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연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 바보같은 오빠한테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채신이 놀라며 물었다.
“넌 오빠한테 말하는 게 그게 뭐냐? 그게 동생이 오빠한테 할 말이야?”
“바보니까 바보라고 하지.”
정말 구제불능인 채신이다. 멀쩡한 지 오빠를 보고 바보라고 하다니? 누군가의 말처럼 바보눈엔 바보밖에 안 보이는 법인가 보다.
"아무튼 니 오빠한테 얘기 좀 해 봐. 좋은 여자 있으니까 한 번 만나 보라고.“
"니가 가서 얘기해. 니가 소개시켜 주는 여자니까.“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채신이 오빠를 만나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정 그렇다면.”
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옷을 갈아 입었다.
“지금 가려고?”
“응. 이런 일은 빨리 서둘러야 일이 잘 되는 법이라고.”
옷을 다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채신이 나를 불렀다.
“잠깐만.”
나는 채신을 돌아보았다.
“설마 그 바보같은 여자를 소개시켜 주려는 건 아니겠지?”
“바보같은 여자라니? 누구 말하는 거야?”
“왜 너희 삼총사랑 친한 달... 달 뭐시기라고 있잖아? 맞아, 달타냥. 설마 그 바보를 소개시켜 주려는 건 아니겠지?”
난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달타냥은 채신보다 훨씬 똑똑하다. 달타냥은 채신보다 훨씬 상식이 풍부하고 채신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언어가 영어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달타냥이 너보다 훨씬 나아’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화를 삭이고 말했다.
“아니야.”
“그럼 됐어. 그 여자만 아니면 돼. 오빠도 바보인데 그런 바보 같은 여자랑 맺어지면 큰일이니까. 도무지 할 줄 아는게 없는 여자잖아? 대학은 자퇴하고 학원은 때려치고 중국 갔다 돌아오고 이라크에선 도망치고. 못 생긴 것도 모자라 도무지 할 줄 아는 게 없는 여자라니까.”
나는 채신이의 말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귓가로 흘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채신이 오빠가 하는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이상하게 자꾸 채신이가 달타냥에 대해 한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채신이가 한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채신이가 바보인지 달타냥인 바보인지 그것조차도 헛갈려지기 시작했다.
채신이 오빠가 하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나는 누가 진정한 바보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안은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채신이 오빠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매제가 여긴 어쩐 일이야?”
내 가슴은 또 두근 반 세근 반 뛰었다. 아내의 오빠를 보고 이렇게 심장이 뛰다니. 정말 정신감정을 받아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할... 할 얘기가 있어서요.”
“할 얘기? 무슨 얘긴데?”
“저기 병원은 잘 되세요?”
“아니. 조만간 문 닫아야 할 지도 몰라. 이젠 모아뒀던 돈도 다 바닥이 났거든. 근데 할 얘기가 그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기 있잖아요...”
정말 채신이 오빠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남자가 남자를 보고 이러는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돈이 좀 필요한 거야?”
처남은 내가 말을 머뭇거리자 돈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좋은 여자가 있는데 한 번 만나보지 않으실래요?”
“응? 그게 무슨 어려운 말이라고 그렇게 힘들게 꺼내?”
“그게요? 그러니까... 어쨌든 한 번 만나보세요.”
처남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매제가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지.”
“좋아요. 그럼 제가 날짜랑 시간 약속 잡아서 다시 알려 드릴게요.”
나는 말을 마치고는 뛰다시피 병원을 나왔다. 채신이 오빠를 더 보았다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뛰는 심장을 천천히 가라앉히며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정신감정을 받아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현준이 누나랑도 얘기가 잘 되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처남과 소아마비 사장인 현준이 누나를 서로 만나게 하는 일은 의외로 쉽게 풀려 만날 시간과 장소를 쉽게 정할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나와 처남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현준이 누나와 현준이는 보이지 않았다. 우린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조금 기다리자 현준이 누나가 현준이랑 같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현준이 누나는 세미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한 번도 현준이 누나가 정장을 입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만 그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준이 누나의 걸음걸이를 보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걸음걸이. 그것은 현준이 누나가 평생을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짐이었다. 현준과 현준이 누나가 우리한테로 와서 앉았다.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전 유채영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여자 같죠? 그것 때문에 사실 어렸을 땐 아이들한테 놀림도 많이 당했죠. 근데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성함이?”
“김현미에요.”
현준이 누나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나가자. 우린.”
현준이 말했다.
“응?”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잖아.”
현준이의 말이 맞았다. 현준이와 나는 두 사람을 남겨 놓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니 처남 의사라고 했냐?”
“응.”
“대한민국 의사중에도 괜찮은 사람은 있군. 아무튼 이제 더 이상 누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애. 그러니 이젠 정말로 달타령한테 줄 선물을 준비해야 겠어. 사실 그 동안은 누나가 좀 걸렸거든.”
“넌 또 그 헛소리냐? 대체 달타냥한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냐? 그리고 달타냥한테 선물을 주는데 니 누나가 걸렸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건 내 선물이 보통 선물이 아니라서 말이야. 내가 달타령한테 주려는 선물이 뭔지 알고 싶어?”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보자. 대체 니가 달타냥한테 주려는 선물이 뭔지.”
“이라크에서 달타령이 돌아온 지 한달쯤 지났을 때였나? 달타령이 날 찾아왔어. 그리고는 나한테 물었지. 자기를 사랑하냐고? 그래서 사랑한다고 했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그랬더니 그럼 자기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무슨 소원이든 들어 주겠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를 죽여 달라는 거야. 그 땐 차마 그 소원을 들어 줄 수가 없었는데 이젠 그 소원을 들어 줄 수 있을 거 같애. 난 그 선물을 줄 생각이야.”
여느 때처럼 헛소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도대체 저 머릿속은 어떻게 되었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만 하는지 정말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고 해서 화난 목소리로 쏘아 붙였다.
“그래, 그 동안 구상한 너의 전무후무한 소설의 내용이 겨우 그거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이건 내가 구상한 얘기가 아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그러고 보면 참 바보같은 세상이야. 사실을 얘기했는데도 절친한 친구조차 믿지를 않는 세상이 되 버렸으니 말이야? 안 그래?”
“미친놈.”
“내가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달타령한데 멋진 선물을 줄 거야.”
현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떠났다.
‘미친놈.’
나는 다시 한 번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집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혹시나 현준이가 한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달타냥한테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마응이 생겼다. 그러나 그랬다간 현준이의 거짓말에 또 속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두기로 했다. 나는 바보같은 마누라 채신이처럼 현준이한테 매번 속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