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흑치의 사비성 탈출은 의외로 쉽게 이루어졌다. 갇힌 지 사흘 째 되는 날밤 막손이 그의 옥실로 찾아왔다. 자정이 다 되도록 눈을 붙이지 못한 채 뒤척이고 있다가 인기척에 뒤돌아보았더니 가느다란 화톳불 속에서 막손의 넙데데한 얼굴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천만뜻밖이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막손은 그가 데리고 있던 기수였다.
“장군님. 무사하셨구만요 잉. 얼능 여쪽으로 와 보실랑가요?”
“……………”
“여그 쇳대 있응게요 후딱 지를 따라오시기라우.”
“………… 어찌 된 게냐!”
“지가 다 알아서 혀 놨응게요, 따라오시기만 허랑게요. 얼능 후딱요.”
“알았다. 아무것도 없으니 몸만 가면 된다. 앞장 서거라.”
“야~야~ 여쪽이어라우.”
“아, 아니다. 다른 방에 있는 사람도 같이 가야지.”
“아, 긍게 여그 채에 있는 아덜은 다 나왔응게 장군님만 가시면 된당게요.”
“그러냐? 몇이나 되느냐.”
“어따 그것은 찬찬히 얘기허고 얼능 가시장게요.”
“그래, 알았다.”
옥소를 지키던 당나라 군사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막 모퉁이를 돌아나가면서 보니 서넛이 모닥불 옆에 나뒹굴어 코를 골고 있었다. 아마 막수가 술병이라도 건네며 수작을 부렸던 모양이다. 울 밖을 벗어나자 몸을 숨기고 있던 예닐곱 명이 손짓으로 반기는 시늉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내달려 북쪽 성곽을 넘었다. 한 식경은 되었을 것이다. 멀리서 새벽닭 우는 소리로 보아 삼경은 지난 것 같다. 이제 눈앞의 개울 하나만 건너면 임존성任存城 (지금의 충남 예산군 대흥) 지경이다. 초롱초롱한 별빛이 실개울의 조약돌을 비껴 부서지고 있었다. 흑치는 그제야 사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숨을 고르며 살펴보니 같은 옥사에 있던 군졸들은 다 나온 것 같았다.
그때 개울 건너 뚝 위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두런두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열 명은 넘는 것 같았다. 흑치는 무기도 없는 처지라서 순간 난감해졌다. 그런데 막손이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어 응답했다. 미리 군호를 짰던 모양이다. 그리곤 팔을 휘둘러 건너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야~아, 인자 되었구만요. 떨렁이 쇠야치 쇠돌이랑 아그들 다 모였구만요. 지가 여그서 지둘르라고 혔거등요.”
“그랬더냐! 그러면 어서 건너가자!”
막손은 작년 가을 동네 사람 여섯과 함께 억지로 뽑혀와 사비성의 석투군石投軍에 편입되었다. 손이 큼지막해 돌팔매를 잘 할 것이라며 석투군에 배속시킨 것이다. 그랬다. 막손의 손바닥은 솥뚜껑만 했고 손가락은 갈큇발처럼 길었다. 한 동네 떨렁이 깝칠이랑 함께였다. 떨렁이는 체격이 왜소하고 손발도 조그마해 석투군 감이 아니었지만 막손이 한사코 사정해 같은 부대에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떨렁이는 좀 모자란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마음씨가 고와 막손이와는 예전부터 친근한 사이였다. 고향에 있을 때도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하면 막손이가 뒤에서 감싸주곤 했었다.
석투군의 하는 일이란 하루 종일 주먹 크기의 돌멩이를 모아놓고 던지는 연습이었다. 처음에는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고 퉁퉁 부어올라 밤새도록 끙끙 앓기 일쑤였다. 두 달쯤이 지나서야 요령이 몸에 배어 제법 돌팔매 꾼다운 품을 갖추었다. 석투군은 매월 보름날과 그믐날 두 차례씩 석투대회를 열었다. 말이 대회지 그냥 조련장에 모여 십대별로 멀리 던지기, 표적 맞추기를 겨루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막손은 멀리 던지기에서 매번 첫손을 차지했다. 석투군 전체를 통틀어서도 막손이 마냥 백 보를 넘기는 병사는 없었다. 잘 한다는 편이 칠십 보 내외고 보통은 오십 보 정도였다. 떨렁이는 아예 던지기를 못해 취사병 노릇만 했다. 그러나 막손은 표적을 맞추는 정확도에서 항상 뒤떨어져 한 번도 일등을 해보지 못했다. 입영 초에는 장부 기록대로 목막수木莫手라고들 불렀으나 표적 맞추기에 젬병인 것을 알고부터는 마구잡이로 던진다고 해서 본래 이름인 막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날도 석투대회에서 아깝게 일등을 놓치고 시무룩해 있을 때인데 군장 막사에서 호출이 왔다. 뜬금없는 일이라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막사에 들어섰더니 군장 옆에 서있는 낯선 장군이 반가운 기색으로 맞았다. 키가 육척이나 되는 건장한 모습에 눈썹이 짙고 큼지막한 입, 덥수룩한 수염으로 위엄이 돋보이는 풍채였다. 군장이 흑치상지 장군이라며 군례를 갖추도록 일렀다.
“석투군 목막수, 장군님을 뵙습니다!”
“아~아, 반갑네. 자네 팔매질을 아주 잘 하더구만. 팔 힘이 대단해.”
“아닙니다. 맨 날 이등밖에 못합니다.”
“아냐, 아냐, 그만하면 됐어. 어디 나하고 한판 붙어 볼텐가?”
“예~에?”
“아니, 팔매질이 아니고 팔씨름으로 말이네. 어디 자신 있어?”
“아~ 예! 한 번 해보지요. 근디 지금 여그서라우?”
“그래, 이리 와 앉아 보게나.”
흑치 장군이 오른 팔목을 걷어 올리며 좌정했다. 팔뚝이 웬만한 사람 장딴지만큼이나 굵었다. 막손은 큰 손으로 덥석 장군의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보통 사람의 것보다는 컸지만 막손에게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막손은 여태껏 팔씨름에서 져본 적이 없던 터라 자못 자신이 만만했다. 군장이 둘의 맞잡은 손을 똑바로 세우고 ‘하나, 둘, 셋’하며 시합개시를 선언했다.
막손은 처음부터 얕잡아 보고 으레 하던 대로 느슨하게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장군은 무술로 단련되어서인지 손바닥의 옥죄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장군은 힘으로는 당할 수 없음을 알고 처음부터 기선을 제압하는 작전으로 나왔다. 순간 막손의 팔목이 꺾이고 있었다. 약간 힘을 쓰면서 되받아치려 했으나 만만치 않았다. 좀 더 힘을 썼어도 한 번 꺾인 팔목이 쉽게 바로 서지 못했다. 그 사이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큰 숨을 들이마시며 얼핏 장군의 얼굴을 훔쳐보니 장군의 얼굴에도 땀방울이 베기 시작했다.
밀고 당기는 접전이 반각을 넘어서고 있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새 소문을 들었는지 군막에는 장졸들이 몰려와 한 쪽에서 힘을 쏟을 때마다 괴성을 질러댔다. 이제 두 대결자의 상체는 흘러내린 땀으로 멱을 감고 있었다. 막손은 속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장군은 내심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손목은 슬슬 마비증상까지 몰려오고 있었다. 막손 역시 이미 온힘을 쏟은 터라 한 번 더 공격을 받으면 감당해낼 수 있을지 아득했다. 이판사판으로 용트림을 하며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군장이 ‘그만 됐시유’라며 시합종료를 선언했다.
막손은 팔과 어깨에서 맥이 탁 풀려 잠시 동안 장군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장군이 빙그레 웃어주면서
“어이 대단해! 오늘은 내가 졌네!”
“야아? 아니구만요. 지가 졌는디요. 심 한 번 못 썼당게요.”
“아니야!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자네가 이긴 거나 마찬가지야!”
구경하던 장졸들이 일제히 ‘와~아’하고 함성을 질렀다. 잠시 후 숨을 돌린 끝에 장군이 막손에게 탁배기 한 사발을 따라 건네주며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막손이 계면쩍어 외면을 하는데
“이름이 목막수라 했던가? 좋아 오늘부터 내 부대로 옮기게나. 내 군장한테는 얘기해 놓았으니 저녁 먹고서 짐 꾸려 따라오게나.”
막손은 다음날 흑치 장군 부대의 기수로 뽑혔다. 기수단의 오장 득보得保는 꽤 나이가 든 사람이었다. 원래는 상영 장군 밑에 있었으나 흑치 장군이 그의 충직함을 보고 데려왔다. 이제 나이가 많아 기수노릇은 못하고 새로 뽑힌 기수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았다. 득보 오장은 곧바로 막손을 데리고 나가 조련장에 세워놓은 대나무 막대기를 기어오르라 했다. 두 장 쯤 되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이번엔 올라간 방식대로 내려오라 했다. 내려오면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또 오르라 했다. 이렇게 아침나절 내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손마디가 굳어서 매달리기조차 힘들었다.
이런 훈련을 닷새 동안이나 반복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날은 대나무가 미끄러워 더욱 힘들었다. 차라리 석투군에 눌러 있었더라면 이런 생고생은 안 해도 되는데 일등 한번 못했다고 투덜거렸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빼도 박도 못할 신세가 되었다. 흑치장군은 그새 한 번도 얼굴구경을 못했다. 밤이면 석투군에 같이 있던 떨렁이가 보고 싶었다. 밥마다 누룽지를 몰래 가지고 와 입속에 한 움큼 밀어 넣어주 던 때가 그립기만 했다.
오장은 엿새째 날이 되어서야 깃발을 하나 가지고 들어보라 했다. 깃발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싶어 꽉 움켜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더니 오장이 ‘꽥’하고 소리를 지르며 가슴팍을 쥐어박았다. 깃발은 그렇게 잡는 게 아니란다. 왼손으로는 맨 밑 부분을 잡고 오른손은 목 높이 쯤 거꾸로 잡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래야 깃대가 똑바로 서고 달음박질을 할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깃발을 들고 걷는 법, 달리는 법, 신호를 보내는 법까지 훈련하느라 달포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때 김박지가 새로 들어왔다. 호리호리한데다 날렵하게 생겼다. 나이는 한참 밑으로 보였다. 동료 겸 수하가 생기자 막손은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지내면서 얘기해보니 흘덕이 고향이라고 했다. 다내에서 하룻길도 안 되는 오십 리에 상거해 있다. 반갑기 그지없어 손을 덥석 잡고
“객지 나오먼 고향 까마기도 반갑다는디 이거 어치 된 일이다냐. 거그서는 멀 허다가 왔냐.”
“그냥 산따비 밭 부쳐먹고 실과나무도 멫 개 되어라우.”
“그렁가? 식구는 멫이나 되는디?”
“아부이 어머이 하고 시집 못 간 지집아 동생이 하나 있구만이라우.”
“그러면 인자 누가 농사 지을랑가 모리겄다 이잉.”
“야, 지도 그거이 젤로 꺽정이어라우.”
“전쟁이 후딱 끝나버리야 헐틴디 어떻곰 될랑가 모리겄다~.”
“근디 말이어라우. 성님은 다내에 누구랑 사능가요.”
“아부이는 거년에 돌아가셔부릿고 난 제금나서 아그들이 싯이나 되는디 배나 안 골는지 모리겄다. 그리도 옆에 성님이 있응게 벨반 꺽정은 안 히 야.”
어느새 막손의 눈이 젖어들었다. 애가 셋이나 달려있고 나이도 서른을 넘겼다며 한사코 버텨보았지만 한 번 손목을 잡은 징병관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중화참이 지나서 다내 강둑에 모인 사람은 일곱이었고 인근 마을에서 온 열두 명을 합해 모두 열아홉 명이었다. 사립문을 나설 때 울고불고 매달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큰놈 한돌이가 다설 살이었으니까 지금은 여섯 살이 되어 있을 터다. 둘째 계집애와 셋째 사내놈은 큰놈 나은지 삼년을 있다가 연년생으로 얻었다. 모두 제 어미를 닮아 살결이 희고 얼굴이 반반했다. 아내는 대시산(지금의 칠보)의 삯바느질 집에서 얻어왔다. 항상 말이 없고 순하기만 했다. 눈시울을 닦아낸 막손의 눈에 먼 산 밑의 아지랑이가 춤을 추었다.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까치가 깍깍거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팽나무 주위를 맴돌며 장난치던 까치 떼가 오늘은 더 높은 죽나무 위로 날아올라 부산을 떨며 깍깍댄다. 맨 꼭대기에 앉아있는 놈이 대장 까치다. 저희들끼리 어울려 놀 때에는 ‘꺄~악~, 꺄~악~’ 하는 게 일반이다. 먹이를 발견하면 ‘끼악~깍, 끼악~깍’하고 동료를 부른다. ‘끼악 꼬꼬르~, 끼악 꼬꼬르~’ 하는 것은 수놈이 암놈을 찾는 소리다. 그리고 접근하는 외적을 발견하면 '꺄꺄꺄~깍, 꺄꺄꺄~깍‘하고 경고를 한다. 윗가지와 아래 가지를 부산히 오르내리며 '꺄꺄꺄~깍, 꺄꺄꺄~깍‘ 하는 것을 보니 동구 밖에 낯선 사람이라도 나타났는가 보다. 이때 막손의 큰아이 한돌이 숨이 턱에 차, 달려들어 왔다.
“할무이! 할무이!”
“한돌이냐? 먼 일인디 숨이 턱에 차가지고 할미를 불러 싸. 그러다 자빠지 겄다.”
“할무이! 긍게, 긍게……”
“아이고, 할미 안 죽는다. 찬찬히 말혀 봐.”
“긍게, 처그 큰아부지가 온당게요. 시방 내깔 건너오는 거 봤당게요.”
“그려? 니 큰애비가? 그리서 깐치가 올어쌌던 게비다.”
“근디요, 할무이! 큰아부지 말고 쩔둑뱅이랑 같이 오던디라우.”
“모르는 사람이어?”
“야~, 인자 여그 다 왔겄는디?”
그때 꺽손이 막 사립문을 들어섰다. 박지가 뒤를 따랐다. 꺽손은 뒤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방문을 열어놓은 채로 고개만 내밀고 있는 대산 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와 허리를 깊숙이 꺾어 인사를 했다.
“어무이, 지 댕겨 왔고만이라우.”
“어찌 이리 여러 날 지체했당가.”
“야~, 태산 배들 고사부리까장 댕기다 봉게 그리 됐고만이라우.”
“송아치는 어따 두고 낯선 젊은이만 델꼬 와?”
“그렁게요. 이 사람아! 인사드려! 우리 어무이고만.”
“야~, 안녕하싱가요. 지는 흘떡 사는 김박지라고 허능고만요.”
“흘떡? 흘떡 사람이 여그까장 먼 일이~까?”
“어따, 어무이. 이 사람이 군대서 막손이랑 같이 있었는디 그 소식 전헐라 고 안 왔능가요.”
“멋이여? 막손이 소식? 긍게 시방 막손이 허고 쌈터에 같이 있던 동모란 말이여? 근디 막손이는 어찌 같이 안 오고?”
“야~, 지가 막손이 성허고 같이 있었는디 흑쌍치 장군을 따라가 버리는 바 람에 지금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것구만이라우.”
“에구머니나! 긍게 살아있기는 허능고만 잉. 아이고 부처님, 부처님 은공이 고만. 살아있기만 험사 만나능거야 대수겄어? 야 봐라? 한돌이 너 얼능 가 서 에미한테 오라고 혀야 안 쓰겄냐! 우리 막손이 어디 다친 데는 없을랑 가 모르겄네 잉”
“어따, 어무이 찬찬히 얘기허기로 허고 아침밥부터 먹어야 쓰것고만이라 우. 근디 이 사람은 어디 갔다요?”
“에미 말이냐? 근디 야가 애비 온 줄 암서 어찌 얼굴도 안 비친다냐? 시방 내외 허는거여? 야야, 얼능 밥상부터 챙겨야겄다. 어서들 방으로 들 어와.”
<제4회-'단풍 짙은 내장사'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