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면 소재지 광정 면 사무소에서 동쪽으로 300m지점에서 어물리가 시작 된다 한일 합방 이전 까지는 어무실 이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어무실 입구에 조그마한 호수가 있고 호수가에 정자가 있었는데 지나가든 과객이 이곳에 머물면서 어무실 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호수에 많은 물고기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고기 어자를 따고 이마을 에는 국사봉이 두군데가 있는데 이 호수에 국사봉에 그림자가 꽂갈을 쓰고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하여 춤출 무를 따고 이 마을 안에는 넓은 들이 있어 곡식이 풍부 하다고 하여 열매 실자를 따서 어무실 이라고 이름 하였다고 한다 .한일 합방이 되면서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하여 지금 에 어물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마을 가운데를 중심으로 아래 쪽에 있는 동내를 아랫 마을 이라고 부르고 양지 쪽에 있는 동내를 양짓말 이라고 하였으며 그늘진 음지 쪽에 있는 동내를 음지말 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도 에도 그렇게 표기를 하고 있다 .
광정에서 들어 오면서 광정과 어물리 경계에서 약 200m 쯤 들어오면 동쪽으로 넓은 고랑이 하나 있는데 이고랑을 쇠내골 이라고 불러 오고 있으며 년도는 아무도 아는 분이 없으나 이곳에서 쇠가 나왔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
이곳에서 웃쪽으로 조고마한 골이 하나 있는데 다리미 골 이라고 한다 이곳 지형에 모양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다리미 처럼 생겼다고 하여 다리미 골 이라고 하였으며 이 다리미 골 하고 구자골 하고 경계로 높고 커다란 산등이 하나 있는데 비믿산 이라고 불러 오고 있다 이 산등성이 모양이 마치 커다란 말 안장처럼 생겨있어 이곳에 묘가 있다 이묘는 구병사에 묘라고 하는데 전하여 오는 말에 의하면 지금에 병사구 사령관쯤 된다고 하며 구 병사는 살아 있을 때도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하며 왼쪽 비탈에 칼 바위라고 부르는 길게 늘어선 바위가 있어 지금도 말을 타고 옆에는 긴 칼을 차고 있다고 전하여 오고있다 .
어물리 중앙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벋어 나간 골이 있는데 구자골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고랑에는 명당 자리가 한군데 있는데 이곳에 조상에 묘를 뫼시면 아홉명에 아들을 낳아 모두 벼슬에 오르는 자리라고 하는데 아무도 그곳을 찾지 못하고 지금 까지 전설로만 전하여 오고 있으며 지도에 구자곡 이라고 표기를 하고 있다 .지금은 구자골 중앙에 소류지를 필자가 마을 리장을 하던 1979년에서 1981년 까지 무려 3년에 걸처 이마을에 숙원 사업을 성공리에 완성하여 소류지에는 맑은물이 가득히 고여 마침 호수를 연상게 하고 물고기도 많아 주변에 강태공 들이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어떠한 한발이 온다 하여도 능히 이겨 낼수있는 힘이 있어 아래 넓은들에 는 여름에는 파란 물결이 넘실 거리고 가을이면 황금 물결 파도치는 어무실을 재현하여 놓은듯 합니다 .어물리 중앙에서 북동 쪽으로 올라가면 할미댕이 고개가 있는데 이고개 중턱에 산이 할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형 이라 하여 할미댕 고개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며 또 이고개를 호령 고개 라고도 한다 또 이고개를 사기실 고개 라고도 하는데 이고개를 넘으면 사기실 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에 지명은 연기군 전의면 금사리로 되어 있다 .사기실 고개 초입에는 자기를 구어내던 자리가 있는데 전하여 오는 말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500 여년 전 고려 말에서 이조 초에 분청 사기 가마터 라고 하는데 지금도 그곳에는 분청사기 깨어진 부스러기 가 많이 출토 되고 있으며 원료로 고개 중턱에 하얀 백토가 길 바닥에 깔려 있는데 이것을 원료로 하여 분청 사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도자기가 고개를넘어 사기실로 나갔기에 금사리가 옛날에는 사가실로 불러온 것으로 추측이된다
지금부터 약 40 여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당시 사기실 고개 아래서 농사일을 하다가 우연히 조그마한 청사기 한 조각을 발견 하였는데 파란 청사기 안쪽에 물고기가 헤엄 치는 듯한 무늬를 보았는데 그 즉석에서 짧막한 시 한수를 남기고 버린것이 지금에 생각하니 많은 후회가 되지만 그때 그시를 이에 소개를 한다면
파란 청파에 한폭에 그림고기
맑은 호수에 너울 따라 춤 추는듯
조상에 얼인 전설 실화에 비쳤도다
이시는 이미 문사에 올라가 있읍니다 .이 사기실 고개에서 등성이 하나를 비키면 쌍가마골이라는 험한 골이 있는데 아주 오랜 옛날에 이곳에 쌍가마가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골을 쌍가마 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이곳에서 삼구나미를 거처 즘골이라는 길다란 골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그릇을 구어 냈다고 하며 옛날에 그릇 굽는곳을 즘이라고 불러와 이곳 즘골에서도 그릇을 구어 내던 가마터가 있었는데 사기실 고개와 연개하여 분청사기 공장이 있었읍을 뒷바침하고 있다 이 즘골에도 소류지가 설치 되는 바람에 그릇을 구어 내던 즘터는 오두 없어 지고 어물리 어느곳을 가나 땅을 파 헤치면 분청사기 파편이 출토 안 되는곳이 없으니 어무실에 대단위에 자기 공장이 있었읍을 말하여 주고 있다 . 이곳에서 마을 쪽으로 조금 내려 오면 노심 터골 이라는 조그마한 골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에 노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하며 50 여년전에 들었던 이야기로 숫을 구으려고 가마터를 파는데 쇠로 만든 솟뚜껑이 나왔었다고 하였다 .조금더 마을 쪽으로 내려 오면서 오른 쪽으로 장가제골 이라는 양지 바른 곳이 있는데 이곳에도 장씨가 살아 부자 였다고 하는데 도둑이 심하여 아곳을 버리고 떠났다고 하며 양짓말 뒷쪽에 부처제골 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절이 있었으나 빈대가 너무 많아서 못견디고 떠났다고 하며 동혈사가 이곳에서 옮겨간 절이라는 분명 하지 않은 설도 있었다 절이 있었다는 곳에는 절이 있었다는 흔적은 없고 돌 무더기만 홑어져 있는데 지금도 돌틈에 빈대들이 득실대는듯하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전설이 많이 있으나 이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가고 세월이 더가면 이나마에 전설도 모두 지워 질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옛날 어른들 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를 되 새기면서 이렇게 나마 엮어 보았다
석산 이규석 을유 년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