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자신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던 강철이 눈을 떳다.
무엇엔가 강렬한 충격에 몸이 튕겨져 나갔던 기억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이승인가 저승인가’
몸을 조금 움직여 보았지만,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에 모든 기운이 빠져 나가버린 느낌이었고,
자신이 살아있기나 한 것인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주변을 살펴보니 그의 몸은 반듯한 돌판 위에 놓여져 있었고, 바닥은 마치 돌침대처럼 따뜻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반듯이 누워있던 강철의 눈 앞에보이는 천정의 모습은 수정처럼 반짝이는 돌들이 장식처럼 무수히 여기저기 박혀 있었고, 파랗고, 노랗고, 빨간 색들이 어울어진 은은한 빛을 뿜어 어렴풋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몸의 여러 부분이 따끔 거리며 아픈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분명 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는가 하는 새로운 의문에 휩싸였다. 보이는 것만으로 상상해 볼 때, 예전에 봐 왔던 침식동굴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넓은 공간이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석순의 모습이 간혹 눈에 띄였다.
어디선가 아득한 정적을 꿰고 물방울 덜어지는 소리가 수도승의 목탁소리처럼 맑게 들려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군가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다 놓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강철이 아는 세상에는 이런 기막힌 우연이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철이 조금 들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를 어지럽히다가, 어느순간 의식이 멀어졌다. 아득한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온몸이 불덩이에 휩싸이는 강렬한 열기를 느끼며 눈이 떠졌다.
시야는 흐려서 사물의 분간이 어려웠지만, 백발의 노인이 강철의 단전위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주문을 외우는 듯한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뼈마디 마디가 뒤틀리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숨 쉬기조차 버거웠다. 단전에서 부터 시작된 뜨거운 열기는 차츰 머리쪽으로 옮겨지면서 머릿속은 불덩이 속에 던져진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찍이 격어보지 못했던 끔직한 고통으로 강철은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백발의 노인이 손을 거두자 잠시 후 강철의 몸이 떠오르며 몸에서 밝은 빛이 쏫아져 나왔다. 형용할 수 없는 기운들이 그의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골격이 새로 맞춰지고, 오색의 영롱한 기운들이 몸을 감쌌다. 천천히 강철의 몸이 다시 바닥에 놓여졋다.
노인은 강철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전의 도인에 이미지와는 다르게 피부며 머리카락등이 생기를 잃고 있었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듯 초최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얼마 후, 강철이 다시금 깨어나 몸을 일으켰을땐, 그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을 알았다. 마치 구름위에라도 올라탈 수 있을 것만도 같은 가벼움 이었다. 또한, 몸 구석구석이 투명한 기운으로 용솟음 치고 있었고, 머리속은 어찌나 맑은지 두 눈을 통해 보이는 동굴 내부가 어두침침한데도 불구하고 입체적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강철은 자신의 눈이 다른 무언가로 바뀐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더욱이 머릿속에서는 알 수 없는 문자의 구절들이 소용돌이 치며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깨어났느냐?”
자신의 변화를 살피느라 정신이 팔려있어 그 존재감을 잊고있던 강철은 흠짓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바라다본 곳에는 백발에 긴 머리와 긴 수염에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엇다.
"저를 구해주신 분이신군요." 강철은 감격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만신창이의 네 몸을 본래대로 고치고, 내게 남은 마지막 생명의 기운까지 네게 넘겨 주었느니라"
강철은 그 말을 통해서 자신의 몸이 변화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게 되었다.
"생면부지인 제게 어찌 이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요"
강철이 살아왔던 세상사를 되짚어보면 어덯게 이런 은혜를 입게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몸을 온전히 살려 준 것 만으로도 대단한 은공 이건만 본인의 기운까지 희생하였다고 하니 믿기질 않는 일 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 조차도 이런 정도의 은혜를 베풀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는 이렇게 연결되게 되어진 운명이 있었으리니 내 너를 믿고 내 모든것을 전수하여 주었느니라"
강철은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지난날 말썽과 어리광을 피우던 어린시절을 지나 반항으로 점철된 청년 시절에 이르기 까지 그 어떤 복을 받을 만한 선행이나 공덕을 쌓은 기억도 이유도 전혀 없었다.
"너는 운명에 의해 선택되었다. 그것은 우주의 이치이며, 또한 이유가 있으리라."
처음에는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노인은 말을 하는 듯 보였지만, 입을 열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귀나 음성은 또렸하게 인식되어졌다.
"나의 생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너는 네게 하늘이 주신 마지막 선물이다. 내 너를 통해서 이루지 못한 내 의무를 다 하고자 한다."
"이제 나는 네 스승이요. 새 생명의 은인이다. 더불어 내 모든 힘의 원천을 물려 주었으니, 그 힘으로 내가 가진 책임을 네가 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 도인이 말을 이었다.
"너는 스승의 예를 갖추고 내가 전할 의무를 받아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강철은 노인에게 다가가 큰절로써 스승으로써, 은인으로써의 예를 올렸다. 노인의 소리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으로 강철의 뇌리에 각인이 되었다.
"스승님!!! 어떤 분부든지 하명하여 주십시요. 신명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강철은 진실한 마음이 우러나 도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심신으로 허약하고 우유부단하여 철부지 같던 옛 모습들은 바람속에 연기처럼 사라졌고, 세상을 이치를 훤히 꿰뚫어 보는 혜안이 생긴 듯 눈동자가 맑고 투명했다. 그 모든것이 자신에게 전해졌을 스승의 진기가 조화를 부린 것이리라.
"나는 이 땅의 인간이 아니다."
" 내 고향은 은하계를 훨씬 벗어난 크리야크 성단의 변두리 베른 이라는 별이다."
강철은 자신이 얻은 상상할 수 없는 가공의 기운이 지구의 것이 아님을 사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스승이 펼쳐놓는 텔레파시의 언어들은 마치 영상처럼 그의 머리속에 그려지며 베른 이라는 별로의 공간 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