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만 사는 미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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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치소로 현준이를 찾아갔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그런 곳엔 가고 싶지 않았는데 살다보니 그런 곳에도 다 가 보고 정말 세상일이란 한치 앞도 알 수가 없다. 현준이의 얼굴은 너무 밝았다. 사람을 죽여 놓고 저렇게 밝은 얼굴을 할 수 있다니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인간인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주 스타가 다 되었더라. 대체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 거야?”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 못 봤어.”
“봤어.”
“봤다는데 그런 소릴 하냐? 거기 달타령을 사랑해서 죽였다고 써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넌 정말 멍청하다니까. 그건 그렇고 말야. 판사가 몇 년 형을 선고할까? 설마 사형은 아니겠지. 사람을 많이 죽인 것도 아니고 한 사람 죽인 건데. 게다가 사랑해서 죽인 거라고.”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한참을 빤히 현준이를 쳐다보다가 말을 꺼냈다.
“오래 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도대체 넌 왜 사냐? 아니, 너 제 정신이긴 하냐?”
“넌 어떻게 생각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미쳤다면 세상도 미쳤다는 거지. 인터넷이 미친 나를 스타로 만들어 줬잖아? 정말 대단한 인터넷이야. 안 그래?”
정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만 갈게.”
“그래. 아 저기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나 재판 받고 감옥에 들어가면 면회 한 번 와 줘라. 그 때 쯤이면 이전에도 나온 적 없고 앞으로도 나올 수 없는 전무후무한 명작이 완결될 거 같으니까.”
“또 헛소리냐? 솔직히 말해 그 소설 한 문장이라도 썼냐?”
“아니. 아직 한 문장도 못 썼어. 하지만 그 때쯤이면 다 완결될 거야. 그러니 꼭 와야 돼.”
“미친 놈.”
나는 현준을 보며 한마디 하고는 구치소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왔다. 학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채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막 없는 영국 영화를 보지 않고 ‘김현준, 그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특집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사회자와 전문가들이 나와 현준이가 일으킨 사회의 파장에 관해 진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TV앞에 가서 앉았다.
“저 인간들 참 한심해. 아직도 그 형편없는 거짓말쟁이가 왜 사람을 죽였는지 모르다니 말이야.”
“그럼 넌 알고 있단 말야?”
난 놀란 얼굴로 채신이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 의문이 풀릴지도 몰랐다.
“당연하지. 그 인간은 영어를 못해서 그런 거야. 아니 영어를 배우려 하지도 않았다고.”
정말 얼마 후면 태어날 우리 애가 걱정이었다. 이런 바보같은 여자가 엄마라니? 나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TV로 눈을 돌렸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칼로 찔려 죽였다. 김 교수님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더 보고 자시고 할 거 없어요. 김현준은 살인자입니다. 한 명을 죽이든 열명을 죽이든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그게 만고불변의 진리죠.]
[하지만 경찰은 한미희씨가 반항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건 한미희씨가 김현준씨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보아지는데요.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김현준한테 열광하는 것 같은데요. 참사랑을 잃어버린 시대에 참사랑이 무언지를 아는 남자 김현준이라는 카페에는 이미 회원수가 5만이 넘었다고 하는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한미희씨가 반항한 흔적이 없는 것은 한미희씨가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약하거든요. 당연히 반항할 수가 없는 거죠]
난 기가 막혔다. 도대체 저렇게 멍청한 작자가 어떻게 전문가일 수 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정말 못 봐 주겠군. 저 멍청한 인간도 영어 공부를 안 한 게 틀림없어.”
채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AFKN으로 채널을 돌렸다. 오늘은 자막 없는 영국영화 비디오를 빌려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담배 필려면 나가서 펴. 며칠 있으면 왜 낳을 부인 앞에서 담배라니? 니가 제 정신이야?”
“담배 피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 정 억울하면 너도 담배 피면 될 거 아냐?”
“뭐, 뭐가 어째?”
채신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나를 째려 보았다. 왠지 채신이 옆에 있는 단단한 베게가 날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 아니야. 내가 나가서 피지.”
나는 방을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모금 빨아 마신 후 내뿜었다. 시원했다. 너무나도 시원했다. 마치 이 바보같이 미친 세상을 떠나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