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칼을 쓰는 줄 아나? 칼은 말야 인간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도구거든. 인간은 죽기
죽기 직전에 본성을 나타내지. 나는 말야 그 인간의 본성이 너무 보기 좋아. 절망에 찬 눈빛에 살려달라
고 애걸복걸 해달라는 그 표정. 정말 맘에 들어. 인간은 정말 재밌는 동물이야. 킥킥킥."
사람은 사람에 의해 사람 때문에 죽는다.
그것이 이 사회의 어둠 속 현실이다.
[인간이 가장 크게 느끼는 고통이 두가지 있다. 첫째는 말을 하지 못하는 고통, 그리고 둘째는 외로움이다. 고독과 무언은 그 누구도 견딜수 없는 크나큰 고통이다.]
하늘에서 처다보았을 때. 산 속의 동물들이 뛰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가 날라다니고 먹이
를 찾아 코를 땅에 박으며 킁킁 거리는 멧돼지도 볼 수 있다.
산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산을 지나쳐 와 바람을 더 시원하게 느낄 수 있다. 왜 그럴까? 그건 아
직 난 모르겠다.
하늘엔 둥실둥실 새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있고 푸른 색 하늘이 이 곳을 감싸 안고 있다. 나는 그 하늘
아래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서윤아..... 흑흑..... 제발....."
"......"
"엄마를...... 엄마를 위해 한번만 ......"
나는 아직도 어제의 일이 생각난다. 미친 아줌마를 볼때 마다 짜증나기도 하지만 '서윤' 이라는 여자 애
도 내 머리속에 맴돈다. 먼지 하나 없지만 여전히 계속 닦으라는 미친 아줌마의 불 호령으로 쓸데없이
바닦을 닦고 있지만 머리 속에는 어제 그 일만 떠오를 뿐이다.
햇살이 창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닦고있는 바닦에 햇살이 동그랗게 맺혔다. 나는 그곳을 닦았
다. 쓸데없는 일이다.
시계를 보았다. 지금이 8시쯤 되었다. 다리조차 거동하기 힘든 나는 요즘들어 눈이 차츰차츰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냥 먼지 낀 것이라고 생각고 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예전엔 학교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시간이다. 그립다. 먼지가 흩
날리는 학교에 조그만한 가방을 어깨에 매고 오른손엔 실내화 가방을 들고 옆에는 친구와 함께 학교에
등교하는 것, 교실에 도착하면 가방을 옆에 걸어 놓고 뒤를 돌아 친구들과 어제 했던 얘기, 오늘 아침에
등교하다 겪은 얘기를 한다. 수업이 시작하면 선생님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 선생님 말씀에 하나 하나 새
겨 듣고 점심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 하듯이 미친듯이 급식실로 뛰쳐 나갈때.....
머릿 속 환상이 그려지며 아른하게 지나갔다.
창문 틈에 햇살과 함께 바람이 들어왔다. 피부에 닿을 때 간지러웠다. 오른 팔을 긁고 다시 바닦을 닦았
다. 그때 계단 위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미친 아줌마다.
"오늘 중요한 만남 있으니깐 갔다올때 까지 이 집 청소 다 해놔! 만약 먼지 한톨이라도 있으면 오늘 각오
해라!"
지랄같은 말을 남기고 미친 아줌마는 현관문을 세게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혼자다.
지금 나 혼자 있다. 일주일 마다 한번씩 꼭 금요일에 나는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아줌마 오는 시간은 한
2시간 후 니깐 그래도 여유 시간은 남는다.
바닦을 다 닦고 식탁으로 가서 퐁퐁을 짜고 솔에 묻혀서 식탁을 박박 닦았다. 어제 누가 먹었는지 몰라
정말 드럽게 먹었다. 밥풀이 솔에 득실득실 살고 있다. 솔을 물에 씻고 행주로 비눗물만 닦았다. 그래도
오늘은 모두들 아침은 안 먹어서 설거지 할 일은 없다. 아 맨날 이런 날이었으면......
2층으로 올라갔다. 다리가 거의 없는채로 올라가려니 너무 힘들었다. 걸레를 들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서
윤의 방이 눈에 띄였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학교도 갔겠다 나는 방에 들어갔다.
방은 여자애 방 치고는 더러웠다. 어지럽혀져 있는 책상, 대충 개놓은 이불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가지.
순간 남자의 방에 들어온 줄 알았다.
나는 혀를 차며 옷을 차곡 차곡 개고 이불도 가지런히 해 놓고 책상을 정리했다.
그런데
툭.
나의 팔꿈치에 뭔가 부딪히며 노트가 떨어졌다. 나는 그 노트를 펴보았다.
'오늘은 그래도 혀가 뒤로 밀리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지만 답답하다. 말하고 싶어 나도..... 미친듯이
소리치며 친구들과 수다 떨고 싶어...... 외로워.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아. 외로워. 정말 외로워. 슬퍼.
나 어떻해? 엄마 나 오늘도 외로워 말하고 싶어. 정말......"
나처럼..... 나처럼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눈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밑에 또 뭔가가 적혀있어서 마저 읽었다.
'그 남자애...... 1달이 지났는데도 말을 못해서 이름도 못 물어봤는데...... 그애 정말 불쌍해. 엄마 그만
괴롭혀. 불쌍해...... 그애......'
손등에 물이 툭툭 떨어졌다. 나는 그 노트를 접고 제자리에 꽂고 걸레를 들고 방을 나왔다. 눈물을 옷 소
매로 대충 닦고 복도를 청소를 했다. 먼지가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닦았다. 그 방을 지나가고 나는 꺼억
꺼억 하며 눈물을 훔치며 복도를 닦고 있다.
푹!
"으윽! 왜.... 왜 그러세요?"
"키야~. 이 피! 그래! 난 이 붉은색이 좋아. 키키키키"
"워...원하는게 뭐에요?"
"원하는거? 원하는 건 없어"
"그럼 왜....?'
"단지."
"너의 그 본능의 표정을 보고 싶을 뿐이야 키키키키."
"뭐..뭐라고?'
"인간은 정말 재미있는 동물이야. 죽음에 다가올수록 발버둥 치는 모습이 개보다도 못한 거 같아."
"이 미친놈...."
"내가 왜 칼을 쓰는 줄 아나? 칼은 말야 인간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도구거든. 인간은 죽기
죽기 직전에 본성을 나타내지. 나는 말야 그 인간의 본성이 너무 보기 좋아. 절망에 찬 눈빛에 살려달라
고 애걸복걸 해달라는 그 표정. 정말 맘에 들어. 인간은 정말 재밌는 동물이야. 킥킥킥."
푹! 푹!
"끄아아아아아아악!!!!"
......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링!
......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링!
......
띠리리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리리링!
자꾸 자는데 뭔가 소리가 들려온다.
뭔소리지?
띠리리리리리리리리링!
전화왔다! 그런데..... 나는 말을 못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청소를 다하고 미친 아줌마도 대충 넘어가
고 한숨 눈좀 부치고 있는데 그 달콤함이 사라져 버렸다.
달칵.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미친 아줌마 목소리였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뭔가 심각한 목소리였다.
"뭐라고요! 지금 그곳이 어디에요!"
응?
뭐지?
심각한 일이 벌어진것 같다.
타타타타탁!
타타타타탁!
"헉헉..... 여보!!"
남자는 온 몸에 구멍이 뚫린 채 가쁜 숨을 몰아내쉬고 있다 인공 호흡기로 무리인 듯 숨을 내뱉는 것도
아니고 들이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여자는 남자를 안을려고 했다.
의사가 가로 막았다.
"안됩니다!"
의사는 남자의 몸에 소독제를 발랐다. 남자의 경기는 더욱 더 심화되고 있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숨
을 헐떡이고 있었다.
"여보......"
여자와 그녀의 딸 서윤은 눈물을 흘리며 여자의 남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상처가 깊었다. 칼에 깊숙히 찔린 듯 피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간호사들은 남자의
팔을 꽉 잡고 의사는 약을 바르며 마취제를 투여 하려고 있다. 여자와 서윤은 눈물을 흘리며 그 지옥같
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이대론 안되요! 이러다 과다출혈로 죽겠습니다! 피가 너무 많이 흘렸어요."
"의사의 일은 환자를 살리는 일이야! 어서 꽉 잡기나 해."
남자는 몸을 더욱 더 미친듯이 떨고 있었다. 남자의 몸이 점점 파래지고 차가워 지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
"........아....."
"........."
"김수현...... 과다출혈로..... 사망."
......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어? 오늘따라 유난히 밝던 별이 흐릿해 지기 시작했다.
창문 밖에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다.
바람이 오늘따라 더욱 더 차갑게 느껴진다.
고립과 무언 3화 끝
4화에 계속
by 궁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