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신어산을 찾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몇 년 전 신어산을 등반한 이후 처음으로 산을 찾은 것이다. 마음은 꿀떡같았지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산을 찾기가 싶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기어이 산을 오를 작정으로 신어산입구 주차장에 차를 정차했다.
열흘 전쯤에 평생처음으로 마트에서 등산화와 등산용 점퍼를 구입해두었던터라 폼만큼은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영락없는 아마츄어등산꾼으로 보일법한 차림이다.
욕심내지 말고 한발작 한발작씩 천천히 오르더라도 정상만큼은 밟아보고 내려오자는 다짐을 해보지만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화장실에 들러 볼일도보고 집에서 준비한 조그마한 생수 통에 산 입구 약수터에서 약수물도 채운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3월의 셋째 주 일요일이지만 찬바람도 살짝 부는 등 날씨가 제법 쌀쌀한 편이어서 잠바를 잠그고 준비한 수건도 목에 감았다.
산에 오르는 이들은 부부들도 있었고 친구들 그리고 연인들도 있었다. 대부분 자주 산을 찾는 이들답게 그리 힘들어하질 않았고 담소를 나누는 등 여유가 있어보였다.
정상까지는 2.2㎞라는 안내판의 내용대로 신어산은 가벼운 등산을 즐기기에 알맞은 약산이다. 대개는 한 시간 반쯤이면 정상을 오르고 내려오는 코스다. 본 등산코스 입구까지는 경사 15도정도의 아스팔트 위를 300m쯤 걸어야하는데 나는 벌써부터 숨이 차기 시작했다.
노인들도 가볍게 오르고 있는데 내놓고 숨을 헐떡일수도없고 돌아서서 산을 감상하는척하면서 나 홀로 숨을 헐떡였다. 목에 감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는 이제부터 본격등반의 시작인데 벌써부터 이래서야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 없는 나의 모습에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하고 비슷할만한 고문관 뒤를 뒤따를 요량으로 말이다. 난 종종 고속도로를 운행할 때 천천히 쉬어가고싶을땐 맨우측차선을 느린 속도로 운행하는 화물차 뒤를 따르곤 하는데 이눈치저눈치 볼필요없이 천천히 운행하기에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젊은 연인사이인지 부부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자의 폼이 언뜻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고문관으로 보이는 이들을 발견했고 그들이 먼저 오르기를 기다린 후 그 뒤를 따라 한 발작씩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고문관이 쉬면은 나도 덩달아 쉬고, 오르면 나도 오르고 하는 식으로 천천히 오르는데도 땀은 비오는듯하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500m쯤 나있는 돌계단을 오른 후에는 어묵이나 라면을 파는 휴게식당이 나오는데 그기까지 만 오르면 좀나을 거야, 어묵이라도 몇 개먹으면 힘이 나겠지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올랐다.
앞서가는 고문관도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연인되는 이에게 갖은 하소연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이 나에겐 약간은 위안이 되었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중간쯤 자란 나무를 움켜쥐고 겨우 중심을 유지한 채 숨을 헐덕일때는 그냥 이쯤에서 내려가버릴까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른 것을 위안삼고 정상까지는 다음주에 오르면 어떨까 는 생각이 언뜻 들었던 것이다.
짧은 몇 초간의 흔들림은 이내 신어산의 맑은 공기를 맡으며 기진맥진했던 기운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순간 사라졌고, 또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기다리던 휴게식당이 보였고 그곳 마당한켠에 비치된 평상에 엉덩이를 걸 친후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무지 장난이 아니었다. 고작 여기까지 오는데도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어떻게 산 정상을 밟을수있단말인가, 형편없는 나의 체력에 기가막힐뿐이었다. 하긴 마흔에 접어든 지도 세해가 더흘렀지만 술 담배는 이,삼십대버릇 그대로고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깊은 잠을 이루지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흙길이었다. 순간,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묵생각도 별로 없는지라 들고 있던 약수를 한 모금 들이킨 후 수건으로 얼굴을 여기저기 닦고는 그냥 일어났다. 웬지모르게 흙길은 편안해보였고, 꼭 정상이 아니더라도 그냥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산에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등산을 즐기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요근자에 아니 요몇년사이에 아니 어쩌면 더긴시간동안 겉돌고 있는 기분이다.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말할순없어도 내 생활에 적응을 하지못하고 여러 상황에서 여러사람들과 엇박자가 나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불면증도 깊어지고, 과음도 하게 되고, 도무지 정상적인 일상의 생활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딱히 뭐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불안감을 느낄만한 큰 걱정거리가 연속적으로 돌출하는 것도 아닌데 웬지모르게 꼬여가는 기분이다.
‘십우도’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를 잃어버린 탓일까, 진정한 자아를 놓쳐버린 이유일까, 뭘까, 나의 독선적인 성격 탓일까, 물 흐르듯 유연하지 못한 나의 생활은 분명 나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터, 그렇다면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한다. 진정한 나를 찾아야 내생활 주변과 어울릴 수 있고 나의 근원적인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을 거야, 독백처럼 끊임없는 나와의 대화를 해본다.
일체의 오염과 일체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편안한 숲속의 산길을 걸으면서, 이 맑은 공기를 맡으며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산과 더불어 사유해본다.
아하, 이제야 알겠구나, 이 많은 이들이 매주 산을 찾는 이유를 조금씩이나마 알 것 같다. 단지 건강을 위해, 단지 정상에 오르는 희열을 맛보기위해, 그것만이 다가아님을 알수있을것같았다.
자연과의 대화, 그리고 나와의 대화,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음으로 산에 오르고 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덤으로 얻어지는 자신의 건강과 정상에 올랐을 때의 희열이 있음으로 많은 이들이 산을 좋아함을 어느덧 나는 알 것만 같았다.
그래, 앞으로 매주말마다 산을 찾자, 자아의 발견이 어디 하루아침에야 가능하겠나마는 매주 산에 오르고 이 맑은 공기를 느끼며 끊임없이 산과 대화를 해보자, 끊임없이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보자, 그러다보면 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되겠지, 십여년을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불면증도 치료할수있겠지,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내가정과 더불어 유연하게 잘사는 지혜도 배울수있겠지하는 생각을 해본다.
몇 모금의 약수도 마시며 쉬엄쉬엄 올라온 산길은 어느덧 정상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산하를 바라보니 사람들의 얼굴에도 평화가 가득하고 내려다본 김해평화도 평화롭기가 그지없다.
다음주에는 애들 엄마와 아이들도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닭도 한 마리 튀기고 김밥이랑 과일도 조금준비해서 이 평화로운 신어산 정상 한 편의 평지에 돗자리를 펴고 우리아이들이랑 이 아름다운 산하의 평화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