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꿈
사비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 임존성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성주 지수신遲受信이 이끄는 군졸은 채 삼백 명도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제대로 훈련을 받은 자는 많지 않았으며 병장기마저 신통찮았다. 성주 지주신의 말로는 하루에도 몇 명씩의 탈주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흑치는 우선 성주를 위로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지금까지 굳게 버텨온 성주의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당의 소정방 이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행패가 우심합니다. 비록 왕권은 무너졌어도 백 제의 백성들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당한 말씀입니다. 무슨 계책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우선 병사를 모아야겠지요. 온조대왕 이래로 그동안 열성들의 은혜를 입 지 않은 백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리에 맞는 얘기로 설득하면 많은 백성 이 호응할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격문을 써야겠군요. 장군께서 구술하시면 필사를 해서 인근사오백리에 방을 붙이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이곳은 땅이 비옥하니 넉넉한 호족들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몰래 사람을 보내어 군량미를 부탁해야겠습니다.”
“우선 이곳 지리에 밝고 몸이 날랜 병사들을 가려 뽑아놓겠습니다.”
둘레가 오리(2.8km)인 임존성은 봉수산과 그 동쪽 봉우리들을 에워싼 석축산성으로 견고함과 접근의 험절성이 널리 알려진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성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은 흙으로 채운 내탁법內托法으로 축조되었다. 성안에는 계단식의 단축을 만들어 최대한 많은 백성을 수용할 수 있게 하였으며 우물도 세 곳이나 되었다. 사비성까지는 불과 구십 리 상거다.
흑치장군은 곧바로 격문 작성에 들어갔다. 문자에 서투른 백성들을 위해 가급적 쉬운 말로 구술해 나갔다. 글을 깨우치고 쓸 줄 아는 자들이 흑치장군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을 바로바로 적어나갔다.
“백제의 백성들이여! 나라가 당의 침노로 위기에 처했다. 왕 폐하는 적의 볼모가 되었고 도성은 함락되었다. 이제 나라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청장년은 물론 남녀노소 모두 궐기해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서자. 농기구를 병장기 삼아 적을 섬멸하여 백제인의 긍지를 지키자. 자랑스러운 백제인이여! 임존성을 중심으로 항거의 횃불을 높이 들고 백제의 위엄을 되찾자. 임존성 성장 지주신, 백제 대장군 흑치상지.”
방이 나붙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인근의 오산烏山(지금의 예산) 금주今州(대흥) 금물今勿(덕풍)은 물론 당진 아술(지금의 아산) 사산(천안) 고시산(옥천) 사시량(청양) 홍주(홍성) 신촌(보령) 연산(논산) 설림(서천) 강경포(강경) 멀리는 운수(임실) 고룡(남원) 도실(순창) 등지에서 열흘 만에 오천여 명이 모였다. 오천 명은 다섯 방을 형성할 수 있는 숫자다. 그 가운데는 형제, 젊은 부부, 손자의 손을 이끌고 온 할아버지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병장기가 될 만한 것을 손에 들고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흑치장군은 찾아든 의병들을 일일이 격려하고 안돈했다. 그리곤 장정들 위주로 부대를 편성했다. 고령자와 연소자 부녀자들은 화살촉 만들기, 군장 만들기, 먹을거리 장만하기에 빈틈없이 배치했다. 황색 깃발에 ‘백제부흥군’ ‘흑치상지 장군’ ‘지수신 장군’ 등을 써넣어 곳곳에 도열함으로써 사기를 북돋았다.
흑치장군은 밤이 되자 인근 지리에 밝은 병사를 앞세워 성문을 나섰다. 서쪽 신촌(보령)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금바위를 넘어 지척인 둔터에 다다랐다. 바로 신촌의 턱 밑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 산자락 끝의 큼지막한 개와 집을 찾아드는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인근에 살았다는 병졸이 앞장서 솟을대문을 두드리며 작은 소리로 말을 놓았다.
“딴죽이, 딴죽이 있는감?”
“………”
“딴죽이 나여, 음생이여, 얼릉 문 좀 따보기여.”
“이 밤중에 누구? 뭐, 음생이? 워쩐 일인감?”
“얼릉 문이나 따고 말혀!”
“아따, 숨넘어가긴……”
곧바로 대문이 열리자 음생이 뭐라 뭐라 소근 댔다. 나이 들어 보이는 딴죽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장군 일행을 안으로 맞아드리더니 안채를 향해 내닫는다. 잠시 후 사랑채에 불이 밝혀지고 작달막한 체구의 주인이 장군을 맞아들였다.
“야심한 터에 불쑥 찾아뵈어 면목 없습니다. 저는 백제 부흥군을 이끌고 있는 흑치상지라고 합니다. 긴한 일로 찾아뵈었습니다.”
“예에? 흑치장군이오? 그러면 임존성에서 예까지 밤길을 걸으셨구먼요? 저는 최성기라고 합니다.”
“예에, 존함을 익히 알고 왔습니다. 가대가 넉넉하시고 인심이 후하시다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힘을 좀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허전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시장하실 텐데 뭐 좀 요기를 하셔야지요. 딴죽이 밖에 있는감? 서둘러 상 들이게나.”
“예에, 시방 들여가는구먼요.”
안채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인지라 벌써 준비를 해두었던 듯하다. 동네의 개 짖는 소리는 주인과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묵직하게 ‘컹~ 컹~’하고 짖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다. 낯모르는 사람이거나 경계대상일 때는 ‘캉~캉~캉’하고 주인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오거나 적대행위를 하면 톤을 높여 ‘캉캉컁 캉그르 캉캉컁 캉그르’하며 잦아든다. 접근하는 자가 다수이면 이번처럼 ‘컹컹 컹~ 컹컹 컹~’하고 신호를 보낸다. 주인은 이미 개 짖는 소리로 누군가 자기 집을 찾는 사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급하게 내어온 상차림치고는 반듯했다. 탁배기도 곁들여 있었다. 음생이와 수하들에게도 따로 상이 차려진 듯했다. 주인 최성기는 탁배기 잔을 가득 채워 장군에게 건넸다.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존대가 깍듯하다.
“우선 목부터 축이시지요. 안주가 변변치 않습니다.”
“원 별 말씀을. 그럼 달게 받겠습니다.”
“주~욱 들이키시고 한 잔 더 받으시지요. 노심초사가 한결 가뿐해질 것입니다.”
“실은 어려운 부탁말씀을 드리려고 비례를 범했습니다. 이번에……”
“예에, 잘 알고 있습니다. 나라의 근본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큰 비례가 있겠습니까. 의병이 많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남녀노소 다 합하면 족히 오천은 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먹고 입힐만한 물자가 태부족이라서……”
“군자금이 넉넉해야 전력이 튼튼한 것인데……. 어느 정도 보태면 되겠습니까.”
“당장은 백 섬이면 좋겠습니다만.”
“백 섬이요?”
“이런 농가에서 백 섬이 벅찰 줄은 압니다만, 무리를 해서라도 좀……”
“허~어, 어디 백 섬 가지고 되겠습니까.”
“………”
“우선 이백 섬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참 양식만 가지고는 안 될 것이고 콩과 보리쌀도 장만하겠습니다.”
“이렇게 고마우신 말씀을……. 어떻게……”
“아~아 아닙니다. 장군은 싸울 일만 걱정하시지요. 물자는 수일 내에 당도 하도록 조처하겠습니다. 곧 귀정하셔야 할 텐데 어서 요기를 좀 하시지요.”
“듣던 명성이 헛되지 않군요. 이 밤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뜻이 통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별도로 연락을 해서 돕도록 할 터이니 부디 기체를 보중하십시오.”
“예? 다른 후원자도요?”
“그렇습니다. 거리는 멀지만 강경포(강경)의 정우치와 벽골(김제)의 아주생, 흰내말(부안)의 최치랑 등과 소통하고 있는데 바로 연통을 놓으면 서슴없이 동참할 것입니다.”
“제가 오늘 대인을 뵈었습니다. 약조를 믿고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봉수산 인근에 저희 파수꾼들이 나가있으니 당도하시면 연통을 놓으십시오.”
“밤이슬이 찹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리고 육편을 조금 마련했으니 가지고 가시지요.”
“예~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럼.”
흑치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여태껏 이만한 도량과 인심을 겪어보지 못했다. 수하들의 어깨에 멘 육포상자가 제법 묵직했다. 갑자기 비가 돋기 시작했다. 큰 비는 아닐 듯싶었다. 논두렁의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일행의 발걸음을 따라 울음을 멈춘다. 그리곤 한참을 지나서야 다시 울어댄다.
초저녁의 맹꽁이는 잠자리를 잡느라 ‘매앵 매앵’하고 운다. 밤이 깊어지면서는 ‘맹꽁 맹꽁’한다. 주위에 천적이나 해될 것이 없어 평안하다는 울음이다. 비가 오거나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잡히면 ‘맹꽁 맹맹꽁’하다가 울음을 뚝 그친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뽀그르 뽀그르’하면서 먹이사냥에 나선다. 사는 지방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약간씩 다르고 굵고 낮은 소리로 덩치가 크다는 것을 과시한다.
<다음 '복신의 합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