의 아버지인 박 회장이었다.
“예, 아버님.”
“희연이, 너 언제 시간 되니?”
“저야, 아무 때나 시간 괜찮아요.”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야외 사격장이나 한 번 가자. 너한테 할 얘기도 있고 하니까.”
“예. 아버님.”
“그럼 끊으마.”
“예.”
희연도 전화를 끊고 다시 공부를 하러 열람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진은 금하건설 빌딩을 나오려다가 안내데스크에서 마리가 안내 여직원하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유진은 그 곳으로 가 보았다.
“글쎄, 약속을 잡지 않았으면 회장님을 만나 뵐 수 없다니까요. 회장님은 바쁘신 분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유진이 안내 여직원한테 물었다. 마리는 이런 곳에서 유진이를 보게 되어 조금 놀랐다.
안내 여직원은 유진이한테 인사를 하고 대답했다.
“이 분이 자꾸 회장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억지를 부려서요.”
“아버지를요?”
“아버지라니?”
마리는 유진이의 말에 무척 놀랐다. 유진이 금하건설 회장 아들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를 왜 만나려고 하는 거야?”
유진이 물었다.
마리는 작년까지 금하 건설이 바다의 집 보육원을 재정 지원해 준 일과 현재 보육원의 열악한 사정 때문에 다시 한 번 재정 지원을 부탁해 보려고 왔다고 했다. 유진은 마리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다. 그런 일이라면 자신이 나서서 도와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재정 지원을 해 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사회 시설에 재정지원을 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다 기업 이미지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얼마 안 가서 재정 지원을 했던 곳의 지원을 다 끊어 버렸다.
“만나게 해 줄 수 있어?”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유진은 흔쾌히 마리를 데리고 3층에 있는 회장실로 올라갔다. 노크를 한 후 유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박 회장은 유진이 옆에 아리따운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구냐?”
박 회장이 유진한테 물었다.
“희연이 친군데요. 아버지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요.”
“희연이 친구라고? 희연이 친구가 나한테 무슨 할 얘기가 있다는 거야?”
“안녕하세요.”
마리는 박 회장한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말을 이었다.
“전 춘천에 있는 바다의 집이라는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작년까지 해 주셨던 재정 지원을 다시 해 주었으면 하고 부탁 드리러 왔습니다.”
그 곳이라면 박 회장도 잘 알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어떡하고 아가씨처럼 어린 사람이 왔어?”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셨다고?”
“예. 일주일 전에요. 그래서 제가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마리가 대견해 보였다. 그래서 도와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회사 일을 감정만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도와 주실 수 있지 않나요?”
유진이 아버지를 재촉했다.
“넌 회사를 물려 받을 생각이 없으면 회사 일에 관여하지 말아.”
박 회장의 소리를 높였다. 조금 후 박 회장은 다시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가씨 제안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하지만 도와 준다고 확답을 할 수는 없네.”
“감사합니다.”
마리는 생각을 해 봐 준다는 것으로 기뻤다. 그녀는 박 회장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유진이와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유진과 희연은 금하 건설 빌딩을 나왔다.
“난 집에 갈 건데. 넌?”
유진이 물었다.
“보육원에 내려가 봐야 해.” “희연이라도 보고 가지 그래? 희연이가 너 보면 좋아할텐테.”
“아냐. 다음에 보지. 그럼 갈게.”
“응.”
유진과 마리는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