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씨
해미보살은 지난해 초파일 연등행사를 앞두고 백암사로 찾아온 사람이 씨받이로 낳아준 아들 건이로 알고 부질없는 속연을 끊기 위해 야반도주하다시피 절을 떠나 내장사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해미보살이 잘못 짚은 것이었다. 사미승에게 이곳에 혹 이러이러한 보살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시루였다.
모량부리 해미마을 백중서 댁의 셋째 아들인 시루. 그림솜씨가 제법이었던 시루는 해당화를 배경으로 한 달녀의 초상화 ‘月心春色월심춘색’을 아직까지도 지니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이 앞서 미처 전해주지 못한 채 십칠 년이 흐른 것이다.
밤새 소리 소문 없이 떠나버린 달녀가 처음엔 괘씸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애달픔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혹심한 병을 앓았다. 다행히 지극한 부모의 구완으로 병석을 떨쳤으나 말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어느 누구와도 말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낮엔 하루 종일 방 안에 있다가 밤이 되어 달이 뜨면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견뎌내더니 봄이 오자 분연히 일어나 부모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대처에 나가 그림공부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백중서는 아들의 얼굴에서 그처럼 옹골찬 눈빛을 처음으로 보았다. 가타부타 없이 물갈음 옷과 길양식을 챙겨주고 노자를 마련해주었다. 혹 인편이 있으면 소식을 전하라고 당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자식 하나를 잃어버린 시루의 어머니는 눈물만 찍어내고 있었다.
길을 떠난 시루는 미리 작정한 듯 황등야산의 갑사甲寺를 찾았다. 거기 불화와 산수화에 정통한 하휴河休선사가 있다는 얘기를 훈장으로부터 들은바 있어서였다. 해미에서 고시이 갈재를 넘어 모량부리까지 하룻길이었다. 잠시 선운사에 들를까 하다 내질러 흘덕을 거쳐 태산에서 다시 하룻밤을 지내고 벽골 함열 황산(논산시)까지 또 하룻길이었다. 나흘 만에 열야산(논산시 상월면)을 지나 곧바로 갑사 경내에 도착했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무작정 산림보살을 찾아 바랑 속의 노자를 송두리째 꺼내놓으며 기거를 부탁했다. 대뜸 거절이었다. 요사체에 빈방이 없다는 이유였다. 사정을 거듭하자 불목하니와 함께 있겠느냐 물었다. 감지덕지였다. 퀴퀴하게 땀 냄새가 찌든 구석방에 들어가 불문곡직 큰대자로 누웠다. 먼 길을 걸어온 고단함이 잠으로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오줌이 마려워 눈을 뜰까 말까하고 망설이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넙데데한 얼굴에 눈이 부리부리했으나 천성이 선해보였다. 뭔가 자꾸 손시늉을 했다. 아마 밥을 먹으라는 시늉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옆에 개다리소반이 놓여 있었다. 일어나 앉으니 또 손시늉을 했다. 벙어리였다. 그제야 빙그레 웃음을 넘겨주고는 바지춤을 부여잡고 문을 나섰다. 그가 따라나섰다. 그리곤 뒤란으로 돌아 한참을 걸어가서야 손가락질을 했다. 거기에 해우소가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수저를 들면서 같이 먹자하니 자기는 먹었다는 시늉이다. 남쪽 멀리 해미에서 온 백시루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밥상은 산나물 무침 두세 가지와 조를 반이나 섞은 꽁보리밥이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조악한 밥이었으나 꿀맛처럼 달았다. 벙어리는 다 먹은 소반을 들고나가더니 이내 물 한 주발을 들고 와서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기보다는 연상으로 보였다. 고맙다는 시늉을 하고는 물그릇을 받아 반쯤 마시고 윗목으로 밀어놓았다.
밤새도록 빈대와 싸우느라 잠을 설치고 방을 나섰다. 초여름이라지만 산간의 새벽공기는 싸늘했다. 해우소를 찾아가는데 그림자가 따라왔다. 서쪽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떠있었다. 가슴이 울컥했다. 달녀가 밤사이에 종적을 감춘 뒤부터 달만 보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뿌리 속에서 꽃이 피고 있다는 달녀의 말이 뇌리에 남아 달이 뜨지 않아도 달을 볼 줄 알게 되었다.
아침을 얻어먹자마자 막봉이를 따라 뒷산에 가서 삭정이를 주었다. 산림보살이 그렇게 불러서 그의 이름이 막봉인 줄을 알았다. 지게를 질 줄 모르니 등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삭정이 가시가 등골을 파고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는 더 멀리 가서 쓰러진 나무토막을 목도해 왔다. 저녁 먹기 전에는 물지게로 물을 길러오는 것이 순서였다. 그리고 저녁을 먹자마자 빈대와 싸우며 잠을 잤다. 새벽엔 대웅전 뜰에서부터 온 경내를 빗질해야 했다. 막봉은 하루 종일 말이 없다. 혹 무슨 말을 걸어도 배시시 웃는 게 전부였다.
석 달이 지났다. 손바닥엔 못이 박히고 어깨와 등엔 굳은살이 붙었다. 날씨가 싸늘해지자 두툼한 바지저고리를 내주었다. 재로 잰 듯 몸에 맞았다. 발에 딱 맞는 버선과 속곳도 내주었다. 옷을 갈아입기 전 개울의 찬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다. 받아두었던 잿물로 머리도 감았다. 댕기로 머리를 묶으면서 개울을 보았더니 거기에 낯모르는 장정이 있었다. 얼굴에는 수염과 구레나룻이 돋아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한 숨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시루를 본 산림보살은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의아해 하는 시루에게 법당 쪽으로 눈짓을 했다. 산림보살의 눈짓을 따라 법당 쪽으로 고개를 돌린 시루의 눈에 장승처럼 서있는 스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역시 온 얼굴에 웃음을 함빡 머금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겁먹은 표정으로 허리를 굽히는 시루를 향해 스님의 벽력같은 목소리가 덮쳤다. 몇 번 마주치기는 했으나 여태까지 한 번도 말을 붙여주지 않던 스님이었다.
“시루야! 이리로 올라오너라.”
“……………?”
“어허! 냉큼 이리로 올라오라는데도.”
“예~예.”
법당에 마주 앉은 스님은 위엄이 가득한 소리로, 역시 쩌렁쩌렁한 소리로 말을 건넸다.
“네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 했느냐!”
“…………?”
“여기 화선지에 저 앞의 부처님을 그려 보거라!”
“스님. 그걸 어찌……?”
“너의 내력을 어찌 아느냐는 말이더냐!”
“예~예. 소인 같은 사람을 어찌 아시고……”
“허~어. 모량부리 해미마을 백중서의 셋째 자제가 아니더냐!”
“예~에? 그렇습니다만, 그걸 어찌?”
“어리석구나. 이 하휴에게 그만한 안목이 없는 줄 알았더냐!”
“예~에? 스님이 하휴선사님이시라구요? 그 존명이 자자한?”
“어~허. 그만한 이치를 꿰뚫지 못하고서 그림을 그린다? 부처님 마음을 그 린다? 너는 그림을 손재주로 그리는 줄 알고 있구나. 그림은 마음으로 그 리는 것이니라. 네가 석 달간 불목하니로 고생한 것은 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도정이었던 게야.”
“선사님. 소인의 어리석음을 더 크게 꾸짖으시옵소서. 으흐흐흐.”
“허~어. 부처님을 그려보라는데 어찌 눈물을 흘리는 것이냐!”
“예, 예. 그려보겠습니다.”
손끝이 떨렸다. 그동안 무뎌질 대로 무뎌진 손으로 오랜만에 세필을 잡아서가 아니었다. 그림을 배우겠다고 나선지 석 달, 하휴선사의 이름만 듣고 무작정 갑사로 찾아든 지 백일이다. 그 누구에게도 하휴선사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고향 해미마을에 대해서 입도 떼지 않았다. 그저 밥 세끼 얻어먹으며 마름이나 머슴이 하던 일을 해냈다. 막봉이가 벙어리만 아니었어도 한결 쉬웠으리라. 당장 하산하고 싶은 마음을 달녀의 ‘月心春色(월심춘색)’으로 다잡았다. 그러한 지난날의 억장과 인고가 손끝을 떨리게 했다.
미간을 먼저 그렸다. 미간을 사이에 둔 양 눈이 초상화를 좌우한다.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눈을 아무리 잘 그려도 미간의 사이가 맞지 않으면 품고 있는 마음을 표출해낼 수 없다. 따라서 미간의 넓이가 전체 그림의 기준 잣대가 되어 얼굴이 화선지를 알맞게 메우게 된다. 아직 누구에게 배운바가 없으나 오랜 습작을 통해 깨달은 솜씨다. 막 양 눈의 위치를 잡아가는데 선사가 그만하라며 화선지를 거두었다. 잠시 들여다보던 선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내일부터 그림을 배우라 했다.
하휴선사는 달포 전 선운사에 들렀다가 시루의 아버지 백중서와 조우했다. 백중서는 아들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 눌려 졸지에 길을 떠나보내며 한 달에 한 번씩은 소식을 전하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아무런 기별이 없자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수소문에 나섰다. 어디 절간에 들어가 그림공부를 하겠거니 하는 짐작이 적중했다. 인근의 사찰을 샅샅이 살펴도 찾을 수 없어 낙담하던 차에 선운사에서 불화 점안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해서 찾아갔다가 하휴선사를 만나게 돼 혹 이러이러한 아이가 선사를 찾을지 모르니 만나거든 잘 거두어 달라고 하소연하면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선사는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고 갑사로 돌아왔는데 두어 달 전 뜨내기로 들어왔다는 불목하니의 단정한 용모와 태도를 보고서 혹시나 해 산림보살에게 그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시루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은 모른다고 했다. 고향도 모른다 했다. 밥 먹고 시키는 일을 할뿐 별다른 재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서 선운사에서 만났던 백중서 시주의 자제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 한 달을 눈 여겨 보고서 그의 그림솜씨를 시험해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시루는 다음날부터 불목하니의 일을 떠나 선사의 제자로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사의 예견대로 시루의 재주는 뛰어났다. 손끝으로 잔재주를 부리려하지 않고 마음을 해석하고 나타내는 안목이 탁월했다. 불탱화 후불탱화 신중탱화를 차례대로 익혀나갔다.
그가 제일 어려웠던 것은 사천왕의 부리부리한 눈을 그리는 것이었다. 천성이 야멸치지 못한 그가 눈을 부라리는 형상을 그려놓아도 눈가의 잔잔한 웃음 끼를 거둬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선사는 불호령을 했다. 손으로 그리지 말고 마음으로 그리라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그려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미소가 자꾸 입으로 흘려 내렸던 것이다. 사실 다른 그림과 달리 부처님은 눈보다 입을 묘사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
그렇게 십 년을 정진한 끝에 만다라와 칠성 독성 산신탱화는 물론 괘불까지 스승과 비견할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산수화는 가히 해동삼국의 절륜이라 할만 했다. 하휴선사는 제자의 대성에 만족하면서 그의 법명 첫 글자 하河자를 예명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시루는 스승의 법명 첫 글자 하河에다 달녀의 성씨인 성成자를 붙여서 하성河成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스승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탁월함 때문이었는지 불사가 있고 불화가 필요한 곳에서는 의례 하성을 불렀다. 대개는 하휴선사를 청했지만 칭병하며 하성을 대신 보냈다. 불화와 탱화는 시간과 정성을 무한으로 쏟아야 완성되는 작품이다. 물감도 고급화된 비싼 염료를 사용한다. 본전의 큰 벽화를 완성하려면 여섯 달, 일 년이 걸린다. 하성은 괘불 몇 점까지 그려주고서는 마지막으로 산수화를 그렸다. 불사에 시주한 불도에게 답례 겸 기념으로 주기 위한 작품이다.
그는 꼭 달이 중천에 떠있는 야경을 그렸다. 봄에는 달빛을 받은 해당화가 등장했고 여름엔 해당화 대신 연화를 넣었다. 가을엔 황금 들녘 위로 높이 나는 기러기를 그리고 겨울엔 노송 위의 눈송이를 미끄러져 내리는 달빛을 그렸다. 그래서 야경 위주인 하성의 그림은 조금 어둡고 우중충하다. 그러나 그 어두움과 우중충함은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오히려 밝고 활달하게 해준다. 모두들 천상의 조화라고 입을 모았다.
시루는 집을 떠난 지 십육 년 만에, 나이 서른둘이 되어서야 고향 해미마을을 찾았다. 환갑을 앞둔 아버지 어머니는 반갑기에 앞서 장가도 가지 않고 늙어가는 아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늦었지만 혼사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넌지시 시루의 마음을 떠보았으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처음 보는 두 형수와 올망졸망한 조카들을 대하면서도 언제나 무덤덤했다. 바랑을 짊어지고 집을 나가면 대엿새 만에 돌아왔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종 아무 말이 없어서였다.
그러다가 가을 햇살에 벼가 누렇게 익어갈 즈음 하직인사를 했다. 그저 먼 길을 떠난다고만 했다. 양 부모는 그게 어디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가 그림 값으로 받은 것이라며 내밀었던 은자 여남은 개를 도로 주었지만 한사코 거절하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서는 뒤돌아섰다. 그의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부모는 미처 보지 못했다.
하성의 머릿속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가서 대륙의 화풍을 공부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다. 스승 하휴는 하성의 산수화가 마음을 사로잡는 오묘함은 있으나 격조가 부족하다며 당나라의 문인화가 왕유王維의 수묵산수화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얘기했었다. 오도자呉道子와 염입본閻立本의 청목산수화에 대한 설명도 항상 곁들였다. 그때마다 더 큰 공부를 위해 당나라에 가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는 고마나루(곰나루, 웅진)에서 당나라로 건너가는 배를 탈 작정이었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찾아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달녀였다. 고향 집에 있으면서 집을 비웠던 것은 달녀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행보였다. 그는 몇 년 전 어렴풋한 소문을 듣고 백암사를 찾았던 것인데 밤이 맞도록 기다렸으나 달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새어 다시 물었으나 밤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대답이었다. 그는 전해주려던 ‘月心春色월심춘색’을 도로 접어 품에 넣고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고마나루를 향하던 시루의 발길이 내장사를 향했다. 마음속의 응어리는 이미 정리되었는데도 생각과 달리 발길이 먼저 내장사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을에 비낀 단풍이 절경이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심한 발걸음을 따라 법당 앞에 다다랐을 때 법당 안에서 나누는 남녀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인정 모정 애정 색정 등의 낱말이 오가는 것을 보면 오욕에 관한 선지식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해미는 필시 심저에 있는 오욕의 뿌리를 온전히 잘라내지 못해 대오가 더딘 게야.”
“선사님, 아닐 것입니다. 분신이랄 수 있는 자식이 찾아왔는데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해미는 모정보다 애정이 더 큰 미망이란 것을 모름이야.”
“애정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자식이 생겼다고 해서 그걸 어찌 애정이라 유추하십니까?”
“자식이 생기지 않는 애정도 있지 않겠느냐! 애정이 없는 자식이 생기듯 말이다. 말하자면…….”
“예? 그것은 색정이 아니옵니까?”
“색정과 육정은 같아보여도 전혀 다른 것이지. 애정과는 더욱 다르고.”
“설명하옵소서.”
“애정은 말이다. 무언가, 누군가에 대해 갖는 굄이니라. 부처님의 대자대비 가 애정의 극치라 할 수 있지. 그에 비해 색정은 색을 탐하기 위해 생기는 욕심이고 육정은 서로 색을 탐하다보니 생겨나는 현상인 게야.”
“그러면 애정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이옵니까.”
“애정은 사유인 게야. 서로 부대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좋은 마음 즉 측은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야. 말하자면 말이다.”
“말하자면, 무엇이옵니까.”
“…………음, 네가 처음 괴었던 사람이 있지 않느냐.”
“예~에? 처음 괴었던 사람이요? 선사님! 해미마을의 시루 말이옵니까?”
“그렇다. 내가 처음 너를 보았을 때 시루도 함께 보았느니라. 둘의 아름다움이 노승의 눈에 띄었지만 너희들은 선연만 있을 뿐 인연은 없었던 게야. 하물며 천연天緣으로 맺을 수는 없었다. 둘 다 불연佛緣은 확실한데 인연과 천연이 없는 너희들을 보는 내 마음도 개운치 않았던 게야.”
“선사님. 그걸 다 알고 보셨으면서 모른 체 하시고 십칠 년을 지키셨습니까?”
“벌써 그리 됐구나. 십칠 년이 지났구나. 시루는 하성이라는 예명으로 그림의 대가가 되었느니라. 아마 지금은 당나라에 가 있을 게야. 아마.”
“선사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백암사에 있을 때 찾아 온 사람이 바로 그 시루였습니까?”
“아마 그랬을 게야. 아마 그랬을 게야. 나무아미타불.”
하성은 십칠 년간 오매불망하던 달녀, 틀림없는 그녀를 눈앞에 두고서도 발길을 돌렸다. 불문에 귀의한 것은 아니지만 절밥을 먹으면서 성장했고 선사의 가르침으로 오늘의 경지에 이르렀다. 법당 안에서 주고받는 선문답의 심오함을 깨닫지 못할 리 없다. 해미가 그녀의 법명인 모양이다. 이미 속연을 끊고 불문에 귀의, 열반의 세계를 열어가는 한 여인의 옹골짐을 미성년 때의 풋정으로 허물어뜨릴 수는 없었다. 미어지는 듯 하고 허전하기 이를 데 없지만 선연으로 만족하는 게 도리였다. 너덜너덜해진 ‘月心春色월심춘색’을 곱게 접어 섬돌 밑에 남겨놓고 돌아섰다.
한편 이를 알 리 없는 해미보살은 선문답을 마친 뒤 요사체에 돌아와서도 오금이 저리고 손발이 곱아서 마음이 다잡이지 않았다.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시루가 찾아왔었구나. 그것을 짐작도 못하고 혼자의 깜냥으로 씨받이 자식 건이라는 착각에 빠져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내 마음이야 이미 닫힐 만큼 닫혔다고 장담할 수 있으나 오매불망 찾아다녔을 그의 여린 마음을 생각하니 몹쓸 짓을 했다는 후회가 일었다.
섬돌 밑에서 주운 너덜너덜한 그림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해미는 까무러치게 놀라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곤 일주문을 향해 내달렸다. 틀림없다. 틀림없이 그가 다녀간 것이다. 용모도 용모지만 활짝 핀 해당화가 증명이었다. 자기의 몸을 더듬던 날 밤, 내일 저녁에 줄 것이 있다며 또 만나자고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그것을 십칠 년 동안이나 간직했었기에 그토록 너덜너덜해졌단 말인가. 일주문까지 나가서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해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음 '길지를 찾아서' 편으로 이어집니다.>
*독자제현께 송구한 말씀-입원가료 중이어서 당분간 연재치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