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들고 엘머가 붙잡혀 있는 장소로 가보니 과연 후치발 아저씨가 말한 대로였다. 엘머와 덴버 아줌마는 치열하게 옷 다툼을 하고 있었다. 벗겨지지 않으려는 자와 벗기려는 자. 그 다툼은 마치, 제 1차 종족 전쟁과 버금가는 치열함과 후끈후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웃긴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다 큰 청년이 한 중년 여성에게 옷이 벗겨지지 않으려고 묶여있는 손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라니! 물론, 그 중년 여성이 우락부락한 몸매의 소유자인 덴버 아줌마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한다. 멀리서 보이는 것을 설명하자면 아이의 옷을 벗기려는 엄마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옷을 벗기 싫은 아이처럼 보였다.
둘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멀뚱멀뚱 가만히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덴버 아줌마는 강렬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눈에서 광선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맘 놓고 편하게 웃질 못하고 고개를 돌려 숨죽여 웃고 있었다.
엘머의 하의는 이미 벗겨져 속옷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격렬한 저항 덕분인지 상의는 반쯤만 벗겨져 있었다. 덴버 아줌마를 상대로 옷이 전부 다 벗겨지지 않은 거면 다행인거다.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딱 보기에도 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내가 여기서 도와준다고 해도 다시 저 옷을 입고 다닐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음. 지금 내가 여기에서 결론을 내리자면 아마, 다시는 저 옷을 입지 못할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뭐, 누더기 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밤에 체온은 지켜줄 수 있겠지. 그 이상은 내가 알 이유가 없다. 알 필요도 없고.
일단 모두를 주목시켜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옷을 벗기는…… 좋게 봐줘서 벗기고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저건 옷을 찢고 있는 거다. 돈이 없으니 옷이라도 빼앗는 다면서 저게 뭐하는 짓인지. 저걸 빼앗는다고 해도 걸레로밖에 못 쓸 것 같다. 뭐 이것도 내가 알 필요는 없다.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쳐다보았다. 덴버 아줌마와 교섭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물건. 이걸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간절한 바람으로 이 안에 중요한 것이 들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중요한 것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최악의 경우 괜히 나섰다가 되려 덴버 아줌마에게 당할지도 모르겠다. 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일단, 모두가 나를 쳐다보면 엘머의 옷을 걸레로 만들고 있는 덴버 아줌마가 멈출 것 같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지금 엄청 피곤하긴 한데 이제 마지막 이니까 힘을 내야지.
“잠시 만요!”
나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거 부끄러운 데? 가방을 들고 천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엘머는 여전히 덴버 아줌마 밑에 깔려있었다. 오늘 참 오랜 시간 동안 깔려있는 것 같다. 저러다 뼈 부러지는 건 아닐지 심히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 압사할 수도 있겠다. 최초로 사람에게 깔려 죽은 성직자가 되는 건가?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엘머는 잠시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가 안 되겠지. 빵을 들고 도망친 아이가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말이야. 멀리멀리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그것도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가방을 들고 왔으니까. 내가 저기에 있었어도 황당할 거야. 이제 내가 덴버 아줌마하고 한패라는 것을 알아버렸겠지? 그래도 어쩌겠어. 널 도와주러 왔으니까 감사해 하라고!
내 예상대로 엘머는 잠시 헛웃음을 치더니 화난 표정으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 너 이 자식! 캬스발! 빵 가져와!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 아주머니! 저 녀석이에요! 저 녀석이 빵을 가지고 갔다고요!”
와.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직도 빵 운운하고 있다. 제 발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이해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어우! 무서 워라. 성직자 주제에 뭐가 이리 입이 험한 거야? 감히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뭐? 야! 이 자식? 저 녀석? 황송해서 절을 하여도 모자란 판에 저게 뭐하는 거야?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은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착한 것도 죄라면 나는 중죄다!
나는 엘머가 잘 볼 수 있도록 가방을 흔들었다. 여기까지 가지고 오면서 느낀 거지만 참 가볍다. 나름의 예의라고 생각해서 안은 보지 않았지만 내 예상으로는 아무것도 들은 것 같지가 않다. 뭐, 그래도 덴버 아줌마가 돈줄이라고 생각하고 붙잡은 여행자이니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 혹시 1펜스가 하나 더 들어 있는 건가? 윽. 그럴 줄 알았으면 가방을 한 번 들쳐보고 오는 건데 말이다.
“야. 인마! 캬스발! 그거 가져와!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거야!”
내가 가방을 휘휘 돌리니 엘머가 소리쳤다. 아이구야. 귀청 떨어지겠네. 목청 좋은 돼지에 이은 목청 좋으신 성직자 분이다. 혹시, 주인 되시는 건가? 그나저나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걸 땅바닥에 버리고 가? 거 참 중요한 거 들었나 보네. 바닥에 버리고 가는 걸 보면 말이야. 그래서 바닥에 놓고 간 거겠지? 아무도 못 보도록 말이야. 퍽이나 중요한가 보네.
뭐, 그래도 아무리 가벼운 가방이라도 일단은 엘머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덴버 아줌마의 예감대로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엘머의 말에 나는 알았다는 의미로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고 말하는 것도 귀찮았다. 졸려 죽겠는데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스스로가 대견했다. 으! 이 옥살이를 해도 모자랄 착함이여! 나는 왜 이렇게 착한지.
덴버 아줌마를 쳐다봤다. 이상하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씩 웃어 보이셨다. 이 가방에 중요한 것이 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나보다.
그 누구라도 엘머의 저런 행동만 봐도 알아차리겠지만 말이다. 나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제 이 가방을 가지고 가서 엘머의 옷만은 남겨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나? 아니면 여기에 있는 중요한 물품을 보고 엘머는 이제 보내달라고 해야 하나?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안 돼.”
엘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말린다 하더라도 어차피 들을 생각도 안했다. 내가 왜 이 가방을 여기까지 귀찮게 가져온 건데?
“안 돼! 그거 이 아줌마한테 가지고 오지 마!”
엘머는 덴버 아줌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다 내가 덴버 아줌마에게 조금씩 다가가자 엘머의 얼굴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캬스발! 당장 그 가방 가지고 오지 못해?”
“예. 예. 가지고 갑니다.”
왜 이 아줌마는 가고 있는데도 성질을 내고 있는 거야? 욱하는 마음에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만 했을 뿐이지 저 덴버 아줌마를 거역하는 것은 곧 생을 마감하자는 것을 알기에 시키는 대로했다. 엘머의 옷도 구해야한다는 이유도 있고 말이다. 제대로 말하자면 우리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신고해줘야 하기에 도와주는 거지만 말이다.
“안 돼! 캬스발 지금 당장 그 가방 가지고 도망쳐!”
내가 덴버 아줌마에게 거의 다다르자 엘머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 덴버 아줌마와의 목청 싸움이 시작됐다.
“빨리 가져와!”
“안 돼!”
“가져와! 지금 당장!”
“빨리 그거 가지고 도망…….”
엘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주위에 가만히 있던 한 아저씨가 엘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 버렸기에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게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한 건데 말이다. 뭐라고 하던지 이미 여기로 오면서 이 가방은 덴버 아줌마에게 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흥분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괜히 자기만 힘 빼는 거지 뭐.
“예. 예. 가지고 갑니다요.”
가볍기 그지없는 가방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덴버 아줌마에게 갔다.
엘머의 작은 가방을 덴버 아줌마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살짝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엘머는 온몸을 비틀며 항의를 했지만 아저씨들이 누르고 있어서 별다른 효력을 미치지 못했다. 아줌마는 가방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인상을 썼다. 그러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가방을 거꾸로 들어 탈탈 털었다. 나오는 것은 이상한 두루마리종이 하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것 밖에 없는데?”
덴버 아줌마는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야, 왜 지금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혹시, 내가 훔쳤다고 의심하는 거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여기까지 이 가방을 찾아서 가지고 온 것을 감사하지 못할망정!
으아악! 내가 억울해서! 진짜 이번 일만 끝나면 지금 가지고 있는 1펜스를 가지고 이 마을을 떠나고 말거다! 그래도 일단은 먹이 사슬의 위에 있는 덴버 아줌마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혹여 라도 잘못 되어서 1펜스를 빼앗기게 되면! 상상하기도 싫다. 이대로 화를 내게 만들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에 실실 웃어보였다.
“헤헤. 아줌마 왜 그러세요?”
“캬스발. 이건 진지하게 묻는 거란다. 혹시 가방 안을 본 적이 있니?”
“설, 설마요. 아주머니. 혹시 제가 가방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져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글쎄. 혹시 모르는 거지.”
아줌마는 다시 가방을 뒤적거리셨다. 그러다 가방을 땅바닥에 던졌다. 살짝 흙먼지를 일으켰다. 가방에서 시선을 돌려 덴버 아줌마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덴버 아줌마는 화난 것처럼 보인다.
갑자기 왜 화난 건데! 애써서 졸린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가방을 들고 왔는데! 진짜 가방에 아무것도 안 들어 있다고 화난거야? 혹시, 화나있는데 쓸모없는 가방을 들고 와서 내가 더 화나게 만든 건가? 진짜로 내가 훔쳤다고 믿고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사람이 단순해! 아마,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에, 에이. 덴버 아주머니. 설마. 제가 진짜. 제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가방을 열어볼 생각이나 해봤을 까요.”
살기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여기서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엘머를 도와서 이 마을을 빠져나가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때를 노려 1펜스를 가지고 빌어먹을 마을을 탈출을 해야 하기에 지금은 참아야 한다.
이 빌어먹을 가방에 진짜로 아무것도 안 들어있을 줄이야! 설마, 설마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이후는 생각 안 해봤는데! 지금 이 순간이 최대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잘 참아왔는데 이 순간을 참지 못하랴! 그래. 난 캬스발 이니까! 가능하다 이거야!
잽싸게 무릎을 꿇었다. 그래. 이건 아줌마가 좋아하니까. 남을 깔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주위에 만든 사람들이 있었지만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데 이깟 무릎이 대수인가! 어째서 망할 덴버 아줌마가 내가 훔쳤다고 생각하고 단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훔쳤다면 이 빌어먹을 가방을 여기까지 가지고 오지도 않았을 거야!
“그래. 그건 일리가 있는 말이야. 네 머리로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말이야…….”
이런 나의 행동이 조금은 효과가 있었는지 아줌마의 말투가 조금은 사그라졌다. 근데 어찌 된 게 아줌마가 다가오는 폼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아줌마는 바로 내 앞까지 다가오셨다. 아줌마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살짝 웃어보였다. 그러나 다시 다가 오는 것은 아줌마의 손이었다. 젠장! 오늘만 벌써 두 번째다. 왜 내가 맞는 건데!
“어서 가지고 오지 못해?
있지도 않은 물건을 가지고 오라는 거야? 이 망할 아줌마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을 도대체 어디로 들은 거야! 사람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동물을 더 닮은 작자가! 라고 시원하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은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나는 아줌마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그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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