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깊은 밤이 찾아왔다. 그러나 어둠은 우리를 꽁꽁 묶지 않는다. 우리의 육체는 오늘의 낡은 관념을 벗어던지고, 내일의 새로운 관념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나는 맺음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인생은 계속되는 시작일 뿐이다. 정신과 육체에 여유는 있을지라도, 공백은 없다. 겨울 밤 대지와 하늘 사이에 어둠이 싸였듯이. 자연 역시 영원한 영혼의 휴식이 오기 전까지 끝없는 시작을 반복한다. 혹자는 인생의 여유와 휴식이 없다면 또다른 시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식은 영혼의 공백이 아니다. 단지 겨울 동안 육체에 들러붙은 낡은 관념들을 찬바람에 걸러내고, 새로운 관념을 싹틔우기 위한 준비일 뿐이다. 겨울에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는 건 틀린 말이다. 겨울잠을 자는 저 멀리 산다람쥐도 언제나 영혼의 눈은 깨어있다. 오늘 저 어둠 속 달이 지고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겨울, 특히 밤에 인생의 리듬이 움츠러드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작은 리듬 속에 설레임이 있다. 새벽에 육체의 눈을 감은 채 우리는 몽상에 빠져든다. 그 몽상 속에는 과거의 후회가 있을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대가 설레임은 아니다. 비록 미래에 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룻밤 몽상이 기억에 의지하는 것이라면, 과거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미련일 뿐이다. 여하튼 길든, 짧든 그 몽상을 통해 우리는 낡은 관념을 벗는다. 계속되는 시작 속에 내려진 오늘에 대한 설레임 또한 결국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말한 몽상 속의 기대가 아니라, 하루가 지날 수록 변화하는 능동적인 정신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난 날의 낡은 관념에 의지해서도 안되겠지만, 지나치게 큰 설레임을 품어 정신의 리듬에 무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는 유명한 말을 가끔 떠올려야 할 것이다. 백사장의 모래알들은 끊임없이 바닷물을 먹지만, 그들의 빛은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항상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라는 보물을 지키기 위해 육체라는 성을 쌓았다면, 그를 지키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계속되는 시작에 있어 나는 사람을 찾고, 자연을 찾고, 내가 아닌 무엇이든 또다른 것을 찾는다. 그렇게 선택한 나의 구원들은 나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내가 지켜주어야 할 또다른 보물이 된다.
현대인-나 역시 그 범주에 속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수동적인 인간임에 불과할 것이다-들의 수동적인 삶 속에서 고정관념은 분명 사라져야 할 정신의 요소이다. 그러나, 정신에는 공백이 있을 수 없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낸다'라는 속담처럼, 인생에서 박힌 돌이란 있을 수 없다. 밤이 너무 깊어졌다. 영혼이 숨쉴 수 있게, 육체를 잠시 내려놓도록 하자..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허무함 때문에 끄적여 본 글입니다. 제가 조금 더 자라서 성취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래요. 그 때에는 이 글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완전함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부족하니까 사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