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편>
들려온 소식
배들 네의 기우는 기우가 아니었다. 꺽손은 아내의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태산 장과 배들 장을 거쳐 고사부리 장까지 휘돌고 있었으나 허탕을 치고 있었다. 장에 나온 송아지는 구경도 할 수 없고 장바닥에도 장돌뱅이 몇몇을 빼고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당연합군에 대한 백제 유민들의 저항이 이곳저곳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인심이 흉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정 모르는 꺽손이 집을 나섰다가 낭패를 만난 것이다. 동생 막손이는 병정 나간 후 일자무소식이고 동네 젊은이들도 힘쓸만한 사람은 대부분 끌려 나가 농사일손이 태부족인데 송아지에나 걸어보았던 기대가 어긋나고 있는 것이었다. 집을 나설 때 아내는 신신당부했지만 국밥으로 배를 채우다보면 자연히 탁배기(막걸리) 한 사발이 당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술이 어찌 딱 한 잔만으로 그치던가. 연 사흘 다리품 판 보람도 없이 허탕을 치고 있는 판에 주막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마시는 술이 거나해지자 이번엔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단출한 자들이 옆 자리와 동석하는 것은 주막의 다반사다. 마침 몸이 성치 않은 상 싶은 젊은이가 옆자리에 있어 말 거래를 텄다.
“거그, 어찌 혼자인 게벼?”
“………………”
“아~ 말을 걸면 받어야지 못 들응 거 맹키로 그런당가.”
“지 말잉가요?”
“글먼 여그 지 말고 또 딴 사람 있능가. 먼 일인지 모르겄지만서도 혼자 있을라먼 이쪽으로 땡겨 앙거. 그러지 말고.”
“야~ 알겄구만요.”
“나는 목木자 승에 이름은 거수巨手라고 혀. 그냥 꺽손이라고들 부르지만.”
“야~아, 지는 박지라고 허능구만요. 승은 김가를 쓰고요.”
“박지? 엇다 이름 한 번 좋네 잉. 그렁게 금박지다 이말이지?”
“헤헤헤. 다들 그리 부르지라우.”
“자 자 여그 탁배기 한 잔 받고 얘기 혀. 근디 멋 땜시 장에는 왔당가?”
“보먼 모르겄능가요? 병정 나갔다가 다리 빙신 되아서 시방 고향 가는 길 이구만이라우.”
“병정? 그러먼 쌈터에서 쌈 허다가 상했단 말이여? 근디 어디서 쌈혔어?”
“내~ 참, 혹여 황산뻘 쌈이라고 들어봤능가요? 아 거그서 흑쌍치 장군 아 래 있었는디 거지반 다 죽고 게우 목숨 건진 사람은 몽땅 포로로 잡혔구만요 잉. 지는 다리 다쳐서 절룩거린다고 빼주는 바람에 죽을 고생 험서 여그까지 왔어라우.”
“흑쌍치 장군이라고 혔능가? 흑쌍치가 아니고 이름이 자자한 흑치상진가 먼가 아녀?”
“야아, 그렇구만요. 근디 우리는 그냥 흑쌍치 장군이라고 부른당게요. 아~, 지 술도 한 잔 받으실랑가요?”
“그려 그려, 근디 고생 많이 혔구만. 그리도 이잉,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응 게 다행이여. 자아 한 잔 더 들게나.”
“야~아 그러지요. 지가 황색군 흑쌍치 장군 아래서 깃대 잡는 노릇을 혔는 디, 장군만 따라다닝게 엥간하면 쌈은 안 붙는디 전령이 죽어삐리는 바람 에 대신 전령 댕기다가 안 다쳤능가요.”
“근디 집은 어디여~어?”
“인자 다 왔구만요. 쬐끔 더 가서 흘떡(흘덕, 지금의 흥덕)잉게요.”
“아~아 흘떡이여? 여그서 자고 낼 일찍 나서면 해 전에 들어가겄고만.”
“그러지요 잉. 근디 지 데리고 있던 원 기수가 여쪽의 다내에 산담 서 전쟁 끝나면 서로 왔다 갔다 험서 지내자고 혔는디 이참에 소식이라도 전해야 쓰겄구만이라우.”
“아니 멋이? 다내라고? 이름이 멋이라고 허던가?”
“막수라고 허는 사람인디 지한테 성처럼 잘 해주었지라우.”
“막수? 그러먼 막손이 아녀?”
“야아, 맞능구만요. 거그서도 막손이라고 불렀시우.”
“으 응? 그러먼 막손이는 지금 어디 있능겨.”
“ ………………?”
“앗다, 이 사람아! 내가 막손이 갸 성이어 시방!”
“엉? 참말로요?”
< 다음 '탈출'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