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 학교도서관을 맡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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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수만명의 인파가 광화문으로 나와 탄핵철회를 외쳤다. 언론들은 대어라도 낚은 듯이 연일 탄핵보도만을 하고 있다.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정말 이 바보같은 세상에 대해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한테 탄핵보다 더 엄청난 일이 닥쳤기 때문이었다.
어제 수업이 다나는 끝난 후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나는 교장 선생님이 왜 나를 부르는지 궁금해 교장실로 갔다. 교장 선생님은 중앙에 놓인 소파를 가리키더니 나보고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내가 그 자리로 가서 앉자 교장선생님도 자리에 와서 앉았다.
“허 선생님도 잘 알겠지만 임 선생님이 결혼을 하잖아요. 근데 임 선생님이 결혼을 하면 아무래도 학교를 그만 둘 거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 동안 임 선생님이 맡아왔던 도서관을 허 선생님이 맡아주셨으면 해서요.”
“예?”
나는 너무나도 놀랐다. 학교 도서관 담당은 선생들이 어떻게든 안 맡기를 바라는 자리였다보람도 없고 일만 많은 자리다. 나는 임 선생님이 학교 도서관 일하는 것을 보고 이전에는 편하기만 한 줄 알았던 도서관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임 선생님은 도서관 일 때문에 수시로 야간작업을 했다. 나는 그런 자리를 맡을 수 없어 반론을 펼쳤다.
“하지만 도서관은 지금까지 국어선생님들이 담당해 왔잖아요? 도서관 하면 국어선생님이죠? 도서관 담당이 수학 선생이라니? 교장 선생님, 지금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도서관을 수학 선생이 맡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죠? 그리고 며칠 전에 허 선생님이 종이쪽지에 쓴 바다가 보이는 교실이라는 시를 봤는데 정말 잘 썼더라고요. 그 정도 실력이면 도서관을 맡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그냥 심심해서 끄적거린건데.”
“심심해서 끄적거린 것이 그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수준이네요. 도서관을 맡아도 전혀 문제가 없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
나는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도서관을 맡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어쩌자고 심심하다고 바다가 보이는 교실이라는 시를 썼는지 정말 내 자신이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한심해 하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학교를 나오다가 퇴근하는 임 선생님을 보았다. 나는 임 선생님한테 어디 가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우린 가까운 곳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임 선생은 녹차를 시켰고 나는 둥글레차를 시켰다. 조금후 우리가 주문한 차가 나왔다.
“정말 결혼하면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이에요?”
“예.”
“왜요? 요즘은 결혼하고도 일 하는 여자들 많잖아요? 아니 오히려 일을 안 하는게 이상한 거죠?”
“전 정말 잘 해 보고 싶었는데 교직 생활이 제가 생각했던 거하고는 너무 다른 거 같아서요. 요즘 자꾸 드는 생각이 뭔지 아세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한심한 집단이 국회와 학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그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임 선생님이 계속 학교에 남아 도서관을 맡기를 바랬다.
“그건 너무 임 선생님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알고 보면 학교만한 데도 없다고요. 그러니 학교를 그만 두는 일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지 그래요? 남편 될 사람이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갑자기 왜 그러세요? 제가 학교를 그만 두면 큰일 나는 것처럼.”
임 선생은 의아해 하다가 살며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 도서관 때문이군요. 교장 선생님이 도서관 맡으라고 했죠?”
“도대체 교장 선생님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수학 선생한테 도서관을 맡길 생각을 하다니? 도서관하고 수학하고 어디 어울리기나 하나요?”
“안 어울릴 것도 없죠. 도서관엔 수학책도 있으니까. 그리고 허 선생님 제가 추천했어요.”
임 선생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예?”
“허 선생님 책 많이 읽잖아요? 글도 잘 쓰고. 바다가 보이는 교실인가 그 시 아주 멋지던데요. 전 외우기까지 했다니까요.”
선생은 칠판에 sea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말로 바다라고 했다.
아이들은 sea 하며 큰 소리로 합창했다.
교실에선 바다가 보였다.
육지로 떠나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미친년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반쪽짜리 귀머거리가 될 작정이다.
아무도 미친년의 휘파람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지금 바다를 배우고 있다.
바다 갈매가 한 마리가 다랑어를 낚아챈다.
푸른 바다에 파문이 인다.
그러나 아무도 갈매기의 잘못이라 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에게서는 바람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그 향기에 중독된 사람들은
아무도 떠나는 남자의 몰인정을 말하지 않는다.
농락당한 여자만이 미친년이 됐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미친년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살구꽃 붉은 빛 감도는 작은 소년은
시원한 바다의 해변가에서 오색 조개를 줍고 있다.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던 미친년은
휘파람을 불며 그 곳을 지나간다.
소년의 귀가 즐겁다.
미친년의 휘파람은 소년에겐 음악이 된다.
소년의 눈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 넘어 저 멀리 있는 산등성이에
붉은 친구 모습을 드러내면은
소년은 주운 조개를 바지 주머니에 꽉 채워 놓고
아쉬운 듯 집으로 돌아온다.
대청 마루에 나와 앉아 있던 할아버지는
소년을 반갑게 맞으며
“너도 올해에는 학교에 가야지?” 말을 꺼낸다.
“정말요?”
소년의 얼굴은 맛난 과자를 먹은 듯한 모양으로 한없는 웃음이 진다.
소년이 학교에 입학하던 날
바닷가 해변 위엔 미친년의 시체가 떠올랐다.
선생은 칠판에 sky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말로 하늘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sky 하며 크게 합창했다.
교실에선 하늘이 보인다.
육지로 떠나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늙은 어부의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그러나 아이들은 반쪽짜리 귀머거리가 될 작정이다.
모두가 육지로 가는 뱃고동에만 관심이 있다.
지금 이 교실엔 하늘이 없다.
“정말 아름다워요. 허 선생님은 이렇게 멋진 시를 쓸 줄 아는 사람이니까 도서관도 잘 운영하실 거에요.”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어쩌짜고 종이 쪽지에 그 딴 글을 끄적거린 건지 정말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우린 찻집을 나온 후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