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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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뉴스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혼란하다느니 탄핵이 기각되서 노무현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했다느니 하는 볼 게 없는 소식들 뿐이었다. 나는 TV를 끄고 책상에 가서 앉은 후 노트를 꺼냈다. 겉표지에 바보들의 세상이라고 적혀 있는 두꺼운 노트였다. 이제 이 글을 끝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어머니는 정연이를 땅에 묻고 온 후로 생활을 다 때려치고 뺑소니차를 찾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어머니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가망없는 일에 매달리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몇 번이고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니가 오빠 맞냐고, 오빠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면서 뺑소니차 찾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새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말했다. 도대체가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새 아버지를 보면 정말 답답할 뿐이었다.
매제는 내 동생이 남기고 간 딸을 잘 키우고 있다. 하지만 매제는 역시 변함없는 바보였다. 매제는 딸을 키우면서 이 다음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엄마같이 이쁜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이 다음에 아는 건 햄버거 밖에 없는 동생 같은 바보가 되라는 것인지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동생을 향한 매제의 사랑이 진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감동했다. 어쨌든 간에 매제는 앞으로 재혼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면서 딸한테 온 애정을 쏟아붓고 있다.
달타냥을 죽이고 징역 3년형을 받은 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현준은 도무지 감옥에 있는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현준은 밖에 있을때랑 마찬가지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였는데 3년이라니? 형이 너무 짧아?’ 하며 헛소리를 했다. 나는 가끔 현준이한테 찾아가서 ‘도대체 니가 쓴 그 말도 안 되는 소설은 무슨 뜻이야?’ 하고 물었는데 그럴 때마다 현준은 ‘명작은 원래 심오한 거야. 넌 그 심오한 뜻을 알려면 아직 멀었어.’ 하고 말 같지도 않은 대꾸를 했다.
착한 현준이 누나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현준이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고 내 처남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엔 아직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남들이의 국수집은 연일 사람들로 붐볐다. 아무리 그래도 국수값이 1000원이었고 매주 토요일 날 문을 닫는데 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스테리였다. 아, 그리고 남들이의 부부에겐 며칠전에 아기가 생겼다. 그 아기는 입양한 아기였다.
“입양이라니? 어떻게 된 거야? 정숙씨가 앞으로 아기를 못 낳을 사람도 아니잖아?”
“남들이 하는 일은 안 하겠다고 했잖아? 앞으론 남들이 안 하는 일만 할 거라고.”
정말 기가 막혔다. 어쨌든 간에 남들이-아니 이젠 안남들이라고 해야 하나?-는 더 이상 남들이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안남들이 사상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영어밖에 모르는 바보마누라 채신은 요즘들어 자꾸 아기를 키우기에는 우리나라보다 영국이 좋다며 영국으로 이민가자고 조르고 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척 고민하고 있다. 장애아인 우리 아기를 키우는데는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과 복지가 잘 되어있는 영국이 훨씬 나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걱정이었다. 비행기는 정말 두 번 다시 타고 싶지 않다.
내 이야기는 이제 다 끝났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행복하냐고?
글쎄, 나는 아직 인생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언젠가 현준이가 나한테 해 줬단 이야기만이 떠오를 뿐이니 그 얘기로 답을 대신하겠다. 현준이 가장 존경한 작가는 템즈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였다. 현준은 언젠가 나한테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얘기해 주었는데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한테 우리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을 거라는 유서를 남기고 템즈강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행복하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제 내 이야기는 정말로 다 끝났다. 난 이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오래전부터 당신들한테 꼭 한 번 묻고 싶었다.
당신은 지금 왜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