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거기 도둑들! 거기 서란 말이야!”
아줌마. 거기라는 말이 두 번 들어간 것 같아요. 엘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동안 덴버 아주머니를 쳐다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다가와지는 거대한 몸짓을 보면서 엘머는 비명을 질렀다.
“전, 전 도둑이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당신도 공범이지! 거기서!”
아주머니의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슬쩍 뒤를 돌아보자 덴버 아주머니는 ‘어서 오세요. 평화로운 로렌스 마을입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아줌마 그거 경계선을 표시 하는 거예요. 얼른 돌려놓고 오는 게 좋을 걸요? 그거 잘하면 벌금 물수도 있어요. 그럼 그 벌금은 제가 벌어서 내야하잖아요! 이 망할 아줌마야! 근데 아무도 신고를 안 하니까, 아니 못 하니까 상관없으려나?
팻말을 들고 뛰어오는 덴버 아줌마랑 붙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 있던 엘머는 울상이 된 채로 “나 도둑 아니라고!”라고 열심히 외치며 나를 따라서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고 그저 자신의 뒤를 추격하는 덴버 아줌마라는 존재가 무서워서 뛰기 시작한 것이겠지. 나에겐 있어서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신의 자식이라고 알려진 고귀하신 성직자 분께는 이런 조그마한 마을에서 여행도중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신기한 사건이 될 것이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 거야. 다시는 낯선 마을에 방문하면 경계를 풀어 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됐잖아? 그리고 만약 할아버지가 된다면 ‘허허. 그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 마치 멧돼지처럼 엄청나게 거대한 여인이 따라오는 일이 있었구나.’라고 손자, 손녀들한테 말해줄 기회가 오지 않겠어? 그럼 그 손주들은 할아버지를 다르게 볼걸?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말라고. 그리고 제발 그런 좋은 기억을 가지면서 나는 용서해 줘! 잡아갈 거면 나는 제발 빼놓고 잡아가! 꼭 덴버 아줌마는 잡아가야 돼! 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는 뒤를 돌아보며 엘머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엘머는 나를 이상한 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이 성직자가 신전에 이 빌어먹을 마을을 신고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냥 보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덴버 아줌마에게 큰 곤욕을 치를 수 있었기에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로 했다. 실제로 예전에 한 번 여행자를 그냥 보내줬다가 아줌마한테 된통 혼나기만 했다. 도망친 여행자가 언제 이 마을을 벌해줄지 기다렸지만 군대는 찾아오지 않았었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경험했었기에 내 일을 확실히 하기로 했다. 내 임무는 이 성직자의 체력이 다 할 때 까지 몇 번이고 마을을 빙빙 돌아 마을 어귀까지 도망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선 계획한 대로 성직자의 체력을 완전히 다 빼놓기 위해서 마을을 몇 바퀴 돌기로 했다. 곧장 사람들이 몰려 있을 마을 어귀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당하는 사람이 당황함으로써 오히려 기운이 펄펄 나는 요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이 또한 내가 경험해본 일이기에 그리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아니다.
여태까지의 희생자들은 그렇게까지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서 군대가 출동하지 않았을 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직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엘머를 이 마을에서 철저히 희생시키기 위해서 마을을 수십 바퀴 돌기로 했다. 그런데 내 체력이 엘머의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 까지 버텨줄 줄 모르겠다. 이래서 하기 싫다고 말한 거라고! 이래저래 나만 불쌍한 것 같다.
우리 마을은 너무나도 조그마해서 마을의 범위를 알려주는 장벽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덴버 아줌마가 꺼내서 들쳐 메고 있는 팻말이 우리 마을의 범위를 알려주는 것의 전부다. 그렇다고 신기하게도 위험하지도 않는다. 마을 주변의 위험한 동물들과 괴물들이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지, 아니면 우리 마을이 가난한 것을 알고 있는지 한 번도 쳐들어 온 적이 없다.
여태껏 만나본 적이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다보면 아마도 전자인 것 같다. 하여튼 마을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을 따라서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했고 일부로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기도 했다. 그래봤자 재차 말하지만 너무도 작은 마을이다 보니 별 차이는 없지만 말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때마다 폐가처럼 보이는 건물에서 한두 명의 사람들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곧장 우리를 따라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엘머는 소리쳤다.
“으아아아! 오지 마세요! 나 도둑 아니라고요!”
근데 성직자씨. 그거 알아? 당신이 그렇게 도둑이 아니라고 외쳐도 아무도 들은 척도 안 해 줄 거야. 지금 마을 전체가 한통속이 되어 있으니까.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마을이 엄청 외진데 있잖아? 내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마지막 높으신 분을 제외하고는 수도에서 더 이상 높으신 분을 아무도 보내지 않더라고. 사실 내가 생각해도 여기로 오는 건 유배지. 뭐가 좋다고 여기까지 오겠어?
그러다보니 어찌어찌 흘러가다가 덴버 아줌마를 중심으로 마을이 돌아가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저 망할 정도로 성격이 더러운 아줌마가 왜 마을의 구심점이 됐는지 이해가 안가! 물론, 내가 저 아줌마네 땅을 농작해서 먹고 산다곤 하지만! 아, 미안. 잠시 흥분했지. 우리 마을을 신고해줄 귀중한 손님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덴버 아줌마를 중심으로 마을이 돌아가다 보니 어느 샌가 마을 전체가 산적이 돼 버린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야. 내가 직접 사과할게. 그러니까 제발 우리 마을에 여행자가 도착하면 열리는 연례행사가 끝나고 나면 꼭 신전으로 돌아가면 신의 은총으로 이 미개한 마을을 구원 해달라고! 이라고 길게 한 번 말해주고 싶었지만 숨 가쁘게 뛰느냐고 차마 이 긴말을 말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짧게 내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부, 부탁해애. 엘머어!” 숨이 차오르는 것을 겨우 참아가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덴버 아줌마의 무서운 돌진과 조금씩 추가되는 시커먼 아저씨들의 무리에 지레 겁을 먹으며 뒤만 보며 뛰어오던 엘머는 내가 소리치자 나를 쳐다보며 손가락질 했다.
“야! 캬아스으바알! 헉헉. 너, 너 빵 훔쳐었어? 이 도둑노옴아! 후아. 빠알리 빵 도올려드리고 해명하라고오!”
이제야 엘머는 상황이 조금씩 이해가기 시작했나 보다. 이해력이 딸려서 나를 이 마을에서 구원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태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에 반응이 제일 느린 것 같아!
그런데 이봐. 성직자군.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대답이 아니었잖아. 사람이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 뭐? 도둑놈? 그게 무슨 인격비하 하는 소리야!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무례한 언행과 행동도 참아주기로 할게. 내가 충분하게 설명을 하지 못했었으니까. 이해심 많은 내가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러니까 다시 말할게. 잘 들어두라고.
“엘머어어! 지인짜로 부탁할게에!”
방금 전 보다는 길게 이야기 했다. 무려 두 단어에서 세 단어로 늘어난 것 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 문장에는 자세히 들어보지 않더라도 나를 용서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도면 잘 알아 두었겠지. 말도 하면서 뛰자니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뛰는 것을 포기하고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돼서 끈적끈적해지기 시작했다. 뭐, 어차피 이제 마을의 어귀도 보이고 슬슬 빠져야 할 타이밍이니까 괜찮을 것이다.
엘머의 체력이 저질이어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저번과 비교하면 설렁설렁해도 되잖아! 저번에 왔던 여행자는 어디서 힘을 꽤나 쓰던 여행자였는지 지칠 때까지 마을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그 여행자는 날 잡고 해명하려고 했는지 칼 같이 생긴 것을 들고 위협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지막은 거의 잡힐 뻔했지. 아마, 난 살기 위해 뛰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을 상상만 해도 온몸이 다 소름이 끼친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이제 엘머와의 간격은 굉장히 벌어져 있었다. 엘머도 힘이 드는지 뛰는 것을 포기하고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향해 엘머가 손을 뻗으며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뒤에는 여전히 덴버 아줌마가 평화와 경계선을 상징하는 팻말을 들고 네발로 엉금엉금 걸어오고 있었다.
우와. 아줌마. 드디어 가축이 되셨군요! 축하합니다. 드디어 네발로 걷기 시작하셨군요! 언뜻 보면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인 것 같기도 하군요! 인류의 진화일까요? 아줌마는 정체성을 찾아서 기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굉장히 유감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런 일이 가끔 있을 때 마다 생각이 드는 거지만 저 아줌마는 돈과 관련된 일이라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 아줌마를 필두로 한 뒤로 보이는 수십 명의 시커먼 사내들이 있었다. 마을을 돌때마다 추가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술에 취해 잠이든 줄 알았던 할렌 아저씨도 하나 밖에 없는 팔에 술병을 들고 엘머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저씨. 그거 연기였어요? 말도 안 돼! 평소랑 똑같았었는데?
아저씨는 비틀비틀 뛰시더니 이내 곧 넘어지셨다. 여태까지는 술주정이셨군요. 죄송해요. 아저씨가 연기자인줄 알았네. 어찌되었든 간에 마을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들은 대부분 나온 듯 했다. 그래봤자 25명이 체 안 되지만 말이다.
마을의 경계를 알리는 또 다른 팻말이 보이는 부근에서 적당히 빠질 곳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면서 아예 멈춰 섰다. 그러자 엘머도 똑같이 멈춰 섰고 그 뒤를 따라오던 덴버 아주머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도 같이 멈춰 섰다. 모두가 힘이 드는지 암묵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동의한 것 같았다. 엘머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더니 소리를 질렀다.
“야아! 캬스발! 도오온! 후우우. 내 도오오온! 내 도오온 내놔아! 켁켁.”
엘머는 소리를 지르다 숨이 차는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저 망할 성직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 번 남에게 준 돈은 더 이상 자신의 돈이 아닌 줄을 알아야지! 성직자가 돈을 밝히는 거야 뭐야? 그나저나 분명히 엘머가 하는 말을 덴버 아줌마도 들었을 것이다. 저렇게 크게 말했는데 듣지 못한 사람은 일어나려고 하는데 비틀거리면서 여전히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할렌 아저씨뿐 일 것이다.
아직 정확한 단위를 이야기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만약에, 돈에 환장하는 덴버 아줌마가 1펜스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엘머를 뒤쫓아 가기보다는 지금 당장 나를 쫓아와 돈을 강탈해 갈 것이 확실하다.
내 역할은 이제 여기에서 퇴장하면 다 끝인데 엘머가 날 더 이곳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망할 놈! 순식간에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무시할 것인가, 그냥 돈을 줄 것인가! 무시하면 덴버 아주머니가 나중에 추궁할 것이 분명하다.
먼 옛날 신의 계시를 받아 최초의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키에세르 황제도 이 정도로 고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잇! 어쩔 수 없지! 달라면 다시 줘야지 뭐 어쩌겠어! 나도 엘머와 마찬가지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더러워서 주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엘머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 질렀다.
“내 도오온 내놓으라고오! 으아아! 힘들어어어.”
“치사해서어. 헉헉. 주, 주면 될 거 아니야!”
으아! 지금 준다니까! 성질도 참 더럽다. 하지만, 차마 1펜스를 다시 줄 수 없어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내 전 재산인 동전 네 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덴버 아줌마가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흔들었다. 네발로 어기적어기적 열심히 걸어오면서도 눈으로는 내가 흔드는 손을 쳐다보고 있는 아줌마의 강렬한 눈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에서 뭐 나올까봐 겁난다. 의식적으로 아주머니와 한 번 눈을 마주치고 끄덕이면서 4메소를 엘머에게 내던졌다. 그래도 4메소면 빵 하나는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다.
지금은 덴버 아줌마가 만족할지는 몰라도 후에 보고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엘머가 1펜스를 줬다고 주장해도 나는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지금 당장 나만이 아는 곳으로 가서 숨기면 되니까! 이정도면 수지맞는 장사임이 분명하다.
네 개의 동전 중 하나의 동전에 맞은 듯, 엘머의 이마가 뻘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마를 부여잡으면서도 땅에 떨어진 4메소를 주어 들었다. 손바닥에 동전을 올려놓은 엘머는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게 아니잖아!”
말을 마친 엘머는 내가 던져준 동전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아니라면서 다시 넣는 건 뭔데! 동전 네 개랑 한 개중에 네 개가 더 많으니까 그걸로 만족하라고! 돈을 밝히는 성직자 주제에!
“뭐가 아니야! 네가 준 돈 그대로 돌려줬다!”
내가 말을 마치자 잠시 동안의 휴식기가 끝났는지 엘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덴버 아줌마를 필두로 한 마을 사람들의 무리도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꿀맛 같은 휴식에 어느 정도 숨이 진정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기에 다시 마을의 경계를 향해 뛰어갔다.
내가 뛰기 시작하자 엘머도 욕을 하며 뛰기 시작했다. 들리는 것에 의하면 나를 저주하는 것 같다. 성직자의 저주는 꼭 실현된다는 이야기를 할렌 아저씨가 했던 기억이 있다. 할렌 아저씨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으으으! 저 망할 성직자가! 신이시여! 전 착하게 살 테니 저 망할 성직자의 말은 무시해 주세요! 그 뒤에 있던 덴버 아주머니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엘머를 욕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덴버 아주머니는 아직도 힘이 드는지 네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용맹스럽고도 저돌적인 한 마리의 멧돼지와도 같았다. 와우! 아주머니 이제 네발로도 뛰시는군요! 정말 축하드려요!
“안 돼!”
마지막 죽을힘을 다하여 내가 조금 더 속도를 높이자 엘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경계 근처에 다다라서 뒤를 돌아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쳤는지 대부분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터덜터덜 걸어왔다. 덴버 아줌마는 나에게 옆의 풀숲으로 빠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제 길고 길었던 빌어먹을 마을의 빌어먹을 연례행사를 완전히 끝낼 생각인 것 같다. 마침, 내 체력도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기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면서 뒤를 따라오던 엘머에게 이 마을을 기억해달라는 의미로 “안녕.”이라는 아름다운 인사말과 함께 작별 인사로 손을 흔들어 주고는 풀숲으로 몸을 틀었다.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까지 황당한 일을 겪었는데 까먹을 사람은 없을 거다.
아마 ‘안 돼!’라는 말이 의식이 있을 때, 마지막으로 내지른 비명일 것 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못하겠지. 저 말이 허무한 말이 유언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네발로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던 덴버 아주머니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갑작스레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서 엘머를 육중한 몸으로 덮쳐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쿵’이라는 소리와 함께 조금 과장을 하자면, 천둥이 치는 듯 한 엄청난 소리였다. 덴버 아주머니 주위에는 거대한 먼지 덩어리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엘머는 비통한 표정으로 내가 있는 쪽으로 손을 쭉 뻗었다. 몸을 잠시 동안 부들부들 떨더니 끝끝내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엘머 위에는 덴버 아주머니가 있었다.
거대한 동물이 사람을 덮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되는 참으로 보기에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아아. 친구여 이렇게 가버리는구나! 잘 가시게 친구여.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
행여, 죽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는 생각에 풀숲으로 들어갔다. 그전에 이대로 죽으면 곤란하다고! 이 마을을 신고해 줘야 한다고! 내 마음대로 덴버 아줌마의 엄청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잠시 기절해버렸다고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